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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⑥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한국인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

“남들은 정면으로 돌파했지만, 나는 빙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어”

  • 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한국인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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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에게는 여섯 개의 이름이 있었다. 직접 쓴 연보는 거짓으로 가득했다.
  • 사람들이 자신의 명성을 기억할수록, 대중이 자신의 소설에 열광할수록,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려 애썼다. 마지막 순간까지 ‘허구의 정체성’에 집착하며 ‘일본적인 것’을 좇던 굴절된 삶, 그 삶에 배어 있는 역사의 비극.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한국인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
그의 소설은 일본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일본 최대의 발행부수(하루 1000만부)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 그 대(大)신문에 1968년과 1980년 두 차례나 연재소설을 쓴 작가 다치하라 세이슈(立原正秋). 그는 김윤규(金胤奎)라는 이름의 한국인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11세 때 일본에 건너가, 뒤늦게 익히고 배운 일본말로 일본사람보다 더 일본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대문호가 됐다. 먼 훗날, 그의 중세 일본어 구사력과 그에 대한 식견은 일본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경지로 평가받는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적인 미학을 추구한 작가.

그의 모순은 이름을 여섯 번이나 바꾼 데서도 드러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김윤규, 일본에서 아주 짧은 기간 썼던 노무라 신타로(野村震太郞), 본명 김윤규를 일본식으로 읽은 긴잉케이, 이른바 ‘창씨개명’ 바람이 거셀 때 만들어 쓰기 시작한 가나이 세이슈(金井正秋), 일본 여자와 결혼해 아내의 호적에 입적해 쓰기 시작한 요네모토 세이슈(米本正秋), 그리고 작가로서 필명으로 쓰다가 마침내 죽기 두 달 전 숙원대로 호적에 올린 다치하라 세이슈.

여섯 개의 이름으로 살다 간 허구투성이 인생.

내가 다치하라 마사키(세이슈의 다른 독음)라는 인물에 관해 처음 듣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여류작가 박기원씨, 청산출판사를 경영하는 권도홍씨(전 ‘주부생활’ 사장)와의 대화에서였다.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순수문학상 아쿠타가와(芥川)상의 후보로 최종심까지 두 번이나 오르고, 결국 대중문학상인 나오키(直木)상을 받은 인물’ ‘일본의 고전을 파고들어 아름다운 고대 중세 일어를 곤충채집하듯 메모하고 기억해 작품에 살려나간 작가’ ‘식민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거짓 이력서와 연보를 써서 인생 전체를 픽션으로 만들어버린, 소설 주인공을 능가하는 소설가’….

펜을 든 역도산

‘펜을 든 역도산’이라고나 할까. 역도산도 식민지 출신이라는 사실이 껄끄럽고 출세에 장애가 된다 하여 핏줄과 과거를 부정한 인물이다. 그런 행동에 대해 ‘비겁하고 더러운 친일분자’라고 팔매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굴절되고 철저하게 꾸며진 그의 삶에 배인 비극을 캐보고 싶었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다치하라의 가면을 벗기고 그 까닭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를 만나는 기회가 있어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씨는 다치하라 마사키가 그토록 염원하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다.

“내가 문학지 ‘군상(群像)’이 주는 신인상을 받을 때 그분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선핏줄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반가운 소식을 듣고 보니 집에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썼더군요. 그분은 벌써 유명한 대작가였고 나보다 여섯 살이나 위인 데다, 와세다대 선배이므로 내가 미리 약속시간을 받아두고 가와고에(川越)에 있는 그분 집으로 찾아갔지요. 그랬더니 유카타(일본의 헐렁한 겉옷) 차림으로 길가까지 마중을 나왔어요.

완전히 한국식 요리에 초장까지 차려놓은 식탁이었습니다. 쇠고기도 유명한 마쓰자카(松坂) 쇠고기로 요리한 불고기도 나왔습니다. 그분한테서 가족 같은, 피를 나눈 형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옛 식민지 시절 특고(特高)경찰(독립운동가를 비롯해 정치범이나 사상범을 전담하던 경찰)이 한국인을 잡으려면 그 집 제사 때 잠복하면 된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인은 숨어 있다가도 제사에는 반드시 참석하니까요. 그만큼 핏줄의식이 강하다는 거지요. 다치하라씨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다치하라는 이회성에게 말했다.

“당신의 글 속에 ‘8월은 조선인에게 울고 웃는 달(희비가 엇갈리는 달)이다’라는 대목이 있지. 그 구절이 마음에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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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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