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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준 벽안의 여교수 메리 K. 패터슨

“이봐, 좋아하는 일은 어렵다고 포기하는 게 아냐”

  •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문학평론가 tdlee@sogang.ac.kr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준 벽안의 여교수 메리 K.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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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한 장래 때문에 고민하던 대학시절, 선생님은 어두운 내 인생에 촛불과 같은 존재였다. 내게 숨겨진 문학적 재질을 일깨웠고, 엄두도 못 내던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제자 사랑을 실천한 선생님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살아 계신다.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준 벽안의 여교수 메리 K. 패터슨

1978년 여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 살고 계신 메리 K. 패터슨 교수님과 부군을 찾아뵈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사회의 도움 없이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주의 깊은 부모가 자식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꺾이지 않도록 올바르게 키워주는 것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절대적인 혈연관계인 만큼, 자식의 능력개발을 위해 정성을 쏟는 부모의 희생에는 이기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스승이 제자의 숨은 능력을 발굴하고 키우는 헌신적인 노력은 부모의 그것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위대하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이기적인 사랑이 없고, 오직 진실을 가르치는 교육정신과 따스한 인간애만 있기 때문이다.

내가 험난한 세상에서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일생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벽안(碧眼)의 교수 한 분과의 운명적인 만남 덕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문학서적을 탐독했지만, 영문학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집안사정이 어려워 주변에선 내가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접한 문학과 영어 공부가 흥미로웠기에 나는 운명처럼 외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러나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시절, 한국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외국문학은 내용이 너무 부실해서 나는 곧 절망하고 말았다. 더욱이 당시 내게 닥친 적빈(赤貧)과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나는 문학서적을 탐독하기보다 행정고시를 보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었다. 지금 내가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슘페터의 자본주의 붕괴론과 케인스 이론을 가끔 들먹이는 것도 그때 습득한 짧은 지식 덕이다.

“채플힐에서 영문학 공부해라”

그러나 내가 대학 3학년 때 강사로 오신 메리 K. 패터슨 교수의 영작시간은 내 진로를 바꿔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선생님의 강의는 여느 영작 수업과 패턴이 달랐다.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는 연습을 시키기보다, 어느 한 가지 특정한 주제를 놓고 영어로 자유롭게 글을 쓰도록 하셨던 것이다.

한번은 숙제를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나를 자신이 머물던 호텔로 부르셔서 부군과 함께 저녁식사 하는 자리를 마련하셨다.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날 초대하신 것이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이, 극작가 이근삼 교수의 은사로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오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힐) 토머스 M. 패터슨 교수의 부인이며,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란 걸 알게 됐다. 그날 저녁 가난하고 초라한 한국 청년에게 기울인 그들의 각별한 관심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것이 계기가 돼 나는 그분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쓴 단편소설을 교내 영자신문에 연재했고, 처음으로 고료를 받는 기쁨도 누렸다. 그러나 나는 그해 여름 군복무를 치르기 위해 학교를 떠났고, 선생님 내외분은 미국으로 돌아가셨다.

이듬해 겨울,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부관학교에서 힘겨운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뜻밖에도 선생님의 부군인 패터슨 교수님이 보낸 긴 편지가 도착했다. 너무나 반가워서 편지를 급히 뜯어봤더니 “지금쯤 학교를 졸업했을 테니 내가 있는 대학에 와서 영문학을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 좋은 분이 또 있을까” 하고 놀라워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나는 군복무를 마치면 어디서 무엇을 할까 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미국 가기가 어렵기만 했던 1964년, 더구나 가세가 기울어 극도로 빈곤한 형편에 유학을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 나를 잠시 동안 가르친 미국 땅의 교수님이 보내신 편지 한 장은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춰주는 촛불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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