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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17)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서산에 해 지면 동산에 달 뜨니 ‘건달’이 일낼 때가 됐다!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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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변산에 들어와 살았나.

“1994년 12월 말 변산에 처음 들어왔다. 이곳에는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호암(壺岩)수도원이 있다. 거기에 수행하러 왔다가 변산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 태인 허씨 재실에 들어온 것은 지난 1995년 3월26일이다. 올해로 벌써 10년째다. 세월이 참 빠르다.”

-태인 허씨 재실이 비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호암수도원에 ‘개암(開巖)장’이라고 불리던 천도교의 원로가 계셨는데, 그 어른이 이곳을 소개해주셨다. 내가 빈집을 구하러 다닌다고 하니까 ‘수도인은 소유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런 곳이 어디 있는지 물으니 여기를 추천하신 것이다.”

-남의 문중 재실을 지키는 ‘산지기’ 또는 ‘재실지기’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째, 계약서가 필요없다. 언제라도 나가면 끝이다. 복잡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공증을 받을 필요도 없다.

둘째, 계약금도 전세금도 필요없다. 돈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다.

셋째, 딸린 논밭이 있다. 재실마다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논밭이 딸려 있게 마련이다. 최소한의 호구지책은 된다. 추원재에는 논과 밭이 각각 6마지기씩 있다.

넷째, 명당이다. 대체적으로 재실은 조상 제사를 지내는 곳에 있다. 터를 볼 줄 아는 지관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라서 명당인 경우가 많다. 여기도 풍수가 괜찮다.

다섯째, 문중행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허씨 집안에서 1년에 한두 차례 제사를 지낼 때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음식 장만하는 것도 도와줄 의무가 없다. 대신 문중 제사가 있을 때에는 1박2일 정도 재실을 비워 준다. 그때에는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산지기로 산다는 열등감만 없애면 된다. 자존심만 죽이면 만사가 편안하다.”

-산지기를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요즘도 산지기를 하려는 사람이 있나.

“처음 보안면 면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던 일이 생각난다. 전입전출 담당 면사무소 직원이 물었다. ‘직업이 뭡니까?’ ‘산지기입니다’ ‘산지기요?’ ‘내 직업이 산지기입니다’ ‘그렇다면 돈을 받습니까?’ ‘돈은 받지 않습니다’ ‘돈을 받아야지 직업 아닙니까?’ ‘돈을 받지 않아도 나는 산지기입니다. 남의 집 산을 지키면서 사니 산지기 아닙니까? 내가 산에서 살아주니 산 주인이 좋아하고, 나는 살 곳이 있어 좋고. 그러니까 산지기 아닙니까?’ 하고 문답을 주고받았다. 전국에 산지기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수는 모른다.”

-산지기를 해서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나. 아무것도 없이 산에 들어와 살려고 했다니 배짱이 대단하다.

“변산에 들어올 무렵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그저 수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도라는 것이 천도교의 마음공부와 이에 따른 주문(呪文)의 수행이었다. 집사람과 가진 돈을 합해보니 총 300만원이었다. 이것만 가지고 재실에 들어왔다.

-마음을 놓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집착을 놓는다는 뜻인데, 인간사 사는 일이 매사가 집착이다. 집착을 놓는 건 한번 죽었다 살아나야 가능한 일이라 한다. 마음을 놓기까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동학(천도교)의 주문이었다. 21자로 된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의 주문이다. 보통 ‘시천주(侍天主)’라 부른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선생이 외우던 것이다. 처음 이 주문을 접한 건 1991년, 내 나이 마흔한 살 때였다. 당시 나는 가정에서도 쫓겨나고 친구들에게도 쫓겨나고 세상으로부터도 쫓겨난 상태였다. 무슨 일을 해도 실패만 거듭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시기였다.

이런 절망 상태에서 천도교 종학대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서 집중적인 수도를 하려면 서울 우이동에 있던 의창수도원에 몇 달 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수행하면서 주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종교체험을 하게 됐고, 이후 세상사와 약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주문수행에 재미를 붙여 이곳저곳 수행처를 찾아다니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했다. 생각해보니 집사람도 겁이 없는 사람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공포가 적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생각했단다. 집사람이 그러니 나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라도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재실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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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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