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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골수 친일파 700명 토지 환수해 매국사상 뿌리뽑아야”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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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제 징병·징용 피해자, 한국정부에서라도 보상해야
  • ● 새 한일어업협정, 독도가 울릉도 부속도서라는 해석근거 부정
  • ● 독립운동 공적심사의 중요 자료는 ‘동아일보’
  • ● 전봉준은 앙시앵 레짐 해체하고 일본의 보호국화 시도 파탄시킨 영웅
  • ● 강경애의 김좌진 암살 모의說, 증거 없다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서울 용산구 효창원(孝昌園)에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金九) 선생을 비롯해 조국 광복을 위해 한목숨 기꺼이 바친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임정 요인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안중근 의사의 허묘(虛墓)도 나란히 터를 잡았다.

효창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김구 선생 묘소 바로 옆에 위용을 갖춘 백범기념관이 2002년에 들어섰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돼 있지만, 선생이 세상을 뜬 지 50년이 넘도록 임시정부의 영원한 주석을 기리는 기념관 하나 없었다. 백범기념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파를 초월한 국회의 예산 지원과 국민성금으로 완공됐다.

공군참모총장과 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신(金信·백범의 차남)씨가 백범기념관 관장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신용하(愼鏞廈·68)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협회의 부회장 겸 백범학술원 원장이다.

3·1운동 86주년을 앞두고 한국사회사 민족독립운동사 일제침략사 및 독도 연구에 평생을 바친 신 원장을 찾아갔다. 신 원장은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라는 저서와 3·1운동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황소 같은 연구자

필자가 백범기념관을 찾은 아침 나절, 효창운동장 관람석은 텅 비어 있고 조기축구 회원 10여명이 공을 차고 있었다. 월드컵 경기를 치른 나라에서 효창운동장의 시설은 낡고 초라해 이 일대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 된 지 오래다. 정부는 효창운동장을 없애고 효창원을 민족공원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자유당 정권은 1960년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연못, 섬을 없애고 효창운동장을 조성하면서 당시 공군에 근무하던 김신 장군에게 백범 묘소를 교외로 이장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참배객이 늘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런 꾀를 냈지만 여론의 반대에 밀려 포기했다. 축구장과 애국선열 묘소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백범학술원은 백범기념관 지하 1층에 있다. 신 원장의 용모와 풍채는 황소를 닮았다. 연구도 황소처럼 한다. 학문의 길에서 51권에 이르는 저술과 논문 260여편, 역·편서 14권의 연구 실적을 쌓았다. 출판 대기중인 저서가 6권.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한국 최고 기록이다.

사진기자가 촬영을 하는 동안 백범 살해의 배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성모 국방장관과 김창룡 특무대장이 범인 안두희의 배후라는 것까지는 기록과 증언을 통해 확인됐죠. 민주사회당 국회의원을 지낸 고정훈씨는 광복 후 미국 정보기관 CIC의 통역겸 판단관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고씨가 4·19 직후 ‘백범 암살의 최고 책임자는 신성모’라는 보고서를 봤다고 증언했죠. 이승만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물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려 저지른 범죄일 수도 있죠.”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백범의 ‘비현실적인 정치노선’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내용은 이렇다.

‘냉엄한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백범의 비현실적 정치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6·25 남침으로 확인됐듯이 김일성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은 통일국가 수립은 애당초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나는 이승만의 단정(單政) 노선을 이해한다.’

신용하 원장은 광복 후 백범 노선에 대한 사회 일각의 비판적 견해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국과 소련이 강제한 조국 분단의 극복은 민족적 과제였어요. 이승만 박사는 미국과 소련이 준 분단의 틀에 순응했기 때문에 권력을 장악하게 됐죠. 백범 김구 선생은 열강이 짠 틀을 넘어 통일을 이루려고 저항했기 때문에 정치적 권력에서 멀어졌습니다.

권력을 갖느냐 못 갖느냐로 현실 정치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는 실용주의적, 기능주의적 관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권력을 잡은 이 박사가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죠.

그러나 진정한 민족지도자라면 열강의 틀을 극복해 통일을 지향하는 활동을 정치의 중심에 둬야 할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광복 후 민족지도자로서 소임을 다했습니다. 처음부터 권력 장악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국가 수립을 지향했습니다. 백범은 민족지도자이면서 정치가였는데 반해 이 박사는 민족지도자는 못 되고 권력을 추구한 정치가였다고 봅니다. 권력 장악을 기준으로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는 것은 미국에서 발달한 행동주의(Behaviorism) 시각으로 고찰한 것이죠. 5000년 역사를 가진 문명 민족으로서 열강이 강제한 분단 구도에 대항해 민족통일을 위한 자긍심을 갖고 성실하게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당연히 있었어야 합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오늘날 누가 이승만 박사를 민족지도자로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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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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