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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민주노총 강력 비판하며 탈퇴한 前 간부 곽민형

“노동자에 무관심 친북반미에 열성… 민주노총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 이설│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민주노총 강력 비판하며 탈퇴한 前 간부 곽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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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을 경험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집보다 천막생활이 길던 시절 아내는 “억울함을 풀어보라”며 격려하다가도“세상에 고집 부려서 안 될 일도 있다”며 집으로 갈 것을 설득했다. 민주노총 산하단체 간부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내부 비판을 하며 탈퇴를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현장 의지와 상관없는 정치투쟁에만 골몰하며,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 강력 비판하며 탈퇴한 前 간부 곽민형
노동운동의 희망이라고, 노동자, 민중,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자칭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어떻습니까? 이 땅의 노동자, 서민,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많은 노동현장의 고통과 아우성,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보다 북한의 수해와 북한 민중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삼아 이를 지원하는 운동의 상층부, 현장 노동자의 투쟁에는 함께하지 않으면서 북한 노동자와의 교류와 협력, 방북 행사에는 열정적인 수많은 그들.…

현장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구조조정과 해고 없는 철밥통을 움켜쥔 민주노총 상근자와 임원을 보면서 이제 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것 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지난 10월2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 곽민형(郭珉亨·53)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는 그가 쓴 탈퇴성명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떠나며’의 일부다. 3쪽 분량의 글에는 10년간 몸담은 민주노총에 대한 애정과 질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5개월간 고민하고 2시간 만에 쓴 탈퇴 성명”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직후 곽씨는 캐나다로 갔다. 한의사로 일하는 친형이 이민 간 곳이다. 한 달간 캐나다에 머무르며 마음을 추스른 뒤 12월1일 귀국했다. 시차적응조차 되지 않은 그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만났다.

곽씨의 첫 직장은 택시회사였다. 군대 제대 직후인 1975년 일자리를 찾다가 운전직을 택했다. 운전면허증이 자격증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백화점 셔틀버스 기사를 거쳐 대성산업가스의 전신인 대성산소에서 일했다. 대성산소에서 용역기사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된 뒤부터 민주노총 중앙위원, 중앙파견 대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민주노총 활동을 이야기하던 대목에서 그는 “애정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로 일한 지 30년, 민주노총에 몸담은 지 10년. 무엇이 그로 하여금 뼈와 살을 묻었던 조직을 떠나게 했을까.

노동운동 없는 민주노총

“민주노총 내부 조직은 대부분 자주민주통일(NL) 계열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총연맹, 산업별기업연맹 모두 그렇습니다. 사무처까지 통틀어 임원을 100여 명으로 잡으면, NL이 90명, 민중민주(PD) 계열이 3,4명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운동에 주력해야 하는데 정치투쟁에만 집중합니다. 매년 6·15, 8·15 같은 행사에서 조합원들은 누구의 지시인지도 모른 채 친북, 반미, 반정부 구호를 외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에게 ‘대북사업만 하느냐’고 비난하면 화를 냅니다. 그런 현실이 못마땅했습니다. 그 속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아니고,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탈퇴 결정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몸담은 조직을 비판하는 것은 어쨌든 배신이니까요. 하지만 올해 들어 조직이 사분오열되는 걸 보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원장은 도망 다니고, 조직은 비대위로 운영되고, 말이 안 되잖아요. 임기가 끝나면 다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곽씨의 주요 관심 분야는 비정규직 문제. 그 역시 비정규직을 경험하며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다. 1994년 그는 대성산소의 고압가스차 운전직으로 들어갔다. 당시 대형차 트레일러 운전업계에서 대성산소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비정규직이라는 건 입사한 뒤에야 알았다. 작업 내용, 작업 지시 주체 모두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위장도급이었다. 하지만 업무량은 정규직보다 훨씬 많았다. 매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대전, 전주, 여천을 돌며 납품과 특수가스 채우기를 반복했다. 다시 밤새 운전해 논산으로 가서 납품을 한 뒤 서울에 도착하면 다음날 아침. 이틀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가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렇게 일하고도 하루 1, 2시간 일한 정규직 월급의 절반만 돌아왔다.

“신분 차이는 이해 합니다. 하지만 동일노동 동일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데,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개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아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회사에서 탈퇴하라 해산하라는 압박이 들어왔지만 7명이 끝까지 남았습니다. 결국 회사에서 도급회사를 폐업해 해고된 조합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승소와 항소가 지루하게 이어지다 2003년에야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해고 기간은 4년 남짓. 가장으로서 돈벌이를 못하고 투쟁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외아들이 자살하는 아픔도 겪었다.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온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뒤 곽씨는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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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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