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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 고려대 교수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얻으려 않고 내주며 이어온 30년 사제(師弟)의 정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최상용 고려대 교수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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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입사시험을 본 것은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함인데, 인생의 선배가 묻는 질문에 그렇게 답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

“선생님 같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라면 ‘유신은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하고 답하겠네. 문화방송 조용중 전무에게 편지를 써줄 테니 전하게.”

대학생 정동영을 놀라게 한 이 젊은 강사가 바로 최상용 교수였다. 최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조용중 전무하고 몇 번 인사는 나눴으나 사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조 전무가 언론계에서 양식 있고 신망이 두텁다는 평판이 나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써주면 정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본업은 가내수공업, 학생은 부업

최 교수가 정동영 학생을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국의 정치문화’를 주제로 리포트 과제를 내줬는데, 4·19혁명을 영국의 명예혁명에 비유한 그의 글이 매우 뛰어나 학자로 클 재목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 최 교수는 최근 그 묵은 리포트를 찾아내 정 전 장관에게 복사해주며 읽어보라고 했다. “한번 쓴 글은 영원히 남고 좋은 글은 언제 읽어도 좋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문화방송 최종 합격자 10명 가운데 ‘정동영’도 끼어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합격 소식을 전한 사람은 최 교수가 아니라 훗날 부인이 된 민혜경씨다. 사실 그가 취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민씨에게 당당히 청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학하기 전까지 제대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복학한 뒤에 고향 친구로부터 숙대 3학년이던 아내를 소개받아 그만 푹 빠져버렸어요. 전주의 완고한 교육자 집안 외동딸에게 청혼하기 위해서 급하게 입사시험을 쳤지요.”

그 시절, 그는 가난했다. 1974년, 전북 순창에서 어머니가 동생 3명을 데리고 상경해 한양대 뒤편 성동구 사근동, 옛 77번 버스 종점이 있던 언덕배기 판자촌에서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 그도 군 복무를 마친 뒤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가 만든 옷들을 용달차에 싣고 평화시장에 납품했다. 저녁이면 수금하고, 그 돈으로 다시 원단이며 실, 단추, 액세서리를 사서 사근동 산비탈을 올랐다. 직접 봉제 작업도 했다. 그가 초크로 원단에 본을 그리고 재단을 하면 어머니와 고향에서 함께 올라온 아가씨들이 재봉을 했다. 그러면 다시 그가 오버로크를 치고 실밥을 뜯었다. “학교는 그야말로 부업으로 다녔다”고 할 정도다. 그와 대학 동기인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당시 그의 집안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권만학(경희대 교수), 한범덕(전 충북 정무부지사)과 함께 동영이네 판잣집에 자주 놀러 갔어요. 추운 겨울 냉골에서 까까머리 동생들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고, 그 한쪽에서 우리는 커다란 양푼을 놓고 김치국물에 찬밥 버무린 것을 안주 삼아 술 마시며 심각하게 토론했어요.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죠. 술 마시다 변소엘 가면 똥 무더기가 삼각형으로 높이 쌓여 있었어요. 그런 집안 사정 때문에 정 전 장관을 잡으러 온 중앙정보부 직원이 ‘너는 데모하지 말고, 빨리 취직이나 해라’며 딱해하기도 했지요.”

“일을 저질러버려”

정 전 장관도 아픈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하루는 새벽에 보따리를 이고 나가신 어머니가 힘없이 돌아오셨어요. 어머니는 전날 밤새도록 만든 바지를 한아름 싸서 머리에 이고 평화시장에 납품하곤 하셨거든요. 어머니의 흐트러진 옷매무새에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어요. 버스 차장이 보따리가 너무 크다면서 어머니를 밀쳐버리는 바람에 버스에서 굴러떨어지셨던 거예요. 그 다음날부터는 제가 어머니 대신 보따리를 메고 새벽 납품까지 했어요. 그런 다음에 학교에 가고, 저녁이면 수금하러 다시 평화시장에 들르고…. 고된 날의 연속이었죠.”

이런 형편에 연애며 결혼은 사치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민씨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고, 그는 결국 최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음은 최 교수의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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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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