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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

“건축의 제자리는 기술도 예술도 아닌 인문학이더라”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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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에게 건축은 삶의 시스템을 짜는 일이다. 인간을 바꾸는 행위다. 그에게 아름다운 집은 가족의 살냄새를 맡을 수 있고 사람을 궁리하게 하는 공간이다. 건축가 승효상. 고집스러운 몰두와 진지한 모색 끝에 그는 이미 살아숨쉬는 ‘건축의 교과서’로 승화했다.
‘빈자(貧者)의 미학’ 설파하는 건축가 승효상
‘나는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라는 선언을 건축가의 입을 통해 들을 때의 그 울림은 자못 비장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이의 삶을 조종하고 간섭한다는 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산정에 선 듯 두렵거나 고독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를 뜻하는 영어 architect에 정관사 the를 붙이면 ‘조물주’라는 뜻이 된다는 걸 나는 승효상(承孝相·53)의 책에서 처음 알았다. ‘조물주’가 전지전능한 존재이기에 앞서 외롭게 고뇌하는 존재임을 나이 들면서 차츰 짐작하는 중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로재(履露齊)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과 방법론을 실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집이다. 아래 두 층은 사무실, 위 두 층은 살림집, 맨 아래쪽 주차장에 잇닿은 반지하층은 그가 작업실로 쓰는 방이다. 나는 이로재에 두 번 갔고 갈 때마다 제법 꼼꼼하게 살폈지만 굽이와 계단이 많은 그 집의 평면을 머릿속에 다 그려낼 수는 없다.

대신 덤덤하나 따스하던 집의 외관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언뜻 보면 소박하나 들여다보면 빼어나게 세련된 집이었다. 코르텐강(鋼)이라고 불리는 붉게 녹슨 철판은 그늘에서는 음전한 팥죽빛이지만 볕이 들면 아연 작약빛으로 화려해졌다. 그러나 승효상에게 집의 외양은 별 문제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건축의 외형이란 그 속에 삶의 시스템이 포장된 상태다. 따라서 외관이나 모양은 그 시스템을 정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가장 좋다. 입면을 건축의 목적으로 잘못 판단해 건축을 시각적 상징과 기호로 취급하는 예가 숱하다. 더 가관인 것은 건축을 일종의 조형예술로 착각하는 일이다’를 밑줄 그어가며 읽은 후인데도 가로로 길게 뚫린, 혹은 야무진 사각 창틀의 수줍고 날렵한 비례에 나는 자꾸만 마음을 뺏겼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계단이었다. 콘크리트 위에 검은 냇돌이 박힌 바깥 계단을 올라 현관에 들어선 뒤 다시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었는데 그 계단은 예상을 배반하면서 좁고 길고 가팔라 흡사 카타콤으로 통하듯 사람을 긴장시켰다. 예전 시골집 다락에서 안방으로 내려올 때나 만나던 기울기였다. 발끝에 절로 힘이 주어졌다.

계단을 다 내려서자 너른 방이 나오고 널찍한 작업대 앞에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처럼 둥그런 뿔테 안경을 낀 이로재 주인이 서 있었다. 아이 같은 순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아니다. 아이 같지만은 않다. 고집스러운 몰두와 진지한 모색 끝에 얻어졌을 무위의 흔적이 유순한 웃음에 적절히 섞였다.

“저 계단은 여기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무슨 자동세차장치 같은 겁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좀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양팔을 어깨 위로 올려 뒤통수에서 깍지끼는 커다란 동작을 하면서 하하 웃었다.

“예. 그거 의도한 거예요.”

좋은 건축가, 빼어난 글꾼

건축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면 군말 필요없이 직접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나는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믿는 자이다. 부부가 같이 오래 살면 닮는다는 것도 한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까닭에 그들의 삶이 그 공간의 지배를 받아 같이 바뀐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도하는 이가 작고 검박한 공간을 찾아 나서는 것도 그 공간의 지배를 받기 위함이라고 여긴다.… (중략)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만들 수밖에 없다. 물론 좋고 나쁨이 화려함과 초라함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화려한 건축 속에서는 삶의 진실이 가려져 허황되고 거짓된 삶이 만들어지기 십상이며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올곧은 심성이 길러지기가 더 쉽다. 비록 그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아 우리가 느끼기에 더딜 뿐이지 건축은 우리의 인격체를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그는 빼어난 글꾼이다. 승효상의 글을 읽으며 자꾸 무릎을 치는 것은 어휘의 풍성함이나 문장의 힘 때문이 아니다. 좋은 건축과 살아 있는 공간을 찾아내기 위한 그의 건축적 사색과 고뇌가, 위대한 건축가, 불후의 명작, 아름다운 전통을 찾아다니는 그의 열정과 좌절이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건축가라면 당연히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좋은 건축은 굳건한 논리구조를 가진 까닭에 설득력이 있으며 빛나는 영혼에 충만하여 작의에 불타오르므로 다른 건축과 다른 변별성으로 그 건축가의 오리지낼리티를 구축하니’ 그걸 옮기기만 하면 그대로 설득력 있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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