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선순환 리더십’ 펴낸 예비역 공군소장 유영대

“군대 리더십이 곧 사회 리더십”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5-03-24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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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예비역 장성이 20여년간 장병 관리에 활용해온 리더십 이론이 병영 밖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유영대 예비역 공군소장의 ‘선순환 리더십’이 그것. ‘착한 행동이 순환되도록 조직을 이끄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라는 단순한 이론이지만, 정부기관과 기업 등에서 기대 이상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군을 ‘개혁대상 1순위’쯤으로 보는 요즘, 군대에서 통하던 리더십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선순환 리더십’ 펴낸 예비역 공군소장 유영대
    “그날은 08시 30분 안양시청에서, 이틀 후엔 19시 광주에서, 다음날엔 어디더라…아, 모 기업 연수원에서 아침부터 강의가 잡혀 있어요. 아무래도 안양시청 강의 이후에나 시간이 좀 날 것 같은데요.”

    연예인보다 시간 약속을 하기가 더 힘들었다. 최근 ‘착한 행동이 순환되도록 조직을 이끄는 게 훌륭한 지도자’라는 내용의 저서 ‘선(善)순환 리더십’을 낸 후 정부기관, 기업체 등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영대(劉永大·54) 예비역 소장. ‘08시’ ‘19시’라는 말투에서 보듯 그는 197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33년 동안 육군과 공군을 두루 거치고 지난해 12월31일 공군 방공포병사령관으로 예편한, 뼛속까지 ‘군인’인 사람이다. ‘선순환 리더십’ 역시 그가 20여년간 장병을 통솔하면서 체득한 이론체계.

    公私 구분 철저해야

    그는 지난해 5월부터 KT 연수원, 공무원 중앙연수원, 서울시 교육연수원, 삼성전자 연수원, 금호그룹 연수원 등과 지방단치단체 및 대학에서 지금까지 40여 차례 선순환 리더십을 강연해왔고, 앞으로도 강의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군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군의 리더십 이론이 민간영역에서 높은 관심을 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선순환 리더십’이 2쇄를 찍는 등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들었는데요. 군 경험의 산물이 이처럼 민간에까지 확산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선순환 리더십을 개발한 계기는?



    “부대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와 관련된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악의 고리’를 끊으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좋은 일에서 시작되는 선의 고리, 즉 선순환을 만들면 훨씬 바람직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이론을 세워 적용해본 결과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선순환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고자 했고, 저의 선순환이 부대의 선순환으로 발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사실 ‘선순환’은 ‘악순환’보다 익숙하지 않은 말입니다. 선순환 리더십의 개념은 어떤 것입니까.

    “선(善)을 베풀면 마음이 기쁘고 흡족합니다. 또 내가 선을 베풀면 그 선이 주변으로 확산되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선순환은 한 곳에서 선이 만들어져 그것이 반복되면서 상호관련된 요소들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스스로 재생산해 개인의 자아실현뿐 아니라 연쇄적인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추구하는 거죠.”

    -선순환 리더십은 군 생활을 통해 체득한 것으로 압니다. 군 시절 기억에 남는 선순환 사례가 있다면?

    “여단장을 할 때 같이 일하던 한 장교가 계속 사람을 피하는 등 왠지 자신이 없어 보였어요. 신상을 파악해보니 임관과정의 교육에서나 부대 평가에서 늘 꼴찌를 했더군요.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자신감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늘 꼴등만 하던 부대가, 제가 부대장을 맡은 후로는 무슨 활동을 하든지 1등을 하는 걸 보면서 그는 ‘꼴찌라는 게 항상 정해진 것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대요. 그후 그는 의욕적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했고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리더의 선순환이 곧 조직의 선순환, 그리고 조직 내 개인의 선순환으로 발전한 것이죠.”

    최우선의 기준은 국익

    -어떻게 선순환이 반복되도록 해서 꼴찌 부대를 1등 부대로 만들었습니까.

    “부대원을 지휘하면서 잘못한 것을 지적하기보다 칭찬과 격려를 많이 했습니다. 가령 예하부대를 방문했을 때 한 병사의 두발 상태만 양호하고 다른 병사들은 불량하면 대개 불량한 병사만 꾸짖죠. 하지만 저는 두발 상태가 양호한 한 명을 칭찬합니다. 그러면 불량한 병사도 반성하고 시정하게 됩니다.

    또한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부대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인화(人和)를 해치는 것이 바로 개인적인 친분관계입니다. 만약 제가 지휘관 한 사람과 식사를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과는 좋은 관계가 되겠지만 나머지 지휘관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겠죠. 제가 사령관으로 취임했을 때 지휘관들이 공관을 방문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개인적인 방문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요청을 해오기에 한번은 지휘관 전부를 버스에 태워 공관으로 오라고 해서 모두 함께 식사를 했죠. 이런 식으로 지휘관들과 사사로이 엮이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군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두 번의 군사 쿠데타를 겪은 데다, 최근에는 진급비리 파동도 있었고요. 그런저런 이유로 군은 흔히 개혁대상으로 꼽힙니다. 그런데도 군대에 적용한 리더십이 민간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군대라고 하면 폐쇄적인 집단, 민간사회와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인식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군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할 뿐 우리 사회와 극히 다른 문화나 정서를 가진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군대에 필요한 리더십이라면 곧 사회에도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제가 쓴 책 뒷부분을 보면 지휘관의 리더십과 참모의 리더십에 대한 장(章)이 있는데, 군의 지휘관과 참모를 기업의 CEO와 중간관리자로 각각 대치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선순환 리더십의 시각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명 경시 풍조입니다. 앞날에 대한 희망과 명확한 비전을 갖지 못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부정부패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가 한국은 10점 만점에 4.3점(2003년 기준)이라고 해요. 성인들도 그렇지만 청소년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부정부패에 익숙해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반부패국민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생의 16.8%가 ‘10억원을 벌 수 있으면 10년을 감옥에서 살 수 있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셋째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민의 정서가 사라진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너무 만연해 있어요.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국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국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이 희생돼도 괜찮다는 논리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또 최근 자이툰 부대 파병과 같이 ‘국익이냐, 정의냐’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요.

    “국가가 결정한 일이라면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북핵문제나 미군철수, 이라크 파병과 같은 굵직굵직한 안보 문제에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국익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논리만 고집하다 국가의 결정이 지연되고 일관성이 없어진다면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지고 각 개인에게도 피해가 갑니다. 미국 언론을 보세요. 정부의 정책이 자신들의 입맛과 맞지 않아도 국익을 위한 일이라면 최대한 지원하고 홍보해주지 않습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리더십

    -‘선순환 리더십’은 500쪽이 넘는 적잖은 분량이지만 동서양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자료까지 다양한 예들이 많아 읽기에 지루하지 않더군요. 전문 필자도 아닌데, 선순환 리더십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거의 20년 전부터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스크랩한 자료가 바인더로 10여권이나 됩니다. 그러다 2년 전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책을 읽고 잡다하게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해 집필하는 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7년간 여단장을 하면서 공관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독서 때문이었어요. 퇴근 후 별일이 없으면 7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서재에 박혀 책을 보곤 했지요.”

    유영대 소장은 아들만 둘을 두었다. 몇 년 전 고등학생이던 첫째가 밤늦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 이상한 곳에 내렸으니 데리러 와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부인은 운전면허가 없었고 자신은 술을 마셔 운전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네가 알아서 집으로 오라’고 말하고는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일로 부관이나 운전병에게 운전을 부탁한 적이 없거든요. 결국 아이는 두 시간을 헤매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엔 섭섭했지만 공사를 구분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아이에게 ‘선순환’으로 작용했으리라 믿습니다.”

    유영대 소장의 선순환 리더십이 각광을 받는 것은 소수의 리더들만이 할 수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결국 각자의 인생에서 리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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