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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정원식

고담준론에 빠져 이어진 38년 인연의 끈 이력, 화법, 제스처까지 닮아버린 師弟

  •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moon@plaza.snu.ac.kr

정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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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식 선생님과 스타일이 똑같다”는 말은 내게 최고의 찬사다. 아무리 복잡한 토론이 벌어져도 간단하게 흐름을 정리하는 논리력,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품위 있는 말투…. 선생님의 모든 것을 흠모한 나는 그분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정원식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주최 출판기념회에 참가한 정원식(왼쪽) 선생님과 나(오른쪽). 가운데는 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소장.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교수였고, 학장이었으며, 문교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셨고, 현재는 특수교육에 전념하는 복지재단의 이사장이시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38년에 이르는 긴 만남 내내 그분은 나의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말 외엔 어떤 호칭도 내겐 실감나지 않는다.

정원식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에 입학하던 해인 1967년 봄이다. 이후 지금까지 선생님 곁에서 맴돌며 지내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제자다. 무수한 제자가 선생님을 존경하며 따르고 있으나, 나처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선생님과 계속 인연을 맺으며 살고 있는 이도 그리 흔하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선생님에 관한 글을 개인적 경험과 결부시켜 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더욱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선생님을 독점하는 듯하여 다른 제자 분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학 3학년이던 1969년 5월쯤으로 기억한다. 봄 축제가 막 시작되던 무렵 동대문구 용두동의 사범대 캠퍼스엔 화사한 봄기운이 한창 피어올랐다. 학과 선배들로부터 전갈이 왔다. 소강당에서 외국 학자 초청 강연이 있으니 모두 참석하라는 지시였다. 그때만 해도 외국 학자가 내한하는 일이 드물었고, 또 우리 학과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 동기생 모두 호기심을 가득 품고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당한 풍채, 유창한 영어

연사는 풍채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백인 교수였다. 통역을 맡은 정원식 선생님이 그 옆에 서 계셨는데, 선생님의 키는 그 백인을 압도했고 풍채도 훨씬 좋았다. ‘한국 사람이 더 크네…’ 하는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정 선생님이 당시로는 드물게 큰 키(180cm)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 선생님은 검정색 양복을 잘 갖춰 입으시고, 조끼엔 회중시계의 금속 줄까지 달고 계셨다.

학생들의 시선은 연사보다는 오히려 정 선생님에게로 쏠렸다. 유창한 영어와 간결하고 재치 있는 통역, 후리후리한 키와 큰 몸집에 어울리는 멋진 제스처와 당당함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대학생이 외국 유학을 선망했다. 그래서 외국어, 특히 영어에 매달려 사는 학생이 많았다. ‘타임’지나 ‘뉴스위크’지를 가방이나 옷 어딘가에 꽂고 다니는 것이 멋이던 시절이었다. 정 선생님은 바로 그런 꿈을 현실로 만든 본보기였던 것이다.

나 또한 그때 선생님께 반한 학생 중 하나였다. 시골 촌뜨기에 불과한 내게 선생님은 놀라운 현실을 보여주셨다. 한국 사람도 저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고, 저렇게 멋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저분이 우리 학과의 교수님이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웠고, 나를 흥분시켰다. 아마도 이때의 흥분과 감격이 내가 공부를 지속하고, 외국유학을 선택하며, 교수생활을 꿈꾸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외국인 초청연사는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심리학회(APA) 회장을 지낸 리 크론바흐 스탠퍼드대 교육심리학과 교수였다. 그는 아세아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열린 공개강연을 우리가 들은 것이다. 크론바흐 교수가 창안한 ‘크론바흐 알파(Cronbach Alpha)’라는 신뢰도 계수를 모르면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유명한 학자인지 알 수 있다.

정원식 선생님이 무진(戊辰·1928년) 생이시고 내가 정해(丁亥·1947년)생이니, 선생님을 처음 뵌 1967년에 나는 만 20세가 안 된 청년이었고, 선생님은 39세의 장년이셨다.

학부 시절엔 교육심리학과의 ‘생활지도’라는 과목을 수강한 기억이 난다.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인 용두동 캠퍼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서울대 전체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던 어수선한 시절에 대학원을 다녔는데, 선생님의 ‘성격이론’ 과목을 수강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상당히 두꺼운 린제이의 ‘Theories of Personality(성격이론)’가 주교재였는데, 선생님은 그 책의 모든 내용을 수십장의 독서카드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정리해 갖고 계셨다. 그 독서카드를 보면서 강의를 진행하셨는데, 명강의 중 명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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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mo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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