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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살아서 100만 달러 받는 화가 다섯은 있어야 하는데…”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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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물아홉, 작은 화랑에 발을 내디딘 뒤 불가능에만 도전했다. 한국 미술이 해외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 해외시장을 찾았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표 값을 청하는 화가에게 조건 없이 돈을 내줬다. 외환위기 때 오히려 멋들어진 화랑을 지었다. ‘미술은 사회 공헌’이라는 일념으로 달려온 미술 인생.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 1980년대 중반, 유럽을 대표하는 화랑들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한 청년을 클로즈업하는 게 나을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3층에 앉아 있는 눈빛 섬세한 회장님을 먼저 보여주는 게 나을지, 장흥아트파크 전시장에서 문신 조각을 안아 옮기느라 셔츠가 흠뻑 젖던 자발적 중노동을 우선 언급해야 할지….

이호재(李皓宰)란 이가 화랑계의 신화라는 건 진작부터 듣고 있었다. 신화란 현실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을 이룬 이에게 붙여지는 수사다. 1983년 인사동에 가나화랑을 처음 연 이래 그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가나화랑의 25년 역사는 대강 훑어보기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진다. 전시실 하나짜리 화랑도 꾸려 나가기 벅찬 한국 미술계 현실에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장흥아트파크를(서울, 뉴욕, 파리의 작가 아틀리에는 빼고라도) 거느린 가나의 약진은 실로 눈부신 감이 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화랑계에 뛰어들었다. 모험적으로 시도하는 일 투성이였으나 그가 한 국내 최초 기획은 죄다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는 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작가들 중엔 그의 광팬이 수두룩하다는 소문이었다. 신화가 탄생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신화의 속살

1983년 이후 지금까지 그는 국내외에서 400회 이상의 진지하고 참신한 기획 전시를 개최했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아트페어 피악(FIAC)에 참석한 것은 1985년이다. 88서울올림픽 이전이라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세계시장에서 판매하기란 하늘에 별 붙이기(하늘에 별을 붙이는 건, 장대를 이용할 수 있는 별따기보다 몇 배 더 어려운 일임을 아는 사람은 알리라)였다.

무엇보다 코리아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기 이전이었다. 국제 미술시장에 우리 작가의 그림을 들고 나가도 팔릴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호재 회장은 서둘렀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한국작가가 해외 미술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후 20여 년간 그는 우리 작가의 작품을 들고 대규모 국제아트 페어에 80여 차례 넘게 쫓아다녔다. 정열과 수월찮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세월을 지난 결과는? 국제 미술시장에서 한국 미술은 이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작가의 작품들은 전람회 기간 내에 동이 날 정도다.

“1996년과 1997년 바젤과 피악에서 우리 화랑 출품작들이 ‘솔드 아웃(sold out)’됐어요. 그게 아마 한국 미술 약진의 시작이었을 겁니다”라고 말할 때, 그의 얼굴엔 한 점도 팔지 못하고 철수하던 아픔까지를 품은 자랑스러움이 넘쳐 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신화를 좋아한다. 역사 너머의 신화를 사랑하는 만큼 살아 있는 신화를 동경하고 주목한다. 그렇지만 그 선망과 찬탄 뒤엔 얼마간의 질시가 따르는 것 또한 세상의 법칙이다. 악의 없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도 흔하다.

가나화랑과 이호재 회장은 외로운 선두에 섰던 까닭에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안아야 했다. 그 모든 것에 나는 관심이 있었다. 신화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코앞에 북악산을 마주한 방에서 이호재 회장과 마주앉았을 때 나로서는 당연히 질문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연 매출액 수백억을 올리는 미술품 경매회사와, 거기서 단 한 번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인 화가가 줄 서 있는 최상급 화랑과, 수십명 작가를 지원하는 아틀리에를 가진 이의 이미지가 어때야 한다는 공식 같은 건 물론 없다. 그 모습이 얼마간 노회하거나 권태롭거나 권위적이라도, 대개 우리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뭐랄까, 소년 같았다.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솔직한 눈과 맑은 호기심, 낯선 사람의 방문이 어색해 다소 허둥지둥하는 태도, 자신에게 붙여지는 거창한 단어들을 거북해 하는 담백한 몸짓이 두루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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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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