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눈으로 말하는 그 대니얼 헤니

“연애선수? 난 여자 마음 하나 못 잡는 약한 남자”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5-08-25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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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 NBA 진출 노리며 잘나가던 농구선수
    • 오디션장 앞에서 친구 기다리다 모델로 캐스팅
    • 나는 사랑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은 여자들
    • “우리 엄마는 굉장히 강한 사람”
    • 입양기관, 어린이 보호시설 돕고파
    눈으로 말하는 그 대니얼 헤니
    “왔다,왔어.” 8월13일 토요일 오후 1시20분,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한 무리의 여성들은 아마도 이 순간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영국식 꽃꽂이를 가르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알마 마르소’에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대니얼 헤니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에게 한국인의 피를 나눠준 어머니와 함께.

    지난 여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한 대니얼 헤니는 가뜩이나 폭염으로 데워진 전국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그가 맡은 역할 헨리 킴은 남자주인공 진헌(현빈 분)의 옛 여자친구인 희진(정려원 분)의 주치의. 희진을 따라 미국에서 온 헨리 킴은 희진을 사랑하지만 조급하게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지 않고, 진헌을 향한 희진의 마음이 서서히 자신에게 돌아설 때까지 보호자 노릇에만 충실한다.

    유일한 애정표현이라면 속눈썹 짙은 눈으로 부드럽게 희진을 애무하는 것. 조각가의 섬세한 손길로 다듬은 듯한 얼굴에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 거기에 상대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 쿨(cool)한 여유라니…. 그러면서도 상대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고 사소한 일까지 기억해주는데, 어느 여자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여자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던가.

    대니얼 헤니는 2004년 11월, 남성 화장품 오디세이 광고를 통해 한국에 처음 얼굴을 알렸다. 회색빛 도시를 배경으로 물속을 유유히 걸어와 연인의 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품었다 빼면서 반지를 끼워주는 그 신비한 분위기의 남자가 바로 대니얼 헤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타난 대니얼 헤니에게선 광고 속의 관능적인 모습도, 패션 잡지에서 보았던 근육질의 남성적인 매력도 없다. 옅은 쌍꺼풀진 눈이 꼭 닮은, 작고 순박한 어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안은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와 부산, 제주 여행

    대니얼 헤니는 1979년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는 두 살 때 부산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시간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 헤니씨가 한국을 찾은 건 입양된 후 이번이 처음. 7월27일 한국에 도착해 고향으로 알고 있는 부산과 ‘내 이름은 김삼순’ 촬영지 중 하나인 제주도를 아들과 함께 여행했다. ‘황해즐’이라는 이름 석 자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정보인 크리스틴 헤니씨는 친부모를 찾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지 큰 소득이 없다.

    이날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대니얼 헤니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아직 “뭐지?” “병원” “외국사람” 정도의 단어밖에 말하지 못하기 때문. 물론 듣는 실력은 훨씬 낫다. 기자의 짧은 영어실력을 중간에서 매니저가 보완해줬다. 그는 목소리도 멋지다.

    -어머니를 오랜만에, 그것도 한국에서 만난 기분이 어떤가요.

    “인천공항에서 엄마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동양인, 특히 한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니까 엄마를 못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미국에 있을 땐 어딜 가나 엄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한국에선 분간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다행히 엄마가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달려가 꼭 껴안았죠. 행사며 촬영 때문에 엄마랑 오붓하게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부산과 제주도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요트도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엄마는 뭐든 다 드셨어요. 전복에 산낙지까지.”

    눈으로 말하는 그 대니얼 헤니

    은퇴 후 한국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싶다는 크리스틴 헤니씨.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더군요.

    “아버지는 강한 분이세요. 재미있고요. 엄마랑 비슷하세요.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뭘 하든 믿고 맡기셨거든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에요. 저와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선 좀체 보기 힘들 정도로 다정한 사이예요. 지금도 집에 가면 자기 전에 굿나잇 키스를 해드리죠.”

    대니얼 헤니는 얼마 전 한 토크쇼에 출연해 아버지가 ‘전형적인 블루칼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매니저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니얼 아버지의 직업은 기계공(mechanic). 대니얼이 ‘맥가이버’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이번에 아내와 함께 방한하지 않은 이유는 장시간의 비행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란다.

    “돈 벌고 싶지 않냐?

    이번엔 대니얼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대니얼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대니얼은 어렸을 때 매우 창의적이었어요. 두 살 때부터 옷도 잘 입고, 뭘 하든 아주 재미있어했죠. 잠에서 깨면 춤을 추며 돌아다니고,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가 그대로 흉내 내 웃음을 주기도 하고요. 하여간 재미있는 아이였어요.”

    -농구도 잘했다죠.

    “제가 살던 미시간의 작은 마을에서 운동을 잘하는 건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티켓 같은 거였어요. 형제자매가 없으니 혼자 할 수 있는 농구를 몇 시간이고 연습했고, 그러다 농구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대니얼의 고향인 미국 미시간주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더 데일리 뉴스’ 7월18일자엔 대니얼 관련 기사가 크게 실렸다. 대니얼을 미시간주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로 소개한 이 기사엔 그의 학창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의 모교인 칼슨 시티 크리스털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와 동문들에 따르면 대니얼은 한 경기에서 혼자 28점을 득점하며 소속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 팀의 리더이자 포인트 가드로 방어와 패스, 리바운딩과 득점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또 대니얼이 매일 8마일씩 뛸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으며 몸 관리를 위해 지방질을 먹지 않고, 칼로리가 낮은 다이어트 음식만 섭취했다고 소개했다.

    고교시절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린 대니얼은 일리노이대 시카고 캠퍼스에 진학해 농구선수로 활약했다. 경영학과 연극을 전공하면서 농구선수로 기량을 닦던 그가 패션모델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한 기회 때문이었다.

    “모델 지망생인 친구를 오디션에 데려다주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에이전트가 다가오더니 ‘돈 벌고 싶지 않냐?’며 모델을 한번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거죠.”

    그때가 2001년. 그후 대니얼은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고, 미국뿐 아니라 대만·홍콩 등지에서 모델로 활약했다. 2003년부터는 파리와 밀라노 컬렉션 무대에도 섰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그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양인’이란 찬사를 보냈다.

    -농구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매일 밤 기도했어요. 아마도 여섯 살 때부터일 거예요. 잠자리에 누워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하며 시작하는 기도 끝에는 늘 ‘제발 NBA에 진출해서 마이클 조던처럼 최다 득점을 하는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어요. 하지만 NBA로 진출하기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농구선수로 성공하는 걸 포기한 뒤에 다른 길을 찾다가 모델이 된 건가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먼저 찾아왔죠. 농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돈을 벌고 싶었는데, 때마침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모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어려서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자 좋아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워주셨어요. 저는 부모님과 매우 친밀해요. 제가 처음 홍콩에 가서 3개월 만에 전화했을 때 엄마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패션모델은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고, 6개월 때론 9개월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서 일하게 됐을 때의 기분이 남달랐을 듯한데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언젠가는 한국에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거든요.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가본 곳이 홍콩이었는데, 그때와 달리 한국에 왔을 때는 왠지 모르게 나와 잘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도 제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감격스러워하시고, 매일 전화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하셨죠.”

    사랑과 관계는 어려운 일

    대니얼은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 무대에 서고, CF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뉴욕의 디나극단에서 연기 수업을 받았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여러 차례 공연도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캐스팅된 건 전지현과 함께 출연한 올림푸스 카메라 CF 촬영장에 들렀던 김선아의 매니저가 드라마 제작진에 다리를 놓은 덕분이다.

    -인기를 실감하나요.

    “며칠 전에 엄마와 쇼핑하러 백화점에 갔다가 전 층에 있는 사람이 다 온 것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부산에 갔을 때는 식당에 들어갔다 그냥 나온 적도 있어요. 사람들이 ‘아이 러브 유’를 외치며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들어서 식당이 금세 아수라장이 됐거든요. 더 있다가는 영업에 지장을 줄 것 같아 얼른 나와버렸어요.”

    -어머니와 함께 인사동에 갔을 때도 대니얼은 차 안에 있고, 어머니 혼자 구경을 다니셨다죠. 인기가 대니얼을 불편하게 만드는군요.

    “요즘은 찾는 분이 많아 하루도 쉴 날이 없어요. 쉬고 싶지만 절 좋아하고, 제가 한 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저를 찾는 거니까 지금으로선 저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는 자체가 좀 이기적인 것 같아요. 지금의 인기와 사랑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맡았던 의사 헨리 킴의 캐릭터가 참 멋져요. 실제로 연애할 때, 대니얼은 어떤 연인인가요.

    “누구나 경험하겠지만 사랑과 관계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사랑을 쏟아부었지만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사람도 있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는데 떠나가버린 사람도 있어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헨리 킴’ 역할이 낯설지 않았어요. 연기를 할 때면 이 배역이 나의 어떤 점과 닮았나 따져보는데 헨리 킴은 닮은 점이 많았고, 그래서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대니얼은 7월2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펄벅재단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혼혈아동 희망 나누기! 펄벅 여름캠프’에 참석해 혼혈아동 및 가족 100여 명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릴 적 혼혈아로 겪은 아픔을 털어놓으며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11세 때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쉬크라는 학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동양인이란 이유로 저를 몹시 미워했기 때문이에요. 그 친구가 학교 담장 뒤에서 눈싸움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따라갔는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제 뒤통수를 때리고 발로 차는 거예요. 너무 심하게 맞아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죠. 깨어보니 왼손 손가락이 모두 부러져 있었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간신히 일어났는데 친구들이 ‘다시 붙을래?’ 하고 묻더군요. ‘너희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며 걸어 나왔어요.

    지금은 (혼혈 아동들이) 이해 못할지 모르지만 혼혈이기 때문에 남들이 못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울 점이 반드시 있답니다. 저도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 이룰 수 있어요.”

    눈으로 말하는 그 대니얼 헤니

    대니얼 헤니와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 요즘도 떨어져 있을 때면 매일 전화를 주고받는 다정한 모자다.

    백인만 사는 동네이다 보니 대니얼은 동네 아이들에게 자주 시달렸다. 동양인이란 이유로 어릴 적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는 대니얼마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학교로 찾아가 대니얼을 괴롭히는 아이를 타이르고, 교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얼굴색은 다르지만 다 같은 사람이지 않냐”는 헤니씨의 말을 교장도 십분 이해했고, 교사들에게 주의를 줬다. 덕분에 대니얼이 학교에서 노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어졌다.

    “8학년, 9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 뒤로는 농구를 열심히 하고, 또 잘하게 되면서 좋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전교에서 남녀 한 명씩 뽑는 ‘킹카’가 되고,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물론 그때도 혼혈아라고 놀리거나, 차별하는 건 계속 됐어요. 방식이 좀 다르죠.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 집에 모여서 놀 때 친구들이 부엌으로 몰려가 냉장고 문을 열거든요. 그러고 나서 ‘야, 니네 집에는 쌀이랑 라면이 왜 이렇게 많냐? 대니얼은 만날 밥만 먹는대요’ 하며 장난을 치곤 했죠.”

    엄마는 강한 한국인

    어머니 크리스틴 헤니씨는 “대니얼을 키울 때 독립적이고, 열린 사고방식을 갖도록 한 덕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그러면서도 남들과 잘 어울리니까 누구나 대니얼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니얼은 자신이 아이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된 건 강한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

    “저희 엄마 얼굴을 좀 보세요. 무척 밝고 선하잖아요. 그런데 부당한 일이 생기면 무서운 사람으로 변해요. 전 엄마가 학교에 왔을 때의 일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요. 엄마가 다가섰을 때 그 아이는 완전히 겁에 질렸어요. ‘아니야, 잘못한 일이야, 그러면 안 돼’ 하시는데 정말 무서웠죠. 그뒤로는 아이들이 저를 괴롭힐 수가 없었죠. 엄마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확실히 알게 됐어요.”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엄마는 오래 전부터 다른 엄마들과 좀 달랐어요. 언제부턴가 엄마가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엄마는 외가와 친가, 양쪽 가족들을 정성스럽게 챙겨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 혼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죠. 정말 그래요. 다른 식구 누구도 그러지 않는데 엄마만 그래요. 엄마는 늘 부엌에 있고,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도 엄마가 식구들을 불러모아 대접해요.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가정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을 때 우리 엄마가 한국적인 엄마라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한국에 와서 제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했고요.”

    -어머니와 성격이 닮았나요?

    “엄마랑 닮은 점은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것, 물론 제가 엄마처럼 뱀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도는 아니지만, 뭐든 새로운 일을 해보길 좋아한다는 거예요.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 운동 좋아하는 것도 닮았고요. 30년 동안 병원에서 환자 돌보는 일을 해온 엄마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닮고 싶은 점이고요.”

    -어머니가 미국에서는 대니얼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브라운관에 비친 아들을 본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외모보다 마음이 더 예뻐요”

    “광고 몇 개를 봤는데 아주 잘생겼던 걸요(웃음). 여자 모델과 대니얼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어요. 아주 잘 만들었더라고요.”

    옆에서 매니저가 거들었다. 크리스틴 헤니씨는 길을 걷다가도 아들이 나온 광고를 보면 반드시 카메라에 담는다고 한다. 버스 차체에 붙은 음료 광고 사진을 찍기 위해 혼자서 버스 정류장에 한참 동안 서 있었던 적도 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의 여성들이 대니얼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셨을 텐데, 어머니가 보시기에도 대니얼에게 그만한 매력이 있나요.

    “그렇고 말고요(Definitely). 여러분이 보신 대니얼의 매력을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알아챘죠(웃음). 여러분은 대니얼의 외모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대니얼은 마음이 훨씬 예쁘답니다.”

    눈으로 말하는 그 대니얼 헤니
    -며느리감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은?

    “며느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대니얼이 좋아하는 여자라면 저도 좋아요. 대니얼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하니까요.”

    -한국 여자는 어떠세요?

    “훌륭하죠(Nice). 저도 한국 여자잖아요(I’m Korean girl).”

    옆에서 대니얼이 “그럼요(Sure)” 하며 응수했다.

    -아들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제가 도전적이고 뭐든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입양이 아니었더라면 없어질 수도 있었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가 입양된 걸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생을 남과 다르게 보게 됐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래서 삶 자체가 매우 가치 있고, 뭐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죠.

    대니얼이 유명인이 됐으니, 그 인기를 이용해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입양이 아주 좋은 일이라는 걸 알게 하는 거죠. 그래서 버려진 아이가 새로운 부모를 만나고, 그렇게 해서 고아원에 남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게 됐으면 좋겠어요. 입양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 되어서 아이들이 18∼19세까지 고아원에서 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의 문 열기

    -대니얼이 어머니와 함께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엄마가 입양기관이나 어린이 보호시설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어떤 단체를 어떤 방법으로 도우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경제적 후원도 중요하지만 봉투에 돈을 담아 턱하니 내놓는 것은 좀 그렇고, 엄마와 제가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뭔가 좀 다른 방법으로 돕고 싶거든요.

    또 외국인인 제가 순전히 영어를 쓰면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한 건 한국으로서도 굉장한 도전이었다는 걸 알아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선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죠. 제가 입양기관이나 어린이 보호시설을 위해 기여하고 싶은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제가 혼혈인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고정관념, 어떤 한계 같은 걸 조금은 무너뜨린 셈이 됐으니 그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한국뿐 아니라 홍콩·대만 그리고 미국 등 전세계인의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요. 어디에든 인종차별은 존재하니까요. 그들이 입양과 혼혈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같은 이웃으로, 동료로 봐줄 수 있게끔 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대니얼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내 이름은 김삼순’이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괜찮다는 확신이 드는 작품을 고를 생각이에요.”

    대니얼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많은 연예 관계자들이 ‘내 이름은 김삼순’이 끝나기 전부터 그에게 수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드라마는 물론 영화까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넓다. 그러나 대니얼은 조급하게 굴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이제 순수한 이방인이 아니고, 한국에서 한두 달 머물고 말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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