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평범함에서 묻어나는 일탈 충동 이요원 귀여운 악바리 정려원

  • 조성아 일요신문 기자 ilyozzanga@hanmail.net

    입력2005-08-24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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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함에서 묻어나는 일탈 충동 이요원 귀여운 악바리 정려원
    평범함에서 묻어나는 일탈 충동 이요원 귀여운 악바리 정려원
    결혼후 연예활동을 중단하고 살림과 육아에 재미를 붙이며 지내던 이요원은 어느 날 우연히 이재규 PD를 만났다. 이재규 PD는 드라마 ‘다모’의 성공에 힘입어 MBC를 떠나 외주제작사로 스카우트된 상황이었고, ‘다모’와는 또 다른 야심찬 시대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연한 만남이 있은 지 며칠 뒤 이요원은 이 PD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패션 70s’의 시놉시스였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흥미진진했고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이요원이 좋아하는 시대극이었다. ‘대망’으로 사극의 재미를 흠뻑 느꼈던 이요원은 언젠가 또 한번 과거의 삶을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이재규 PD와 이요원, 두 사람에게 ‘패션 70s’는 ‘운명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욕심만큼 두려움도 있었다. 활동을 그만둔 지 벌써 2년째, 그동안 언론에 나서기를 꺼려온 이요원에게 안티 팬들은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스물셋, 너무 어린 나이의 갑작스러운 결혼이 사람들에게 의아하게만 비쳐졌던 걸까. 이요원은 2003년 1월 박진우씨와 결혼한 뒤 곧바로 유학을 떠났고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원정출산 의혹’을 받았다.

    이요원은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아낀 덕인지 사람들의 이런저런 수군덕거림도 이내 잠잠해졌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그는 잘 안다. 단번에 매료당한 ‘패션 70s’ 시놉시스를 앞에 두고 거듭 망설인 것도 그 때문이다.

    욕먹어도 연기하고 싶다



    이요원이 컴백을 결심한 건 오로지 남편 덕분이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편이 되어주는 신랑이 있어 용기를 냈다”는 것. 든든한 지지자인 남편 박진우씨와는 2년 동안 불같이 연애했다고 한다. 남들은 한창 나이 때 왜 결혼을 하냐고 했지만, 이요원에게 사랑은 그랬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결혼을 미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미련 없이 결혼을 택했고 연예활동도 접었다.

    결혼은 배우에게 전환점이 되기도 하지만 여배우에게는 그다지 득이 되지 않는 편이다. ‘아줌마 배우’라는 타이틀은 종종 연기 활동의 굴레가 되고 만다. 선택할 수 있는 배역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요원에게 결혼은 좀더 넉넉한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아줌마스러움’이 예전의 꼿꼿하고 새침했던 이요원을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오히려 훨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안정되고 편안해진 그 마음으로 말이다.

    ‘패션 70s’는 기대보다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해 아쉬움을 줬다. 연장방영 여부를 두고도 배우들과 제작진 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아 잡음을 일으켰다. 이요원에게도,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애를 쓴 이재규 PD에게도, 주진모와 김민정 천정명 등 출연진 모두에게 ‘패션 70s’는 기대만큼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시청률이 저조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요원만을 두고 보면, 그가 맡은 ‘더미’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일부 시청자들이 ‘이요원의 연기력 부족’을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이요원의 연기력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인물의 관계와 구도 탓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극이 후반부로 넘어가며 다소 억지스럽게 흘러가는 전개에 시청자들은 흥미를 잃어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더미만 일방적으로 일이 잘 풀린다”는 쓴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패션 70s’는 영상미에 대해서만큼은 칭찬을 들었으나,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과 열정을 다루려는 당초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애초부터 주진모(김동영 역)와 천정명(장빈 역)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김민정(고준희 역)과는 우여곡절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요원(더미 역)은 주변 인물들과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빛을 내는 인물이었다. 이 관계가 엉성할 때 이요원 또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이요원이 ‘더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성희 작가가 직접 나서 이요원을 두둔했다. ‘더미’가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배우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부족이라고. 그럼에도 이요원이 ‘더미’역에 100%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이요원 하면 ‘더미’보다 ‘신우’의 이미지가 훨씬 도드라진다. ‘푸른안개’의 신우는 40대 유부남 성재(이경영 분)와 사랑에 빠지는 20대 초반의 여자. 두 사람은 ‘불꽃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가슴 저린’ 사랑을 했다. 성재의 차를 히치하이킹해 옆 좌석으로 뛰어든 신우에게선 상큼한 레몬향기가 나는 듯했다. 뛰어난 미모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젊음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싱그러우니까. 그때 이요원의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다.

    ‘푸른안개’로 스타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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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푸른안개’에서 40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20대 초반의 여성을 연기해 주목받은 이요원은 이후 ‘대망’ ‘순정’ ‘패션 70s’ 등에 주연급으로 출연했지만 흥행성적은 저조했다. 그럼에도 이요원이 톱스타로 분류되는 건 그만의 확실한 생존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눈부신 별들의 세계에서는 그의 평범한 외모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인다.

    ‘푸른안개’는 2001년 방영 당시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언제나 그렇듯 여론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표민수 PD의 깔끔한 연출력과 이경영, 김미숙 등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드라마는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이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배우 이요원도 이 드라마로 단숨에 스타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는 자칫 속된 감정으로 비칠 수 있는 세심한 내면 연기를 꽤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만약 이요원의 외모가 빼어났다면 신우 역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을 거다. 사랑은, 흔히 ‘불륜’으로 표현되는 극중 성재의 사랑은 그 상대가 자신의 아내보다 뛰어나서 빠져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우의 외모는 평범했어야 옳았다. 이요원의 캐스팅은 그래서 주효했다. 신우의 이미지는 그렇게 묘사된다. 극의 마지막에 성재가 신우를 떠나보내는 장면에 한 편의 시 구절이 등장한다.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이요원은 도발적이거나 섹시한 분위기의 소유자는 아니다. 화려하고 어디서나 눈에 띄는 마스크도 아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지 않고 깡마르고 보이시한 몸매는 그를 아직까지 ‘소녀’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요원은 청순가련형 소녀의 이미지도, 모범생다운 여고생의 이미지도 아니다.

    데뷔 초 잡지와 CF에서 모델로 활약할 무렵 이요원은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어필했다.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덧니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지금은 교정으로 없어졌다). 쌍꺼풀 짙지 않은 눈매와 덧니가 닮아서였을까. 훗날 이요원은 영화 ‘남자의 향기’에서 명세빈의 아역을 맡아 스크린에 데뷔한다.

    1998년 SBS 드라마 ‘승부사’와 ‘미우나 고우나’에 출연하면서 발랄하고 신세대다운 이미지로 사랑받은 이요원은 KBS ‘학교2’ ‘행진’에 이어 ‘꼭지’에서 원빈을 쫓아다니는 여고생 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원빈에 가려 이요원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노출이 덜 된 조연급이라는 조건이 오히려 그를 표민수 PD의 눈에 들게 했고, ‘푸른안개’에 캐스팅되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여느 주연급 여배우들에 비해 이요원에겐 눈에 띄는 히트작이 없다. ‘푸른안개’ 이후 두 번째로 주연을 맡은 ‘순정’ 역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콤비를 이뤄 큰 기대를 모았던 ‘대망’도 크게 흥행하진 못했다. ‘대망’에서 이요원은 비련의 여주인공 ‘여진’을 맡아 손예진 장혁 한재석 등과 함께 연기했다.

    드라마 ‘푸른안개’가 이요원을 널리 알린 작품이었다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는 이요원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조연으로 출연한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 이어 세 번째 영화였다.

    스무 살 또래 다섯 여자의 희망과 절망을 담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은 같이 출연한 배두나와 함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청룡영화제 신인여우상과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와 ‘서프라이즈’에 연이어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역시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큰 히트작이 없음에도 이요원이 ‘톱스타급’ 평가를 받는 것은 왜일까. 한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이요원은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찾았다”고 분석한다. 뛰어난 외모와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가득한 연예계에서 이요원이 찾은 전략은 바로 평범함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편한 것 아닐까. 이요원 스스로도 “난 예쁘지 않다. 평범하게 생겼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데뷔 초엔 이 외모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요원의 얼굴에서는 평범함과 동시에 일탈성이 느껴진다. 이 일탈감은 그가 안정된 캐릭터보다 ‘푸른안개’의 ‘신우’나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와 같이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에 담겼을 때 훨씬 빛을 발한다.

    삼순이보다 주목받은 희진

    평범함에서 묻어나는 일탈 충동 이요원 귀여운 악바리 정려원

    감각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를 모은 그룹 ‘샤크라’의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한 정려원은 지난해 그룹에서 탈퇴하고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영화 ‘B형 남자친구’와 시트콤 ‘프란체스카’를 거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올라탄 정려원은 ‘희진’ 역으로 마침내 확실한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의 눈빛엔 자신감과 행복이 가득했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찍고 있는 정려원은 그렇게 달라져 있었다.

    정려원은 주연급에 처음 캐스팅된 데다 본격적인 연기는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다. 적잖은 부담을 갖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정려원은 당당히 스타급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극중 그가 맡은 ‘희진’역은 애초엔 그리 비중이 높지 않았다. 드라마의 원작소설에서도 희진의 캐릭터는 미미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희진과 상대역 헨리(대니얼 헤니 분)가 예상외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자 드라마의 전개가 달라졌고, 희진의 비중도 주연급 못지않게 커졌다. 연출을 맡은 김윤철 감독조차 “희진이가 이렇게 사랑받게 될 줄 미처 몰랐다”고 털어놨을 정도. 그러니 정려원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가. 실감이 나지 않을 만도 했다. “요즘엔 길가다 아주머니들이 알아봐주시는 걸 보고 정말 드라마의 힘을 느꼈다”며 웃음짓기도 했다.

    하지만 희진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캐릭터다. 그는 여느 드라마의 주·조연급 캐릭터와는 다르다. 철저한 악역이거나, 주인공을 배척하는 인물과 같은 흔한 캐릭터가 아니다. 기존 드라마의 악역들이 그 악을 갖게 된 이유의 타당도에 따라 사랑을 받았다면, 희진은 오히려 주인공 삼순보다 ‘선한’ 인물이다. 그런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매력을 갖고 있었기에 사랑받은 것이다.

    희진은 사랑하던 남자를 삼순에게 보내면서도 악한 인물로 돌변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악역이 다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극한 성격이나 상황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희진은 외모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내면 역시 끝까지 품위를 유지하며 주인공 김삼순과는 또 다른 구도로 드라마를 이끌어갔다. 이와 같은 구도는 김삼순을 사랑받게 하면서 희진도 사랑을 받는 설정이었다.

    정려원에게 “희진이가 너무 예쁘게 그려지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봤다. ‘누가 연기해도 예쁘게 보였을 만한 배역 아니냐’는 딴죽이었다. 사실 희진을 그만큼 연기할 만한 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자 정려원은 오히려 겸손한 대답을 내놓았다. “희진이가 정말 예쁘게 나와 연기하면서 희진이를 깊이 사랑하게 됐다”고. 그는 희진에게 푹 빠져 있는 듯 보였다. 그가 드라마를 끝내고 “내게 ‘편한 운동화’ 같던 희진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털어놓은 속내가 가슴 깊이 와 닿은 것도 그래서였다.

    망가지는 것 두렵지 않아

    영화 ‘B형 남자친구’를 찍고 있을 때 정려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하미(한지혜 분)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이 영화는 정려원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하지만 지난 2월 개봉한 최근작임에도 그가 이 영화에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당시만 해도 정려원은 존재감이 미미한 조연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었다.

    더구나 정려원은 더부룩한 짧은 가발을 머리에 쓰고 촌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 속 살사 클럽에서 춤추는 장면에서는 남자와 커플이 되지 못해 어리숙하게 있다가 ‘남는’ 남자와 우여곡절 끝에 연결되는 설정이었다. 그때 맡은 ‘보영’은 정려원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외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때 정려원은 “내가 그동안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가수 시절 무대 위에서 언제나 섹시한 옷차림으로 노래하고 춤추던 일이 그에겐 그리 좋은 기억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망가지더라도 편한 모습으로, 이왕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촌스럽더라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쓰려고 산 가발까지 들고오는 열의를 보였다.

    “가발은 제가 쓰고 다니려고 산 건데 영화 촬영할 때 한번 써보려고 가져왔더니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옷도 최대한 촌스럽게 입어야 해요. 예뻐 보이지 않는 역이라 사실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아예 망가지겠다고 결심하니 이젠 마음이 편해요. 사실 처음엔 섹시한 캐릭터로 섭외가 오긴 했는데, 가수 할 때랑 비슷한 느낌이어서 거절했어요.”

    반면 정려원을 ‘뜨게’ 한 캐릭터인 희진은 그의 실제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희진은 스타일리시한 외모의 소유자로 정려원이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정려원은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시청자들은 패션감각이 뛰어난 정려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캐스팅되기 전 출연하고 있던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엘리자베스 역시 타고난 패셔니스트, 뱀파이어계의 ‘얼짱’ 역이었다.

    평범함에서 묻어나는 일탈 충동 이요원 귀여운 악바리 정려원
    정려원은 특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화면 속에서 예뻐 보였다. 갸름한 얼굴선과 이목구비, 깡마른 듯한 몸매는 TV에서 더 예쁘게 잡힌다. TV에서 조금 통통해 보이는 배우도 실제로 보면 늘씬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TV 화면이 사람을 좀 부어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려원은 실물도 예쁘지만 TV에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마스크다.

    재미있는 것은 이요원과 정려원이 매우 비슷한 얼굴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인물학자는 두 사람의 얼굴형을 ‘오목형’으로 분류했는데, 높고 오뚝한 콧날과 광대뼈가 나온 일반적인 여배우의 얼굴형과는 정반대라고 한다. 최근 한 네티즌 설문조사에서도 두 사람은 닮은꼴 스타 1위로 꼽혔다.

    다신 가수하지 않겠다

    정려원은 호주 유학시절 한국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가수 오디션에 참가,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2000년 1집 앨범 ‘한’을 통해 그룹 ‘샤크라’로 데뷔했다. 샤크라로 활동하던 시절 성을 빼고 ‘려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그는 당시 많지 않은 여가수 그룹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수에서 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한 이혜영이 이들의 코디네이터로 나서면서 샤크라는 빼어난 패션감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멤버 중에서도 연예인으로 끼가 많던 려원과 황보는 가요 프로그램뿐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 등에서도 활약했다.

    하지만 정려원은 2004년 그룹 ‘샤크라’를 탈퇴하고 솔로 선언을 했다.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부터 드라마나 영화계로부터 종종 출연제의를 받았던 그가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위해 가수를 그만두기로 한 것. 과감히 연기자로의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정작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룹에서 탈퇴했지만 정려원의 앞길은 만만치 않았다. 2002년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에 ‘간호사’역으로 출연했지만 단역에 만족해야 했다. 2004년 첫 번째 영화 ‘B형 남자친구’에서도 여주인공의 친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주연급이나 조연급의 배역을 따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려원 자신도 그건 욕심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디션을 본 드라마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이 상해 고민에 빠져 지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영화 ‘B형 남자친구’를 찍을 때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찍을 때도 정려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지난 1년 동안은 아예 TV를 보지 않았어요. 밤 9시만 되면 자버렸죠. 오디션을 수십 번도 넘게 봤는데 보는 것마다 다 떨어지고…. 배우는 내 길이 아닌가, 정말 깊은 회의에 빠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때마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내가 가수를 그만두고 배우 하기로 결심한 것이 무색해지는 게 싫기도 했고요.”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 캐스팅됐다가 불발된 일 또한 정려원에게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그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지만, 그땐 정말 속상했다고 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맘고생한 거였구나, 지금은 이렇게 스스로 위로할 정도로 성숙해졌다.

    7년간의 외국 생활 덕분에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근사한 영어실력을 뽐낼 기회도 생겼고, 자연스러운 영어 대사로 시청자들의 사랑도 받았다. 당시 그는 상대역 대니얼 헤니와 드라마 촬영 전부터 친분을 나누고 있던 터였다.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나중에 상대역으로 캐스팅된 사실을 알고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대본이 나오면 함께 영작을 해 대사연습을 했다. 그랬으니 영어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정려원은 “드라마가 끝나고도 대니얼과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촬영장에서 만난 두 사람도 꽤 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대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찍기 놀이를 하는가 하면, 서로 간식을 챙겨주느라 바빴다.

    정려원은 다시 가수를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너무 힘들어서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구체적인 이유까지 털어놓기는 힘든 것 같았다. 더 묻지 않았다. 배우가 되지 못하더라도 가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하는 그녀가 부디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가 가진 지금만큼만의 의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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