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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⑮

仙道 맥 잇는 계룡산 일사(逸士) 정재승

“가고 또 가면 알고, 행하고 또 행하면 깨달으리라”

  •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仙道 맥 잇는 계룡산 일사(逸士)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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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양정씨(溫陽鄭氏)는 선교(仙敎) 명문가다. 중시조인 북창 정렴은 16세기 초 선도 수련법을 담은 저서 ‘용호비결(龍虎秘 訣)’을 남겼고, 북창의 동생 고옥 정작은 허준의 ‘동의보감’에 선도 사상을 물들였다. 이후로도 면면히 이어온 선교의 가풍을 이젠 북창 16대손인 정재승 선생과 그의 형제들이 잇고 있다. 고교 1학년 때 스승인 봉우 선생을 만나면서 선도의 길을 결심한 그는 1986년 계룡산 상신리에 터를 잡은 후 20년째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仙道 맥 잇는 계룡산 일사(逸士) 정재승

정재승 선생은 직업이 없다. 그러기에 실직의 고통도 퇴직의 무상도 없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맑고 서글서글해서 편안해 보인다.

어느 민족이든 ‘정신사(精神史)’라는 영역이 있다. 그 민족의 정신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그 나라 역사의 ‘속살’을 아는 것에 해당한다. 속살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속살을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 민족의 속살, 즉 정신사에 대해 일찍이 고운 최치원(崔致遠)은 ‘포함삼교(包涵三敎)’라 했다. 삼교라 하면 유(儒), 불(佛), 선(仙)을 말한다. 포함삼교는 유불선이 섞인 상태다. 유교에는 예의와 범절이 있고, 불교에는 심법(心法)의 이치가 있으며, 선교에는 양생(養生)의 원리가 있다. 한민족의 정신사에는 범절과 심법과 양생이 혼융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속살을 제대로 알려면 이 혼융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뿌리내린 이래로 고려시대에 국교로 꽃을 피웠고, 유교는 조선시대에 국교가 됐다. 하지만 선교는 한번도 국교의 자리에 올라선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정신사 밑바탕에는 선교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유불의 밑바탕에 선교가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교는 왼쪽의 불교와 오른쪽의 유교를 중도통합하고 있다. 불교의 출세간적(出世間的) 인생관과 유교의 입세간적(入世間的) 인생관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입출자재(入出自在)다. 그래서 최치원의 ‘포함삼교’를 분석하면 선교가 몸통이고 불교는 왼손, 유교는 오른손의 형국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도파가 강경 좌파나 강경 우파에 밀려 정권을 잡은 적이 없는 것처럼, 중도적인 선교는 국가의 전면에 한번도 나서지 못했다.

민족 심저에 잠류하는 선교

하지만 선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유교와 불교를 중간에서 화해시키면서 우리 민족의 심층심리 밑바닥에서 조용히 잠류(潛流)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면 한국인치고 ‘신선(神仙)’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한국인들은 신선 팔자를 가장 부러워한다. 유학자들은 부처를 싫어하고 승려들은 유생들을 싫어했지만, 신선은 한국 사람에게 거부감 없는 인격 모델로 전승돼왔다. 선교의 인물들은 불교의 승려처럼 집을 떠나 산속에서 도를 닦기도 하지만 인연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자식을 낳고 사회적인 삶을 살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산수가 좋다. 국토의 70%가 산이다. 소나무와 바위, 그리고 맑은 계곡이 있고 몸에 좋은 약초가 널린 한국의 산들은 도사가 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중동의 사막이나 열대의 우림지역에서는 신선이 배출될 수 없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선교는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서 발달하게 되어 있다. 한국처럼 산수가 아름다운 나라도 드물다.

선도는 역사적으로 조직을 갖춘 교단이 없기에 그 맥이 미미하다. 맨투맨, 즉 스승과 제자의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그 맥이 이어져 왔다. 점 조직으로 전승되어온 것이다. 그 맥을 한번 찾아가본다.

전형적 보림터인 상신리에서 수도

유서 깊은 선도 집안에서 태어나 선도의 맥을 잇고 있는 정재승(鄭在乘·47) 선생. 그를 만나기 위해서 계룡산 상신리(上莘里)의 거처를 찾았다. 상신리는 계룡산 4대 수도처 중 하나로 계룡산 북쪽에 위치한다. 계룡산의 동쪽에는 동학사(東鶴寺)가 있고, 서쪽에는 갑사(甲寺), 남쪽에는 신원사(新元寺)가 있다. 하지만 상신리에는 절이 없다. 고려시대에는 구룡사(九龍寺)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된 후로 절이 들어서지 않았다. 그 이후 상신리에는 선도의 도꾼들이 들어와 살았다. 지금은 도꾼보다는 도예가나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 대전에 연고를 둔 사람들의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 있다.

상신리의 산세는 전형적인 보림터다. 청룡과 백호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어머니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택리지(擇里志)’의 이중환은 풍수적으로 이상적인 주거지는 수구(水口)가 막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구는 좌청룡 우백호의 사이다. 풍수에서는 수구가 벌어져 있으면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간주한다. 마치 압력밥솥의 김이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닫혀 있으면 압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수구는 청룡과 백호가 십자(十字)로 감싸고 있어야 좋다.

상신리는 이처럼 수구가 잘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4∼5겹 감싸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계룡산 상신리를 찾아왔던 조선시대 도꾼들도 틀림없이 겹겹이 막힌 수구의 형세를 보며 필자처럼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상신리에서 방외(方外)의 일사(逸士)로 살고 있는 정재승 선생. 그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으로 세상이 온통 근심걱정으로 싸여 있지만, 계룡산의 일사는 애시당초 직업이 없었다. 처자식도 없다. 원래 직업이 없었으니 실직의 고통도, 퇴직의 무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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