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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안정 희구’ 월급사장 닮은꼴 …개혁은 논하지 말라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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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대 국회를 이끌 여야 수장이 새로 선출됐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공통점이 많다. 두 대표 모두에게 “자기 색깔이 없다” “장악력이 부족하다”
  • “끌려 다닐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동아일보 최남진

7월3일과 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장소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같았다. 양대 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임기 2년의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한나라당에는 박희태 대표체제, 민주당에는 정세균 대표체제가 들어섰다.

양당의 전당대회는 새 지도부 선출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년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진 ‘정치 성수기’가 일단락 지어졌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5·31 선거 후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및 대선, 올해 4·9 총선을 거치는 동안 뒤돌아볼 틈 없이 선거에 매달려왔다.

앞으로 2년간 선거 비수기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으로 쪼개져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민주당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들 만큼의 이합집산을 거쳤다. 당초 ‘대선용 정당’으로 취급받던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총선까지 치르면서 ‘야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진보 진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서는 아픔을 겪었다. 비록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격동의 세월’을 보낸 뒤 ‘정치 비수기’가 시작됐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까지 향후 2년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벌일 선거는 없다. 매년 4월과 10월 각종 재·보궐선거가 치러지지만 국지전일 뿐이다.

2010년 6월에 지방선거가 끝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선 차기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다시 열리고 2012년 4월에 19대 총선, 같은 해 12월에 18대 대선 일정이 잡혀 있다. 2년 동안의 정치 비수기에도 여야는 부딪칠 일이 많다. 당장 국회에서는 ‘쇠고기 국정조사’가 열리고 있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도 한바탕 벼랑 끝 대치가 예상된다. 또 유가 폭등에 따른 경제위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따른 남북문제, 신구 정권 사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진 대통령기록물 반출 등 정국을 냉각시킬 현안은 얼마든지 있다. 이외 또 어떤 돌발 이슈가 터질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정치의 양대 축으로 등장했다. 두 사람은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리더십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한 이미지, ‘안정 희구’ 월급사장 이미지다.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다.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캠프의 좌장으로 활동했다. 선대위 공동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중요 전략을 최종 결정하는 ‘6인회의’에도 참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6번째 금배지를 달아 국회의장을 해보려고 했던 그의 꿈은 ‘공천 탈락’이라는 결과를 접하면서 무산됐다. 그는 “내 복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짐짓 대범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언론인은 “갑자기 늙어버렸다”고 했다.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절호의 상황 변화가 생겼다. 4·9 총선에서 친이 핵심인 이재오-이방호 라인이 낙마한 데 이어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 여파로 친이 진영에 권력 공백 상태가 생긴 것이다. 정권 창출에 이어 당을 장악하려 했던 친이 진영에서는 ‘대타’를 물색하게 됐고,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면서도 ‘이명박’ 색채가 옅은 그가 다시 부름을 받게 됐다.

‘박희태 카드’는 당내에서 이렇다 할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친이 진영의 주축세력인 ‘안국포럼’ 출신들 사이에서는 ‘이재오 카드’가 용도 폐기되기 훨씬 전부터 박희태 대표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있었다. 이재오 전 의원이 당을 움켜쥐고 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차기’를 꿈꾸는 중도파 정몽준 의원에게 당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권 같은 정치적 욕심이 없는 박 대표가 비수기 2년 동안 당을 무난하게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13대 국회부터 친구처럼 지낸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지원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 대표의 ‘용도’는 7·3 전당대회 직전 기자와 만난 강재섭 전 대표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강 전 대표는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 당 대표의 리더십’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다분히 박희태 카드를 염두에 둔 듯 보였다.

“지금은 전쟁 시기가 아닙니다. 정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제는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 당을 맡아야죠. 당·정·청 사이에 소통과 조율이 잘 돼야 해요. 자기 개성을 살려서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되기 때문에 인내력이 충분한 인물이 적합한 것이죠. 내가 대표 할 때는 80은 참고 20은 성질을 냈는데, 지금 선출되는 대표는 많이 참아야 해요. 인화·단결·소통을 할 수 있는 노련한 정치력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강 전 대표가 당·정·청 소통과 조율을 강조했지만 박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당·정·청 일체’를 지론으로 갖고 있다. 그는 대표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제 여당이 됐으니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변해야 한다. (대권-당권 분리를 규정한) 지금의 당헌·당규는 야당 때, 대통령이 없었을 때 만든 것인 만큼 그런 당헌·당규를 갖고 당·청 관계를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첫 일성을 울렸다.

한나라당 당헌 제7조에 규정된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는 당·정 분리 조항은 야당 시절에 맞는 것이고 이제 집권 여당이 된 만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는 바람에 원활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라며 당·정·청 일체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강재섭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강한 반발을 샀지만, 아직도 그런 지론에 변함이 없음이 기자회견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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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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