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주어진 환경’보다 중요한 건 ‘환경을 해석해내는 능력’

  •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입력2008-08-01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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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지난 4월28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때 실리콘밸리의 여제(女帝)로 불렸던 칼리 피오리나 전 휼릿패커드(HP) 최고경영자가 ‘백악관 경영’을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공화당 선거 캠프에서 경제참모 겸 후원금 모금 총책을 담당하는 피오리나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유력한 러닝메이트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피오리나의 근황을 듣지 못했다. 그녀가 2005년 2월 HP에서 갑자기 쫓겨났을 때 공식적으로는 전격 사임이었지만 실제로는 해고였다. 그것은 도전과 변화, 성취의 아이콘이었던 칼리 피오리나의 철저한 패배였다. 세상 인심이란 게 성취에는 관대하지만 실패에는 인색한 법. 그녀는 점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혔고 그녀의 소식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CEO로 재직했던 5년은 사람들 머릿속에 재앙의 기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녀는 대대적인 합병과 대량해고,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체제개편 등을 통해 HP를 지옥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그러한 조치들은 모두 허사로 끝났다. HP의 주가와 실적은 여전히 바닥을 기는 듯했다. 그러나 요즘 구조조정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며 수익이 향상되고 있어 명예회복 분위기도 일어난다고 한다.

    실패한 뒤 더 아름다워진 여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필자는 칼리 피오리나의 성공 스토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녀가 해고되고 난 후 펴낸 자서전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해냄)을 읽으면서 필자는 그녀의 성공이 아닌 실패 이야기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해고라는 치욕 이후 그녀가 자신의 비참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생각을 하고, 그것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고비와 실패는 누구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고비와 실패 앞에서 얼마나 담대해질 수 있느냐다.

    더구나 해고라는 극단적인 패배를 당할 경우, 많은 사람은 나락으로 빠지기 일쑤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내공’은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다. 칼리에게 배울 점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칼리는 삶이라는 여정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를 보여준다. 치열함과 성실함, 열정과 때로는 뻔뻔스러움까지. 그녀는 직장 생활에서 자신을 분노케 했던 수많은 남자의 실명을 자서전에 적고 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문화적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상대방한테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가능성까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놀라운 차분함과 치밀함에 냉기가 느껴질 정도다.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

    칼리의 삶은 미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 특히 비즈니스 업계에서 여성으로 성공하는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많은 대목에서 한국의 일하는 여성이 갖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칼리는 여성 이전에 미국 사회 리더가 양성되는 과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선 자원봉사다. 그녀는 고등학교 자원봉사를 통해 만난 정신지체아 소년에게서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말한다. 고교 시절 ‘케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살 정신지체아 소년을 가르쳤던 그녀는 케니스에게 ‘눈(eye)’과 ’귀(ear)’를 구분해 말하도록 가르치는 데 무려 6주가 걸렸다고 토로한다.

    마침내 케니스가 비슷하게나마 두 단어를 말하게 된 순간, 칼리는 케니스를 껴안고 승리감에 도취했다. 그 후 케니스는 칼리를 볼 때마다 운동장에서 “눈! 기!”하고 소리 치곤 했다.

    케니스와의 인연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내내 이어진다.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에 갈 때마다 칼리는 케니스를 일부러 찾아가 만났다. 케니스 역시 그녀를 잊지 않고 반가워했다. 비록 제 이름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해도 칼리를 향해 “눈! 기!”를 외쳤다고 하니 두 사람의 색다른 우정은 생각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칼리는 케니스와의 의사소통 경험을 통해 ‘타인이 못한다고 믿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서 삶의 환희와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회고한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 집단이다. 필자가 피오리나와 케니스의 만남을 특별히 여기는 것은, 좋은 부모 밑에서 명문대학에 들어가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른바 주류적 삶을 살아온 그녀가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소수자와 소통함으로써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구분을 넘어서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화합과 포용’의 덕목을 그녀는 이렇게 어릴 적 ‘특별한’ 소통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한마디로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칼리는 언뜻 보면 약점으로 작용했을 상황도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을 통해 장점으로 바꿨다.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닌 것도 나중에 리더로서 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그런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헌법학자였다. 그것도 미국 헌법이 아니라 다른 나라 헌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주 옮겨 다녀야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돌연 가나공화국 헌법을 공부해야겠다며 가족을 데리고 가나로 이사 가기도 했다. 그리고 가나 헌법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칼리를 비롯한 형제 3명은 자라는 동안 이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여행에 쫓아다니느라 무려 3개 대륙에서 5개의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칼리는 이런 혹독한(?) 떠돌이 생활을 통해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지만 어느 날 그것이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사람을 사귀어야 했던 경험은 타인의 심리를 재빨리 파악하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칼리의 무기는 ‘질문과 경청’이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 질문하는 것 자체가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 됨을 어릴 적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음으로써 연대감과 결속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의 높은 기대가 자식을 채찍질한다는 것도 피오리나의 성장과정을 통해 배울 만한 대목이다. 어릴 적 그녀에게 모범생이 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준 것은 부모님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인문학의 힘

    칼리는 기업 CEO로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이 본래 꿈은 아니었다. 나중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할 때까지 그녀는 ‘비즈니스 우먼’을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 때 학부 전공은 뜻밖에 ‘철학’이다. 언뜻 보면 그녀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목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삶에서 대학 때 심취한 철학은 여러 고비마다 큰 힘을 주었다. 그녀가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고교 시절 읽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칼리는 “선택의 힘과 중요성, 정체된 것보다는 이뤄가는 움직임, ‘자신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신에게 주는 선물이다”라는 뫼르소의 말에 밑줄을 치며 이렇게 속으로 외쳤다.

    “누구든지 자신의 처지를 선택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처지에 대한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모나 가정환경은 고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이상이 되겠다고 선택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선택을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죽어가는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다. 살아갈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해석해내는 능력’이다. 우리의 삶이란 제약과 한계 투성이다. 누구에게든 제약과 넘어야 할 장벽이 존재한다. 그 제약과 한계를 자기의 논리로 해석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인생의 묘미는 바로 그것에 있다고 본다.

    칼리는 대학 시절 철학자 중에서도 특히 헤겔에 빠졌다. 헤겔이 주창한 정반합(正反合)의 철학, 다시 말해 어느 순간 맞섰던 것처럼 보이는 생각이나 사상이 나중에 화해한다는 상상력은 탁월하면서도 현실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나중에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어떤 기준에 의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헤겔의 정반합 철학을 정신적 모델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경영서의 저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서슴지 않고 “헤겔”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칼리는 대학에서 헤겔 공부뿐 아니라 윤리학도 공부하는데 이 역시 나중에 소비자 윤리를 생각하는 각종 의사결정과 행동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또 논리학 공부 덕분에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과정을 학습하면서 “좋은 답 못지않게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운다.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2004년 10월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HP 한국개발센터 개장식. 칼리 피오리나가 새로 나온 자사 노트북을 진대제 정통부 장관에게 소개하고 있다.

    언어마술사가 되기까지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공부 방법이다. 흔히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은 훈련이 ‘요약하기’라고 한다. 칼리는 토마스 아퀴나스, 베이컨, 아벨라르 같은 중세 철학자들의 걸작을 매주 한 편씩 읽으며 내용을 축약하는 훈련을 통해 핵심을 이해하고 추려내는 비법을 배웠다고 한다. 중세사를 전공할 당시 그녀가 가장 좋아한 수업은 종교 서적을 일주일에 몇백 장씩 읽고 A4 용지 두 장으로 요약하는 것이었다. 칼리는 그것을 “생각이라는 몸에서 지방을 정제하고 의미의 본질에 도달하는 작업”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퀴나스 베이컨 아벨라르에 대한 지식은 가끔은 쓸모가 있겠지만 요약작업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피오리나가 후에 유명한 말들을 만들어내며 미국 기업의 대표적인 슬로건 주창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고 한다.

    칼리 피오리나 평전을 쓴 미국 기자 조지 앤더스는 “AT&T에서 그녀가 실제로 판매한 것은 전화교환기가 아니라 진보와 희망이었다. 그것은 말(言)의 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는 언어의 마술사와 같았다. 힘 있고 열정적이며 간단하고 쉬운 언어로 그녀는 고객이나 동료들, 상사들과 열정을 나누며 매년 자신과 그들의 삶을 향상시켰다”고 평한다.

    실제로 칼리는 사내 연설문 담당자들이 작성한 원고를 살펴보고 ‘소심함’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곧바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그녀를 키운 팔할은 ‘교육의 힘’이다. 네 살 때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해 스물두 살에 대학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녀는 온갖 종류의 지식을 접했다. 학창 시절을 회고할 때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수학과 과학에서는 분석기술을, 음악과 미술에서는 영혼의 양식을, 문학과 철학에서는 정신의 풍요를 얻었다.”

    미래는 없다, 현재가 있을 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녀 인생이 탄탄대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대학생활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1년 동안 심한 만성피로 증후군에 걸려 시달렸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목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었다. 희망하는 직업도 소방관에서부터 댄서까지 종횡무진이었다. 스탠퍼드라는 명문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 이후 별다른 목표가 없었기에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것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UCLA 법대에 진학한다.

    문제는 그녀가 애당초 법학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와 전례’ 위주의 법 공부 때문에 그녀는 매일 심한 두통과 불면에 시달렸다. 주말 내내 잠으로 시간을 때우고 일어나 일요일 아침 샤워를 하다 느꼈다는 젊은 날의 고민은 이렇다.

    ‘난 스물두 살이었고 인생의 목적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능력과 재능을 모두 발휘하려면, 나 자신을 가지고 뭔가 이루려 한다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일을 찾아내야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행복해지려거든 다른 사람들을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는 카뮈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퇴를 결심한다. 그녀는 한 학기 만에 로스쿨을 그만두고 취직을 결심한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생계가 급했다.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아무 계획도 없이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는 구인광고를 보고 첫 직장을 선택했다. 다름 아닌 부동산 중개회사였다. 야심만만한 피오리나로서는 의외의 선택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의 덕목은 이때부터 발휘된다.

    ‘내가 맡은 업무는 사무실 앞에 앉아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전화를 받아 연결해주고 문건이 넘어오면 타자를 치는 일이었다. 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업무에 능숙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찮은 업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게 고마웠고 내게는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게 흥미로웠다. (나는) 또 상사에게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면서 중개사들이 물건을 팔면서 얼마나 흥분하는지, 사람들이 사업을 키우려고 얼마나 헌신하는지 관찰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전화를 받는가 하는 간단한 일이 고객들이 우리 회사를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한계가 아닌 가능성에 집중하라”

    그녀는 이 작은 중개업소 경험을 통해 성공하는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한 밑바닥 경험을 쌓은 셈이다. 남이 하찮게 생각하는 일에서도 재미를 구하고 관찰을 하면서 교훈을 찾았던 경험이 그녀를 결국 대기업 CEO에까지 오르도록 이끈 힘이었음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이 많다.

    ‘학교공부는 혼자 하는 작업이었지만 처음으로 팀의 일원이 되어 일하는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일은 학문적이지도 않고 추상적이지도 않았다. 어떤 일을 하면 다른 일이 벌어졌다. 그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다. 공동으로 일하고 그들과 담판을 벌이는 게 좋았다. 승리하든 실패하든 함께 하는 동지애가 좋았다. 비즈니스계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은 감정과 자존심보다 사실과 숫자라는 것을 배웠다.’

    훗날 그녀는 ‘성공 비결’을 묻는 후배 여성들에게 입버릇처럼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음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씩은 배울 것이 있답니다.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세요, 일을 맡게 되면 한계가 아닌 가능성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내게 기회를 줄 사람들을 호시탐탐 찾으세요.”

    실제로 그녀는 부동산 회사에서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산 상사의 권유에 따라 MBA과정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AT&T에 입사하는 발판이 된다.

    ‘상사의 신뢰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그들이 내게서 잠재력을 보았기에 나도 내 안에서 잠재력을 찾기 시작했다.’

    AT&T 관리부에 수습사원으로 입사해 맡은 첫 업무도 원주민 부족들에게 장거리 전화 서비스 및 전화장비를 파는 일이었다. 그것은 힘들고 재미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때로는 매일 부엌식탁에서 새벽 3시까지 주간 예산표를 짜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녀는 중개업소에서 일할 때 회사를 알려면 제품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영업부가 일을 시작하기에 적합하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고 그대로 실행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품을 판매할 때는 회사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또 타인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아내를 응원하는 남편

    그녀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할 때 결혼을 했다. 남편은 장차 교수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남편이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자 부동산 회사를 퇴사하고 이탈리아 생활을 시작하면서 살림을 하고 MBA공부도 시작한다.

    그녀는 전 과목 A학점으로 졸업했고 AT&T에 입사했다. 그런데 일에서 성공할수록 결혼생활은 불행으로 치달았다. 수입이 남편보다 많아지면서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생활을 이끌어갔을 때는 아무래도 경제권이 남편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칼리가 성공해 동등한 입장이 되면서 남편이 속을 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출장을 간다며 몇 주씩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일하러 간다며 외출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결국 거짓말로 밝혀졌다. 칼리가 수입의 대부분을 남편에게 맡긴 게 화근이었다.

    남편에게 실망한 뒤 칼리가 겪는 심적 갈등은 이혼을 고민하는 보통 여자들의 그것과 똑같다.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여겼던 사람이,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들이 유능하고 성공한 여자에게 얼마나 위협을 느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해봤지만 결혼생활에서까지 현실로 드러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지금의 나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라고 믿으며 성장한 사람이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그토록 사랑한다던 사람이 내 재능에 분개할 수 있을까?”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시기 칼리는 직장 상사이자 친구인 여성들과 속 깊은 대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동료애가 흔들리는 그녀를 다잡은 것이다.

    요즘 남자들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부인을 이구동성으로 원하지만, 그런 아내를 얻으려면 먼저 자신이 그런 사람을 아내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진정 자신은 아내를 북돋울 수 있는 남자인가 하는 것이다.

    지혜롭게 사는 법

    칼리의 두 번째 남편은 회사 동료였고 능력 있는 칼리를 사로잡은 것은 유머와 따뜻한 마음, 무엇보다 여자를 북돋우는 자세였다. 여자의 능력을 위협이 아니라 짜릿한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남자만이 새로운 시대에 능력 있는 여자를 얻을 자격이 있다.

    두 번째 남편은 딸 둘을 둔 이혼남이었음에도 이런 멋진 덕목으로 칼리와 결혼했다. 칼리는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없었다” (칼리의 말). 그러나 지금의 가족으로도 완전하며 서로를 부부로 발견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일하는 여성이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성적(性的) 소수자로 겪는 비애나 애환은 그야말로 ‘글로벌’이라는 것을 칼리의 경험에서 추정할 수 있다. 칼리는 그와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를 자서전에 소개하고 있다.

    AT&T라는 새 회사에서 동분서주하며 일을 배우고 있던 칼리는 무엇보다 상사의 신뢰와 격려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 합석하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야 내가 팀의 일원이 되는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만나기로 예정된 전날 그녀는 상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는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식당으로 정하다보니 데려갈 수 없다는 것. 그 식당이란 다름 아닌 스트립 바였다. 식사 중 속이 비치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식탁으로 올라가 춤을 추는 그런 식당이었다. 그녀는 상사의 말을 듣고 너무 낙심해 여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필자도 이런 경험 많다!) 곰곰이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기회를 잃는 것이다. 상사가 안 된다고 한다 해서 그대로 따른다면 나는 그에게 가벼이 보일 수 있다.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일이든 부당한 일이든 문제를 풀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상사의 몫이 아니라 내 몫이다.’

    그녀는 퇴근 시간 무렵, 상사 책상으로 가서 이렇게 말한다.

    “불편하게 해드리고 싶진 않지만, 저도 내일 식사 자리에 가고 싶네요. 그럼 거기서 뵈어요.”

    거의 호통 치다시피 말하고 나오긴 했지만 속마음은 겁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가장 보수적(?)인 옷을 골라 입고 서류가방을 방패처럼 들고 거울 앞에 서서 ‘난 커리어 우먼이야’ ‘난 커리어 우먼이야’라고 몇 번 씩 외치며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하고 집을 나섰다. 클럽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른 이상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옷차림으로 클럽에 들어서자 모두의 눈이 칼리에게 쏠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예약석을 찾아 앉은 칼리는 오로지 클라이언트만 상대했다. 상대방 회사에 대해 제법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고 테이블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시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상사는 ‘예상대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진토닉을 들이켜면서 아가씨들을 계속 불러대며 테이블에서 춤추게 했다.

    마침내 한 아가씨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죄송해요. (칼리를 눈으로 가리키며) 이 숙녀분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는 춤을 못 추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뜨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칼리는 댄서가 사라진 뒤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객에게 AT&T 제품을 열심히 홍보한 후 상사를 남겨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2002년 당시 휼릿패커드 회장인 칼리 피오리나가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했다.

    다음날 사무실에선 칼리의 무용담이 삽시간에 퍼져 있었다. ‘칼리가 당차게 행동했다’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덕분에 상사는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칼리는 클럽에서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그녀의 지혜로운 모습이다. 장애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넘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듯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장애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지혜롭게 넘었다. 자기도 피해를 보지 않고 더구나 상대방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중요한 거래처 임원과의 만남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남자가 계속 칼리의 사생활에 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직업이 뭔지,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는지, 그 남자는 남자들에게는 전혀 묻지 않은 질문을 칼리에게 계속 해댔다.

    상대방의 편견을 깨뜨리려면

    처음에는 잘 참아내던 칼리도 결국 냉정을 잃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뒤 주차장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났다. 바로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 거래처 사람은 칼리에게 미적지근하게 사과했다.

    그날 밤 칼리는 퉁퉁 부은 눈으로 잠자리에 누워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시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남이 한 생각이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좁은 마음이나 편견을 짐으로 떠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특히 그렇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혼자 다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리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있는 옳은 일에 매진하리라. 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혹은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그녀는 일 때문에 만난 클라이언트가 비즈니스에는 관심이 없고 여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래를 포기했지만 다음날 그 클라이언트가 “칼리와 멋진 잠자리를 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질 나쁜 경험까지 있다.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녀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만이 복수”라는 생각으로 일에 몰두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경쟁력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제법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속단했다. 희롱당하고 유혹당한 적도 있다. 그들의 편견을 당사자인 내가 나서서 깨뜨리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것만이 답이다.”

    그녀는 나중에 AT&T 사장이 되어서까지 “늙은 여자들은 너무 감정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승진하기 위해 상사와 잠자리를 했다”는 마타도어까지 감수해야 했다. 남성 CEO들이 직원을 해고하면 ‘단호하다’고 칭찬받았을 일을 여성이었기 때문에 ‘보복인사’라는 딱지가 붙는 억울함도 당했다고 한다.

    칼리는 이런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름대로 일하는 여성의 전형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건대 “여성의 최대 약점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특히 여성은 상대에게 유쾌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날이 갈수록 ‘사랑받는 것보다 존중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깨닫게 된다.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칼리는 “사랑받는 것보다 존중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회사 내의 권력투쟁

    어떤 여자들은 섹시하고 연약한 여성적 매력으로 남성의 환심을 사려고도 한다. 물론 이것은 때로 약(藥)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독(毒)이다.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원칙을 지키는 여성이라면 사랑보다 존중을 받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회사의 정치는 실제 정치처럼 권력을 기반으로 한다. 누가 권력을 잃느냐, 누가 권력을 원하느냐, 누가 권력을 획득하느냐. 우리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직급과 직위가 그 사람의 인품과 비례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단코 아니다. 필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아는 철저한 에고이스트, 권력을 갖기 위해 인품이나 자존심을 내팽개칠수록 성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 더 맞다.

    “어떤 직위에 앉아 있든 사람은 사람이다. 그런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놀랐다. 상사가 언제나 가장 잘 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사실로 인해 권한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자라면서 배운 것, 즉 ‘사람의 가치는 직위나 직책이 아니라 됨됨이와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관리자들이 일 잘하는 부하보다 대하기 편한 부하들을 챙기는 데 더 열심인 것은 미국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언젠가 칼리는, 성과 면에서는 자기가 앞섰는데 인사고과에서 연줄이 뛰어난(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동료에게 밀리는 불이익을 당할 뻔한 상황에 놓인다. 상사는 칼리를 있지도 않은 일로 모함해 다른 사람을 두둔한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그녀는 성큼성큼 상사 책상으로 다가가 버티고 서서 이렇게 묻는다.

    “제가 매니저 님 밑에서 일할 때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당혹) 아니, 왜 그래?”

    “제가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챘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야.”

    “확실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진작 저한테 말해주셨어야죠.”

    “아니라고, 칼리. 정말이야. 자네는 우리 부서 최고의 고객 회계 주임이었는 걸. 자네도 잘 알 텐데.”

    “그럼 다시는 다른 말 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제 뒤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거든, 내 면전에 대고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일은 그 상사의 윗선인 관리 책임자가 칼리를 찾아와 사과하는 일로 결말이 났다.

    직장에서 칼리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란 부지기수다. 이럴 때 과연 공격적으로 투쟁할 것인지, 참을 것인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글쎄, 답은 없다. 어떤 땐 참아야 하고 어떤 땐 싸워야 한다. 다만 칼리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뒷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협박을 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으름장을 놓을 수밖에 없다면 협박이라도 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말버릇이 험한 사람은 아주 많다. 비즈니스계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잦다. 모욕적인 행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예의와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당당하게 서라.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서라”

    21세기는 누구라도 선도해나갈 수 있는 시대다. 물론 불의와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리더십은 지위나 돈,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리더십은 성별이나 피부색과 관계가 없다. 육체적인 재능이나 출신과도 관계가 없다. 적절한 지원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선도할 수 있다. 리더란 다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진 리더십을 알아보고 협동력과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그것을 엮어낼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칼리는 이렇게 말한다.

    “리더가 할 일은 부하 직원들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지, 직원들을 지배하거나 공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다. 일이 잘 돌아갈 때 직원들은 리더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접 가서 그들에게 도움 줄 부분을 찾아야 한다. 직원들은 문제의 원인을 짚어내지 못해 결국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리더의 일이란 바로 그 원인을 찾는 일이다. 의사가 증상만 진단하는 게 아니라 질병 자체를 치료하듯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성공한 ‘여성’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비즈니스계의 여성이란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비즈니스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내가 성공한 여성일 수 있었던 것은 남성들이 나를 묵살하도록 용납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필요하면 그들에게 도전했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서 나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 여성의 능력에 회의적이던 남자들이 나로 인해 그 생각을 바꾸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여성들을 격려하고 기회를 줬다. 이런 게 진정한 페미니즘의 승리 아닌가?”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편견과 장애,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전진 전진하고 있을 수많은 일하는 여성이여, 힘든 순간이라면 칼리가 힘들 때마다 외쳤다는 좌우명을 되뇌어보자.

    “당당하게 서라. 할 수 있다면 혼자 서라. 자신이 옳다면 승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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