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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30년 봉사의 씨 뿌린 ‘환상의 찰떡 궁합’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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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밝은 빛을 간절히 소망했듯이, 밝은 빛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면 살아가기가 한결 쉬워진다. 밝은 빛이 이끄는 대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적어도 보통 이상은 되기 때문이다.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은 젊은 패기로 발을 들여놓게 된 한국라이온스협회에서 그 빛을 찾았다. 바로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이다.
이태섭 전 과기처 장관 &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이태섭 전 장관(왼쪽)과 우기정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우기정(友沂楨·61)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은 3대째 골프장을 경영해오고 있다. 선친 우제봉 회장은 무역업을 하며 취미로 골프를 즐기다 친목모임 ‘신록회’ 멤버들과 1966년 뉴코리아 컨트리클럽을 열었다. 당시 이동찬 코오롱 회장, 김종률 세창물산 회장, 최주호 우성그룹 회장,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 등이 신록회 회원이었다.

뉴코리아CC의 주 고객 중 한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우제봉 회장과 자주 라운드를 즐기자 우 회장은 주위의 부러움과 함께 시샘을 샀다. 여러 군데서 갖가지 청탁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한다.

“뉴코리아CC를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낸 아버님은 1972년 고향인 대구에 대구컨트리클럽을 건설했어요. 비교적 자리를 잡은 뉴코리아CC를 정리하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던 고향에 골프장을 만든 건 큰 모험이었죠. 선친께서 이런 모험을 감행한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가 한몫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CC가 완공되자, 가장 먼저 방문해 50만원짜리 회원권을 100만원에 구입해 회원 1호가 됐죠. 김종필 전 자민련 대표도 박 대통령의 권유로 회원이 됐고요.”

아버지의 모험을 지켜보기만 하던 우기정 회장이 골프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건 스물여섯 살 때다. 대구CC가 문을 열자 자진해 출근했다. 당시만 해도 골프 대중화가 되지 않아 수도권 지역 골프장도 경영난을 겪던 시절이었으니 대구CC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우 회장은 이듬해 대구CC 전무이사로 발탁돼 본격적으로 골프장 경영에 참여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고객 관리며 운영 상황을 직접 챙긴 결과 3년 만에 골프장 경영 상태가 흑자로 돌아섰다.

경영에 매진하던 중 고객 상당수가 대구라이온스협회 회원임을 알게 돼 그도 라이온스클럽에 가입 신청을 했다. 서른도 안 된 나이 때문에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으나, 세 번째 신청했을 때 그 열의가 참작돼 마침내 회원이 됐다. 국제라이온스협회(Lions Clubs International)는 ‘WE SERVE’(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모토 아래 세계 193개국 138만여 회원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순수 민간봉사단체다. 1917년 미국인 멜빈 존스가 창설했고, 1958년 미국인 무역업자 오키프가 한국의 친지들에게 라이온스협회의 취지를 알리고 동지를 규합한 것이 한국라이온스협회의 시초다.

우기정 회장은 라이온스협회 활동을 통해 이태섭(李台燮·68) 전 과기처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어요. 경기중·고교 수석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MIT에서 2년8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라고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이 전 장관은 해맑기만 했어요. 말로만 들었을 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는데, 실제로 대해보니 참 맑고 소탈했어요.”

‘소탈한 수재’

두 사람은 1975년에 라이온스협회 회원이 됐다. 그때 이태섭 전 장관의 나이 서른여섯, 우기정 회장은 스물아홉이었다. 다음은 이 전 장관의 회고.

“저는 1975년에 서울세종라이온스클럽에 가입했는데, 부유한 집안의 잘생긴 젊은이가 떼를 써서 대구라이온스협회에 가입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우 회장의 행동거지가 올바르고 겸손해서 라이온들의 우려를 씻어내기에 충분했어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이던 두 사람의 사이가 긴밀해진 건, 우 회장이 1997~98년 대구라이온스 총재를 맡아 중앙의 라이온들과 교류가 잦아지면서부터다. 그 무렵, 이 전 장관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80차 라이온스협회 국제대회에서 지명이사가 되고, 2001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제2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전 장관은 이어 2003~2004년 국제라이온스협회 회장을 맡았다. 우기정 회장도 2004년에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를 맡아 일하며 이 전 장관에게서 세계무대에 섰을 때 필요한 예절과 국제회의 진행 능력, 국제라이온스협회 사무 등을 배웠다.

우 회장과 이 전 장관은 ‘찰떡 궁합’을 자랑한다. 눈빛만 봐도 서로 속내를 알아채는 사이라고 자부한다. 어느 한 사람이 일을 벌이면 다른 한 사람이 달려가 힘을 보탠다. 두 사람은 특히 라이온스 활동에서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다. 2004년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는 함께 수해 현장을 수차례 다녀왔다. 어린 시절에 6·25전쟁을 몸으로 겪은 두 사람은 수해 현장의 참상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돌아와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50만달러의 구호금을 조성해 스리랑카에 ‘코리아 빌리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우 회장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 근처에서 만난 가난한 태국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곳 학교를 돌아볼 때 국경수비대원이 “아이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조그만 강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는 이 전 장관과 의논해 다시 기금을 모았고 강당을 짓고도 남을 1억원을 태국 국경수비대에 전했다. 1억원으로 강당과 함께 예쁜 유치원도 지었다. 이 일은 태국 국영방송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태국 라이온스협회 회장이 몸 둘 바를 몰라 한 것은 물론이요, 강당이 완성됐을 때 태국 공주도 방문해 우 회장과 이 전 장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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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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