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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규 경남대 총장 & 권홍사 대한건설협회장

“밀어주고 당겨주는, 우리는 동갑내기 스포츠 광”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박재규 경남대 총장 & 권홍사 대한건설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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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사업가와 학자로 처음 만난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과 박재규 경남대 총장. 성장 과정이며 성격이 판이한 두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는 공통된 취향으로 금세 가까워졌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건설업자로 자수성가한 권 회장이 대한건설협회장을 맡아 국내 건설산업을 이끌고 최근 두바이로 진출하기까지 최종 결정의 순간엔 늘 박 총장이 함께했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 & 권홍사 대한건설협회장

30년 지기인 권홍사 회장(왼쪽)과 박재규 총장.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욱 필요한 것임을



-이정하, 기대어 울수 있는 한 가슴 중-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세계 최대 쇼핑몰 두바이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두바이 비즈니스 베이의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수놓을 반도건설의 유보라 타워. 그간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주로 수주공사에 치중한 것과 달리 유보라 타워는 반도건설이 현지 토지를 직접 매입해 건설, 분양까지 도맡는다. 연면적 6만8246평, 57층 규모의 최첨단 유비쿼터스 빌딩으로 지어질 유보라 타워는 올해 본 공사를 시작해 2009년 9월 준공될 예정이다.

지난해 4월10일, 두바이 프로퍼티스(Dubai Properties)사와 3억5000만달러 규모의 부지 매수 및 개발사업 계약을 체결하던 날, 반도건설 권홍사(權弘司·63) 회장은 부모님의 얼굴과 함께 박재규(朴在圭·63) 경남대 총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시인의 말처럼 ‘함께 비 맞으며 걸어줄 사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대한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는 권 회장은 1980년, 김상훈 전 부산일보 사장의 소개로 박재규 총장을 처음 만난 뒤로 인생의 고비 때마다 박 총장으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권 회장이 부산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처음 본 박 총장은 깡마른 체구의 전형적인 선비 타입이었다.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자신과는 어느 한 곳 맞는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경남대 대학원장이며 극동문제연구소장이던 박 총장에게서 은은하게 퍼지는 학문의 향기가 권 회장의 가슴 깊은 곳에 있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슬며시 건드렸다.

권 회장은 보통 사람이라면 주저앉아 버렸을 질경이 같은 삶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광복과 함께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인 그의 부모가 짐 보따리를 푼 곳은 경북 의성. 가난한 부모와 8남매는 헐벗은 산과 척박한 황토뿐인 그곳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풀을 뜯어 죽을 쑤어 먹는 생활로 연명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돈을 벌러 일본으로 떠났다. 남의 집 일을 하는 것조차 흔치 않던,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고향에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열셋의 어린 나이에 홀로 외삼촌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 있으면 행여 어머니가 계신 일본으로 가는 고깃배를 얻어 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슴 한 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1957년의 부산은 번잡했다. 전쟁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 있지만, 그의 고향에 비하면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국제시장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나고 맛있는 음식과 자동차, 미군과 아가씨도 있었다. 그는 외삼촌 가게 일을 봐주며 부산에서 몇 년을 보낸 뒤에야 북부산중학교 야간을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는데, 동급생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덩치 큰 학생이었어요. 공짜로 먹고 자는 것도 미안한데, 외삼촌에게 학비까지 대달라고 할 염치가 없어 도너츠 장사를 시작했어요. 국민학교 3학년까지 다녔으니 한글은 깨쳤고 장사판에 뛰어다니느라 셈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는데, 영어가 안 되는 거예요. 요즘 젊은이들이 목에 휴대전화를 걸고 다니는 것처럼 영어책을 목에 걸고 도너츠를 팔러 다니다 틈틈이 들여다보곤 했어요. 비가 오거나 장사가 잘 안 되는 날은 부서진 미군 트럭 고철을 주워다 팔기도 하고요.”

동성고등학교 야간에 입학한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체격이 좋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도 하고 새벽에는 신문배달도 했다. 힘든 나날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훗날 어머니를 만날 때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 있겠다는 각오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가 단절된 때라 어머니와 1년에 한 통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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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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