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장성 진급비리 수사 주역, 남성원·최강욱 전 국방부 검찰부장

“육군참모총장 측근, 대통령 핵심측근에 구명 요청했다”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6-24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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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수석실과는 업무협조 관계, 지시받은 적 없다
    • 국방장관, 수사 초기부터 “중령 이하만 구속하라” 지침 내려
    • 남 총장과 인연 있는 진급대상자 별도 관리…15명 중 11명 진급
    • ‘노 대통령쭽’ 표시된 장교, 진급심사 직전 유력 대상자에 포함
    • 인사소청심사위원장에게 날아든 ‘NSC 쪽지’
    • 육본측, 공소취소 조건으로 ‘남 총장 책임 시인 발언’ 제안
    • 진급심사 녹화 하드디스크 교체 진술한 장교 ‘육본 탈출 소동’
    장성 진급비리 수사 주역, 남성원·최강욱 전 국방부 검찰부장
    비록‘군의 특수성’에 대한 논란이 따르긴 하지만, 군검찰은 민간 검찰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국가수사기관이다. 장성 진급비리 수사에서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육군본부는 피의자 신분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수사의 본질보다 그 배경과 곁가지에 집착한 언론 덕분(?)에 피의자는 수사기관과 대등한, 아니 그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다. 나아가 피해자로 부각됐다. 군검찰의 ‘언론 플레이’에 대한 비판도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비판이었는지는 민간 검찰의 경우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추측하건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군의 특수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 둘째는 이 수사가 청와대의 ‘군 흔들기’ 또는 군 사법개혁과 관련된 것이라는 과도한, 또는 빗나간 의구심. 셋째는 수사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밥그릇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는 좀 심하지 않았나 싶어요. 군에 대한 외부의 시각을 규정하고 알리는 게 언론인데, 언론은 우리가 사법기관 종사자로서 한 사법행위나 준사법행위를 정치행위로 해석하는 것 같았어요. 예컨대 계급이 높은 사람에 대해 형사절차를 밟으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남성원(41·사진 왼쪽)·최강욱(38) 변호사는 언론에 대해 섭섭한 감정부터 풀어놓았다. 각각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장, 고등검찰부장으로 장성 진급비리 수사를 주도했던 두 사람은 5월 말 만기 전역한 후 변호사로 개업했다.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 건물에 있는 ‘청맥’이라는 법무법인이 그들의 새 일자리다.

    2004년 1월부터 국방부 검찰단에서 근무한 그들은 몇 건의 군납비리, 공병비리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개인비리로 구속해 군 안팎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장성 진급비리 수사는 말 많고 탈 많은 진급인사 시스템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진급심사의 비밀과 비리구조가 이 수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고 국방부는 수사결과를 반영해 진급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수사라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군의 특수성을 지휘권 보장으로 해석들을 합니다. 그런데 지휘권과 별개인 사법제도로 지휘권을 보장해야지, 지휘권이 사법체계를 종속시켜 ‘지휘관인 내가 나를 보호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건 말이 안 되죠. 헌법에도 지휘권은 행정작용이고 군 사법권은 사법작용이라고 구분돼 있습니다. 군사법원에 관한 조항이 사법부 편에 있고 국회에서도 군 사법 문제를 국방위가 아닌 법사위에서 다루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군의 특수성이 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1995년 법무 11기로 임관했다. 사법연수원 시절을 포함하면 만 10년을 군법무관으로 활동한 셈이다. 민간에서는 검사와 판사가 소속도 다르고 직책도 명확히 구분되지만 군에서는 군법무관이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각군 본부 인사명령에 따라 군판사도 됐다가 군검찰관도 됐다가 법무참모(사단급 이상 부대에서 지휘관을 보좌)도 된다.

    “군의 특수성이란 열외의식이나 특권의식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니 우리끼리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우리 논리로 이해해달라는. 민주 사회에서 유독 군대만 이런 열외의식을 갖고 있어요. 이런 점 때문에 국민은 군에 대해 여전히 거리감을 갖고 있어요. 군 지휘관은 종종 군법무관에 대해 군기가 약하고 열외의식과 특권의식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군대가 사회에 대해 내세우는 열외나 특권의식의 문제점은 왜 생각지 못할까요.”

    -수사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군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진급에 관한 것입니다. 진급은 군대의 핵심입니다. 진급이 군 문화를 결정하고 진급 시스템이 나머지 모든 시스템을 결정합니다. 군대의 DNA라고나 할까요. 그런 만큼 진급제도가 건강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제도가 병들게 됩니다. 진급심사제도의 비밀은 잠재역량 평가에 있어요. 하나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때그때 군을 장악한 특정 세력이 잠재역량 평가제도를 이용해 진급을 독점해왔다는 얘기를 오래 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첩보를 모으고 있었어요.

    어느 해든 진급인사 후엔 뒷말이 많은데 지난해엔 좀 더 심했습니다. 먼저 김종환 합참의장이 남재준 육참총장을 비롯해 진급심사에 관여한 육군 고위직 인사 4명을 ‘육군을 망친 4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는 얘기가 들렸어요. 김 의장은 이 문제로 남재준 육참총장과 국방부 복도에서 심하게 다투기까지 했는데 그걸 많은 사람이 목격했습니다.

    육군은 해마다 진급심사가 끝나면 심사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소감문을 인트라넷에 게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대령-준장 심사소감문이 빠져 있었어요. 또 우리가 만나본 대령들 중 상당수가 실명을 거론하며 ‘아무개가 어떻게 장군이 될 수 있나. 총장이 이상하기 때문에 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소장 진급에서 탈락한 백승도 준장이 남 총장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최광준 준장이 남 총장에게 이임인사 하러 갔다가 윤일영 인사참모부장과 심하게 다툰 직후 즉석에서 사표를 던졌다는 얘기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또 하나 화제가 된 게 고3 때 한반이던 세 명의 대령이 모두 진급한 사실이었어요. 현 정권 실세라는 L의원이 그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군 내에서 말이 많았지요. 그밖에도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첩보가 많았어요. 그래서 한번 파헤쳐보자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누가 언론 플레이 했나

    -수사에 착수하려면 구체적인 단서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음주운전자가 진급된 사실이 단서가 됐어요. 그런데 음주운전을 했다고 영원히 진급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어요. 불이익을 받을 뿐이지. 어쨌든 청와대 민원 건은 그런 대로 정리가 됐습니다. 또 이와 별개로 음주운전 관련 기록을 유리하게 고쳐 심사위에 제출한 사안도 문제가 됐어요. ‘측정거부’를 했는데 그 기록을 지워 단순 음주운전인 것처럼 꾸몄어요. ‘측정거부’는 진급심사 때 반드시 감점해야 하는 사항이거든요. 어쨌든 수사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 진급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거였죠. 언론은 괴문서가 수사 착수 계기인 양 보도했는데, 괴문서와 수사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우리도 궁금해 나중에 확인해보니 괴문서 내용 중에는 제법 근거가 있는 얘기가 있는 반면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국방부 장관한테 보고했나요.
    “첩보나 내사 내용은 장관한테 일일이 보고하지 않습니다. 내사를 벌이던 중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실)에서 음주운전 관련 민원자료가 넘어왔어요. 진급자 중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조사해보라는 것이었죠. 이를 계기로 공식 수사에 들어갔고 김석영 검찰단장이 윤광웅 장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장성 진급비리 수사 주역, 남성원·최강욱 전 국방부 검찰부장

    남성원 전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장.

    -언론 플레이 한다는 비판이 있었죠.
    “처음부터 진급비리 수사를 수사행위가 아니라 정치행위로 해석하려는 세력이 있었어요. 그런 세력과 군의 정치권력에 대한 시각을 언론이 대변했다고 할까요. 피해자인 육본측은 조직적으로 수사에 대응하고 언론을 이용해 사실을 왜곡하고 수사의미를 훼손하는데, 수사기관인 우리는 언론에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수뇌부에서 철저하게 막았거든요. 우리가 언론 플레이 했다고 하는데, 초기 과정을 잘 살펴보세요. 누가 언론 플레이를 했는지. 이 사건에 대한 최초의 언론보도는 육본 인사참모부 압수수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결코 우리가 알려서 나간 기사가 아닙니다. 괴문서를 근거로 압수수색한다고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였거든요.

    우리는 정말 철저하게 조심했어요. 여러 사람의 이해가 걸려 있는 수사인 만큼 언론을 경계해야 했고요. 그런데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육본 장교가 소환되기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집중적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거예요. 아주 드물게 어쩌다 전화를 받게 되면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줬죠. 그런데 일부 기자는 그걸 또 언론 플레이 한다고 쓰더라고요. 자기가 전화해 물어봐놓고선.

    언론은 육본 논리를 대변하는 기사를 계속 써댔어요. 여론이 호도되니 수사하기가 힘들었어요. 국방부에 육본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항의하자 ‘육군이 지금 국방부 말을 안 듣는다’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장관과 총장의 대립양상으로 비쳐지면서 사실상 항명사태가 벌어졌죠. 하도 답답해 공식 브리핑을 하게 해달라고 상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겁니다. 그랬더니 그걸 또 언론 플레이라고 난리를 치더군요.”

    -청와대 쪽에서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까.
    “정말 청와대와 무지하게 연결시키더군요. 우리와 업무상 연락하는 데가 민정수석실의 사정비서관실인데, 그쪽에선 수사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수사과정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어요. 협조관계이지 지시를 받는 관계가 아니거든요. 공식창구는 민정수석실인데, 오히려 NSC나 국방 관련 부서에서 더 큰 관심을 갖고 이래저래 개입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수사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차례 포착됐지요. 특히 보직해임 파동 때 심했어요. 그때는 군 수뇌부도 공공연히 ‘청와대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청와대는 우리 편이다’고 압박했고요. 솔직히 청와대와 가깝기로 따지자면 남재준 총장이 우리보다 훨씬 가깝지요. 어쨌든 대통령이 임명한 총장 아닙니까. 우리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지요. 게다가 경호실, 국정상황실, 안보보좌관실, 국방보좌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는 현역 장교들이 누구 편이었겠어요. 그들이 어떤 보고를 올렸겠습니까.”

    -장관의 태도는 어땠나요.
    “장관은 기본적으로 수사 취지엔 공감했어요. 다만 법조인 출신이 아니어서 수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적당한 선에서 수사가 끝나기를 원했고 정치적인 고려를 했죠. 그래서 우리에게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어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요.
    “장관은 진급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사실 법적으로 인사권은 장관에게 있는 것인데, 관행적으로 총장이 행사해왔거든요. 그래서 이참에 제도를 바꿔 육본이 행사하는 인사권을 국방부로 옮기자고 생각한 거죠.”

    “중령까지만 구속하라”

    장성 진급비리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두 사람에 따르면 12월초 이미 범죄의 실행과 그 결과에 대한 수사는 끝났다. 다음 단계는 범죄의 동기, 목적을 밝히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범위를 ‘윗선’으로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여기서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국방부 수뇌부가 수사확대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구속영장 청구부터 제동이 걸렸다. 국방부는 인사관리처장 L준장과 인사검증위 J대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하지 않았다. 군 사법제도에 따르면 대령급은 국방부 차관, 장성급은 국방부 장관이 승인해야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실무자가 구속됐는데 그것을 지시한 상급자가 구속되지 않는다면 누가 수사결과에 승복하겠습니까. 검찰관의 명예가 달린 일이기도 했어요. 그런 불공평한 수사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당시 국방부 수뇌부는 ‘범죄관계 입증이 부족하니 증거를 보완하라, 영장 내용을 보강하라’는 취지로 승인하지 않았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두 사람이 상관으로서 범죄에 관여한 증거를 다 잡았어요. 관련자 진술도 있었고요. 영장 내용을 보완하라는 얘기는 없었어요. 우리가 박주범 법무관리관과 김석영 검찰단장한테 듣기로는 영장 청구에 대해 장관은 불구속수사를 원한다고 했고 차관은 화를 냈다는 거예요. 장관은 노골적으로 ‘장군은 구속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고요.”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팀이 “일단 잡아넣고 수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는데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이 얘기를 하며 두 사람은 “이건 꼭 좀 밝혀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관은 수사 초기 이미 중령까지만 구속하라고 지시했어요. 결과적으로 장관 말대로 된 거예요.”

    -수사 도중 장관이 수사팀을 직접 만났다지요.
    “법무관리관, 검찰단장과 함께 두 차례 만났어요. 처음 만난 것은 압수수색하고 일주일도 안 됐을 때입니다. 그때 이미 중령 하나만 불구속기소하자고 하더군요. 물론 우리는 장관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누가 봐도 웃을 일이라고 했죠. 같은 죄목인데 누구는 구속하고 누구는 구속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지난해 육군 장성 진급인사는 남 총장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와 달리 사전에 청와대나 국방부와 조율하지 않고 진급자 대부분을 육본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외부 개입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육본이 심사 전에 내정한 52명 중 50명이 진급하고 2명만 청와대 결재과정에 바뀌었다는 것이 유력한 방증으로 얘기되곤 했다.

    하지만 수사를 한 두 검찰관의 얘기는 다르다. 사전에 유력한 진급 대상자 명단을 만드는 과정에 정치권 등 외부에서 개입하거나 남 총장의 사적인 인연이 작용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공식 조율은 없었던 같아요. 대신 비선(秘線)을 통해 정치권과 접촉하고 조율했다는 흔적이 있어요. 물론 개중에는 누군가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팔아 청탁이나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친분 있지만 구명 부탁한 적 없다”

    이와 관련, 기자도 청와대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있어 두 사람에게 물어봤다.

    -당시 남재준 총장의 측근이던 A씨가 대통령 핵심측근인 B씨에게 수사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A씨가 B씨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B씨가 ‘관여하지 않겠다’고 외면하는 바람에 A씨가 마음이 상했다고 해요.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습니다.”

    -A씨가 남 총장 지시로 B씨를 만난 건지, 아니면 평소 B씨와 친분이 있어 만난 건지 알고 있습니까.
    “자세한 것은 남 총장이 소환되면 알 수 있겠지요.”

    B씨는 기자의 확인요청에 “A씨와 알고 지내는 것은 사실”이라며 친분은 인정했으나 “그런 일로는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B씨에 따르면 A씨와 알게 된 것은 정권실세로 통하는 L의원과의 친분 때문이다. 두 사람 다 L의원과 가까운 관계다.

    A씨의 답변도 B씨와 비슷했다. B씨와 친분이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B씨에게 그런 부탁을 할 관계도 아니고 그렇게 말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육본의 장성진급 대상자 내정 과정에 외부 입김이 작용한 흔적이 있다면요?
    “전 국방부 장관 C씨의 친척이 진급된 것을 두고도 말이 있더라고요. 그는 지난해 해외에서 터진 사고에 대해 업무 책임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의 강력한 경쟁자가, 기무사 비위자료가 진급심사위에 제출되는 바람에 부당하게 탈락한 17명 중에 포함돼 있어요. 또 모 병과 H대령은 애초엔 진급 대상자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는데 심사 한 달 전쯤 총장 지시로 뒤늦게 끼어든 흔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발언에 황당, 분개”

    -청와대가 개입한 흔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확보한 증거 중에 두루마리가 있어요. 진급과에서 작성한 것인데, 거기엔 모든 진급자 명단이 적혀 있고 그 옆에 누구누구가 이 사람의 진급에 관련됐다는 식으로 적혀 있어요. 그중 모 병과 Y대령 이름 옆에는 ‘노 대통령↑’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인지 노태우 전 대통령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전직 대통령, 특히 육사 출신 대통령의 영향력과 근무 인연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Y대령은 그야말로 막차를 탄 사람입니다. 진급과는 수개월간 명단을 놓고 조정했는데, Y대령은 유력 진급대상자 명단에서 이름이 안 보이다가 심사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 갑자기 끼어들었거든요. 또 진급계장 C중령의 수첩엔 ‘유○○ 호(好)’라는 글귀도 보여요. 진급과에서 누군가의 ‘심중’을 헤아려 대상자를 선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지요.”

    -사조직을 파헤치려다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수사를 하다보니 개연성이 있어서 관심을 가진 것이지 그것이 수사 대상이나 목표는 아니었어요. 수사의 한 목적은 됐지요. 유력한 근거가 1997년에 만들어진 사조직 명단인데, 거기에 오른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들의 장성 진급률을 보면 놀랍습니다. 당시 이미 장성이 된 기수는 제외하고 육사 31기 이후 회원들만 봐도 기수마다 절반 이상이 진급된 것을 알 수 있어요.

    김대중 정부에서 이 명단을 군 인사 때 활용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육본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하던 장교들로부터 확인한 겁니다.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들은 지금도 진급과 보직 인사에서 앞서가고 있어요. 두 조직은 하나회처럼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예요. 하지만 많은 장교가 두 조직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조직 수사는 실패한 게 아니라 중단된 것입니다. 온갖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력을 다해 수사를 막으니 더는 진행하지 못한 거지요. 진급비리 수사는 미완의 수사예요. 범죄의 결과는 확인했는데 돈 따위의 범죄 동기를 밝히지 못했으니까요. 외부 압력 탓이긴 하지만 우리의 능력부족도 한 원인이겠죠.”

    -과거 진급비리 수사는 대체로 뇌물수수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까.
    “병무비리 수사를 해보니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은 돈 안 주고 말 한마디로 자식의 병역을 면제시키더라고요. 진급비리는 조직적 범죄입니다. 돈만 좇는 수사는 한계가 있고 위험하기도 하죠. 결과적으로 메이저 언론이 군 인사 개입 의혹을 사고 있는 모 정치권 실세를 엄청 비호한 건지도 몰라요. 우리가 청와대 사냥개라는 도그마에 빠진 바람에.”

    -육본에서는 계속 “군검찰이 유죄혐의를 입증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요.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는데, 진급비리의 동기라 할 만한 ‘돈’이 안 나왔다고 하는 소리지요. 하지만 그보다 공소사실을 두고 따져야죠. 육본과 육본 논리를 따르는 일부 언론은 공소사실을 호도했어요. 우리가 마치 진급 대상자 52명의 사전 선정과정에 대해 수사하는 것처럼. 그래서 선정 및 심사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지적한 것은 육본에서 미리 내정한 52명을 다 진급시키려다보니 이러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거든요. 실무자는 특정인의 기록을 고친 것을 인정했고, 상급자인 L준장은 인사검증위 도장으로 허위 공문서를 만든 사실을 시인했어요.”

    -과거에도 비슷한 수법의 비리가 있었던가요.
    “비슷했죠. 다만 지난 번 진급인사는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답습하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것처럼 가장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이를테면 인사검증위를 만들어 공정한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심지어 조사받은 장교 중에는 ‘옛날 총장은 아예 찍어줘서 오히려 덜 피곤했다’고 털어놓은 사람도 있어요.”

    “왜 내 계좌 추적하냐”

    장성 진급비리 수사에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남재준 총장의 소환조사 여부였다. 하지만 끝내 남 총장은 조사를 받지 않은 채 4월 말 임기를 마치고 전역했다.

    -남재준 총장한테 소환장을 보냈습니까.
    “여러 번 보냈지요. 직접 들고 가서 수석 부관한테 전달하기도 하고. 끝내 응하지 않았지요. 한 가지 웃긴 게, 육군총장이 서울로 올라와 총장공관에서 국방부 차관과 법무관리관한테 수사보고를 받는 거예요. 진급과에서 사전에 작성한 진급 대상자 52명 명단이 나온 이후 남 총장은 또다시 서울의 총장공관에서 이들에게 보고를 받으며 왜 자신의 계좌추적을 하냐고 나무랐대요.

    사실 그때까지 우리는 누구에 대해서도 계좌추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전날 일부 언론에 군검찰이 육군 수뇌부에 대해 계좌추적을 할 예정이라는 추측기사가 나갔어요. 그걸 보고 남 총장이 항의한 거죠. 그래놓고 ‘돈이 안 나왔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남 총장은 그 뒤에도 자신에게 수사내용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고 해요. 이게 군대 사법이에요. 법무관리관이 ‘총장한테 보고해야 한다’면서 저희한테 수사보고서를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언제 피의자 신분이 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수사팀이 보고서를 만들다니요.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입니까. 수사대상이 계속 수사보고를 받는 거예요.

    장관이나 차관에게 수사진행상황을 보고하잖아요. 그럼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피의자인 육본측에 전달돼요. 육본측은 다시 이를 조사받는 피의자에게 휴대전화를 통해 알려주고 불리한 진술을 못하도록 입을 막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L준장이 한창 진술하고 있는데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더군요. 나중에 알아보니 참모차장 번호였는데, L준장은 통화하고 난 후 ‘이런 식으로 내가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 다 새나가면 나는 앞으로 말 못한다. 내가 다 얘기하는 것으로 되지 않냐’고 항의하고는 조사를 받다 말고 가버렸어요.”

    -남 총장과 가까운 사람이 얼마나 진급됐나요.
    “남 총장과 근무 인연이 있는 장교들 중 15명이 (준장) 진급대상이었는데 그중 11명이 됐어요. 진급과에서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그들의 명단을 별도로 관리해왔어요. 그래놓고 진급심사를 ‘시스템이 다 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죠.”

    수사팀과 국방부 수뇌부의 갈등은 12월15일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점으로 치달았다. 대통령은 이날 장성 진급비리수사와 관련해 “적법한 수사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여론의 힘을 빌려 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국방부는 이 발언을 소개하며 기자들에게 후자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군검찰의 ‘언론 플레이’에 대해 경고했다는 보충설명을 곁들이며.

    -대통령 발언을 전해 듣고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말할 수 없이 황당하고 불쾌했죠. 처음엔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허위발표라고. 대통령에게 허위보고가 올라갔을 거라고 추측했죠. 그런데 대통령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대통령과도 맞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장성 진급비리 수사 주역, 남성원·최강욱 전 국방부 검찰부장

    최강욱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

    -대통령 발언 직후 수사여건이 크게 악화됐다고 들었는데요.
    “무엇보다 사건 관련자들이 소환에 불응하는 게 큰 문제였어요. ‘왜 안 나오냐’고 물으면 ‘대통령 말씀도 못 들었냐’고 하면서. 국방부와 육본이 대통령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군인들에게 홍보한 탓이었어요. 대통령 발언과 수사는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음날 중요 피의자인 L준장을 다시 불렀어요. 하루를 끌다가 그 다음날에 출두하더군요. 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에 대한 압박도 점점 심해졌지요. 인사참모부장인 Y소장을 소환하려고 하자 위에서 기를 쓰고 막더군요. 또 진급심사위원 소환도 못하게 했어요. 군이 시끄러우니 필요하면 방문조사하라면서. 현직 지휘관이라면 모를까, 지휘관이 아닌 사람까지 소환하지 못하게 하는 건 수사를 그만하라는 뜻이었지요. 심사위원을 맡았던 합참 H준장은 본인이 출두의사를 밝혔는데도 못 오게 막았어요. 검찰단장에게 보고하자 그 자리에서 H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올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항의하니까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 일로 심하게 언쟁을 벌였습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이틀 후인 12월17일 두 사람은 육본 검찰부에서 파견 나와 있는 최필재 검찰관과 함께 검찰단장에게 보직해임신청서를 제출했다.

    -보직해임을 요구한 데 대해 경솔한 행동이라든가 계산된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수사가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서 구속영장 청구와 소환 문제로 지휘부와 심한 마찰을 빚은 게 (보직해임 요청의) 직접적인 계기였어요. 검찰단장은 우리한테는 결재를 받아 오겠다 하고는 상부에만 갔다 오면 도리어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대통령한테는 계속 허위보고가 올라갔어요. NSC, 안보보좌관실은 물론 심지어 민정에서도 양비론으로 보고를 올렸다고 하더군요. 군도 문제지만 군검찰관도 오버하고 있다, 위아래도 없이 날뛴다, 그래서 군심이 요동치고 있다고.

    검찰단장이 중간에 끼여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상부에서 영장청구를 승인하지 않아 열흘 가까이 수사가 제자리 상태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은 우리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자기네가 책임지고 결재 받아오겠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보직해임을 요청하거나 전역지원서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보직해임신청서를 낼 거면 같이 내달라고 우리 것을 써서 단장에게 전달했어요. 말하자면 행동을 같이 하자는 뜻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우리만 낸 꼴이 됐죠. 두 사람은 안 냈고요.”

    -당한 겁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두 사람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위에서는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우리가 계속 밀어붙였으니. 두 사람이 자기들 말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는 다른 사정이 있겠죠.”

    두 사람은 보직해임신청서에 ‘정상적인 수사를 진행할 수 없으므로 검찰관 직에서 해임해달라’고 적었다. 국방부는 12월20일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두 사람의 보직해임을 결정했다. 애초 해임사유는 ‘YTN 기자를 밖에서 만나 보직해임 신청서를 낸 사실을 알리고 수사불만을 토로했다’는 것. 하지만 이는 조작된 것이었다. YTN 기자가 최강욱 고등검찰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보직해임 신청에 대해 묻기에 답변해준 것이 전부였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위원회는 ‘본인이 원했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해임사유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는 불법이었다.

    “법 규정상 당사자가 보직해임을 원하면 보직변경을 해야 합니다. 보직해임은 징계이므로 사유가 없으면 본인이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절도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도 절도 사실이 없다면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는 이치지요. 우리 뜻은 이런 상황에서는 수사를 못하겠다는 거지, 징계성 보직해임을 요구한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참에 우리를 수사팀에서 내보내려고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군대가 흔들리니 수사 그만해야’

    사실 그때 두 사람은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보직해임이 돼 3개월간 다른 보직을 못 받으면 현역복무부적합자가 돼 강제로 전역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된다. 군법무관은 군에서 10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는데 현역복무부적합자로 전역당하면 10년을 채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관은 법무관리관을 통해 우리에게 다른 보직을 받으라고 자꾸 권하더군요. 검찰관 자리 빼고는 다 주겠다며. 거절했지요. 일단 보직해임결정을 취소한 다음에 얘기하자고. 설사 변호사 자격이 상실돼도 안 받겠다, 나중에 법적 투쟁으로 되찾아오겠다고 했죠.”

    두 사람이 이처럼 ‘소송 불사’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청와대 민정과 여당 법사위에서 이들의 보직해임결정을 문제삼자 국방부는 ‘체면 안 구기고’ 물러서는 수순을 찾았다.

    “청와대 민정에서 보직해임 사유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 국방부에 원복(원대복귀)이나 (보직해임) 취소를 권유한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가 소송을 벌이면 시끄러워지고 질 게 뻔하니…. 장관이 인사소청을 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내면 곧바로 (보직해임을) 취소해주겠다고.”

    12월30일 인사소청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문제의 NSC 쪽지 사건이 있었다.

    “군검찰이 접촉하는 청와대 공식라인은 민정수석실인데, NSC와 안보보좌관실이 개입했다는 징후가 있었어요. 심지어 이해찬 총리까지 나서서 ‘군대가 흔들리니 (수사를) 그만해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NSC나 안보보좌관실에서 개입했다고 할 만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국방부 인사소청심사위원회 회의 도중 위원장인 안기석 해군 소장이 NSC측으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았다고 들었어요. 쪽지엔 보직해임을 취소하면 안 된다고 씌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권진호 안보보좌관이 윤 장관에게 ‘청와대 뜻은 육군총장을 소환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들었어요. 또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군검찰이 너무 설친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유효일 국방부 차관은 보직해임 파동으로 임명된 새 수사팀장에게 ‘청와대에 민정만 있는 게 아니다. 청와대의 부서 대부분은 우리 편이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들이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수사를 막으려 한 이유가 있겠지요. 짚이는 데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 말하기에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C의원의 정치적 타협안 거절

    -보직해임 파동 초기 청와대 민정에서도 발을 뺀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요. 그래서 군검찰이 기댈 데가 없어졌다고. 그런데 당시 시민사회수석이던 문재인 현 민정수석이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들었는데요.
    “초기엔 상황이 매우 안 좋았어요. 청와대 대부분의 비서실에서 우리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민정도 양비론 차원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보직해임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 금요일인데, 월요일에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의견을 정리하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대세는 군검찰에 매우 불리했다고 해요. 그런데 문 수석이 방향을 바꿨다고 들었습니다. 문 수석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사태의 실상을 파악하고 우리에게도 사람을 보내 보직해임 요청의 진의를 물어본 후 대통령에게 따로 보고를 올렸다고 해요.”

    장성 진급비리사건에 대한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청와대와 국방부 주변에서는 군 사법개혁에 적극적인 여당 C의원이 남재준 총장을 만난 후 두 사람에게 ‘공소 취소’를 제의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C의원이 군검찰 수사를 지지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자는 당시 청와대 국방 관련 부서 및 국방부 장관실 관계자에게 이 같은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들은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다.

    -C의원이 ‘공소 취소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취지로 말했다면서요.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어요. C의원은 ‘대통령도 사태가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간의 수사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얻었으니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볼 수 있겠죠.”

    -공소 취소 조건으로 얘기된 게 있나요.
    “육본측에서 ‘인사참모부장인 Y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문책 차원에서 인사조치하고 남 총장은 전역할 때 장성 진급비리 사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자’고 대여섯 번 제안해왔어요. 물론 우리는 거절했죠.”

    군검찰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장성 진급비리 수사가 군 사법개혁, 또는 군검찰의 독립 추진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육본측의 대응논리인데, 언론계에도 이런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

    -장성비리 수사를 군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 군검찰이 특공대로 선봉에 섰고 그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식으로.
    “도대체 군 사법개혁을 하면 안 됩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사법개혁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야 있었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수사는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시작됐습니다. 사법개혁도 좋고 군검찰 독립도 좋지만, 변호사 자격 박탈 위기까지 감수하며 그것 때문에 싸운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잘 몰라서 그렇게들 얘기하지 군 사법개혁 내용을 보면 군검찰관 자리가 엄청 줄게 돼 있어요. 군검찰이 권력기관이 되려 한다는 건 법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은 군 지휘부의 ‘희망사항’일 뿐 실상과는 거리가 멀어요. 우리가 사개추위에 요구한 건 수사가 외압을 받지 않게 조직을 독립시켜 달라는 것뿐이에요.”

    수사를 내부고발로 치부

    -각군 본부와 국방부로 분산돼 있는 군검찰 조직을 통합해 국방장관 직속의 독립기관으로 둔다는 방안에 대해서도 결국 장관의 지휘권이나 영향력을 더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요.
    “장관이라고 사법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습니까. 사개추위 안(案)대로 관할관 제도를 폐지하면 장관이 수사와 재판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사라집니다. 현 제도는 부대 지휘관인 관할관에게 영장 청구 승인권, 재판관 구성권, 형량 감경권 등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어요. 이처럼 지휘권에 종속된 사법권을 독립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군검찰을 그나마 문민화된 장관 소속으로 두자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인사와 예산이 독립돼야죠. 모든 것을 권력관계, 즉 높은 놈과 낮은 놈, 힘 센 놈과 약한 놈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자꾸 엉뚱한 시비를 제기한다고 봐요.”

    -장성 진급비리 수사에 공감하는 사람들 중에도 군검찰이 수사를 요령 있게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던데요.
    “실상을 잘 몰라 하는 소리예요. (육본 인사참모부를) 압수수색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장관이 수사팀장에게 직접 ‘중령 하나로 끝내자’고 말하는 상식 이하의 사태가 벌어졌어요. 상대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요령도 있는 거지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새삼 느낀 바지만, 그들은 ‘질풍노도의 세대’처럼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다소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소신껏 말하고 행동해왔다. 그 결과 적을 많이 만들었다. 더욱이 그 무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치외법권 지대로 인정받는 군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수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물리적 제약으로 ‘팩트’를 다 밝히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외부압력과 시간 부족, 능력 부족으로 모든 걸 다 밝히지 못한 채 떠나게 됐습니다.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수사에 대한 근거 없는 삐딱한 시각이었어요. 수사를 순수하게 안 보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민간 검찰과 군검찰의 수사여건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릅니다. 민간 검찰이 오버하는 것을 군검찰에 고스란히 적용해 비판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군에선 수사기관의 정상적인 수사행위를 내부고발쯤으로 치부해요. 언젠가 참여연대 관계자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대한민국 역사상 내부고발자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당신들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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