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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새벽별 이고 쇠죽 끓이던 어머니가 ‘밤샘 연구’의 교본

  • 김승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shkim@donga.com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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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부여에서 ‘어린이 황우석’을 만나 보니 내 아이도 세계적인 학자로 길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린 학비가 없어 중학교 진학을 고민하거나, 세 평짜리 방에서 가족 여덟 명이 뒤척이며 지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이 좋다고 해서 모두 그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의 어린 시절’을 통해 적어도 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어린 황우석이 지닌 뚝심의 원천을 찾아본 현장 르포.
황우석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
부여(扶餘). 찬란한 백제 왕조의 낙일(落日)이 아로새겨진 고도(古都). 부여 하면 최인호의 소설 ‘잃어버린 왕국’이 떠오른다. 그는 부여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을 단서로 백제의 역사를 복원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역사의 복원과 재구성은 하나의 실마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실증한 것이다.

국보급 과학자로서 전세계에 ‘바이오 코리아’의 이름을 드날리는 황우석(黃禹錫·53) 서울대 수의과대학 석좌교수. 그를 이해하는 코드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휴머니즘, 조국애, 리더십, 근면, ‘찍소’ 정신(우직한 소처럼 일관되게 일을 추진한다는 뜻)….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황우석의 어린 시절’을 관통하지 않고는 맥을 추스르기 어렵다. 나무의 성(盛)한 외관을 받쳐주는 게 튼튼한 뿌리이듯, 개인의 위대함도 근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작가 최인호가 무령왕릉을 단서로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되살려냈듯, 부여에서 만난 어린 시절의 황우석을 실마리로 오늘의 황우석을 생생하게 양각해보자.

三代가 모여 산 초가삼간

충남 부여군 은산면 홍산2리 계룡당(鷄龍堂) 마을. 인접 군(郡)인 청양군에서 발원한 칠갑산 자락에 61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계룡당’이라는 별칭은 마을 지세(地勢)가 닭 벼슬과 용 꼬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뒤로는 녹음이 드리운 산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냇물이 흘러간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 정감이 넘친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이름도 정겹다. 우렁창세기, 승적골, 말두덤골, 산재당골, 파래골…. 어디서 연유한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예부터 마을 사람들이 불러온 이름이다.

황 교수가 살던 집은 마을 초입에서도 한참 더 들어간 곳에 있다. 꼬불꼬불 길을 돌고 돌아 들어가면 가장 위쪽에 두 채의 집이 있다. 위쪽에 있는 집은 이미 허물어져 옛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옛날 그 집에는 황 교수의 절친한 고향 형이자 친구인 이광희 이장이 살았다). 아래쪽에 그나마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 황 교수의 생가다. 담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위태위태하다. 녹이 슨 대문은 긴 세월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건듯 부는 바람에 삐걱삐걱 불협화음을 자아낸다.

초가삼간. 부엌 한 칸에 방 두 칸짜리 전형적인 옛 집이다. 이 작은 집에 삼대가 모여 살았다. 황 교수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섯 형제와 지내던 방은 각각 2~3평 남짓. 좁다. 누우면 몸을 뒤척이기에도 비좁을듯하다.

“우석이와는 놀지 말아라!”

황 교수의 선조인 창원(昌原) 황씨 문중 사람들이 계룡당 마을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 광해군 때라고 한다. 다른 황씨 문중과 달리 황 교수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했다. 할아버지도 독자였고, 아버지는 3대 독자였다. 다행히 황 교수 아버지 대에 와서 많은 자녀를 뒀다. 3남 3녀, 여섯 명이나 낳았다.

고향 형이자 친구인 이광희 계룡당 마을 이장 덕분에 부여에 살던 어린 황우석을 그려낼 수 있었다. 면사무소 직원이나 인근 동리 사람들은 이광희 이장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황우석의 어린 시절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했다.

이광희 이장은 황 교수보다 두 살 위다. 당시 시골에서 한두 살 차이는 친구로 통했다고 한다. 이 이장도 황 교수를 동생이라기보다는 친구로 대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이 이장을 꼬박꼬박 형이라 부르며 형으로서 존경했다. 호칭이야 어찌됐든 두 사람은 지금까지 가장 친한 친구로 우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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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동아사이언스 기자 s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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