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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본 영어교과서에 소개된 바이올린 장인(匠人) 진창현

“차별과 역경이 나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 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일본 영어교과서에 소개된 바이올린 장인(匠人) 진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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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해지기는 쉬워도 존경받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재일한국인 1세 바이올린 제작자 진창현(陳昌鉉·80)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일본에서 책과 만화, TV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일본 고교 영어교과서에 소개됐다.
일본 영어교과서에 소개된 바이올린 장인(匠人) 진창현

도쿄 센가와에 있는 공방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진창현씨

그의 바이올린은 전설적인 명기(名器)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경화와 강동석, 아이작스턴, 로스트로포비치, 헨릭 쉐링 같은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연주자들이 그의 고객들이다. 그는 세계에서 감사(監査)를 받지 않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 수 있는 5명 중 한 사람이다.

명실상부 현역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우뚝 선 진창현,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했던 일본 사회의 차별과 모진 역경”이라고 대답했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차별의 장벽을 어떻게 반전의 동력으로 삼은 것일까? 그가 스승도 없이 일류 장인의 반열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구하러 도쿄 센가와(仙川)에 있는 ‘진(陳)공방’을 찾았다.

“젊은 시절 나가노(長野) 오두막의 어두운 석유램프 불빛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깎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2008년 10월2일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던 날, 진창현은 이 말을 하면서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두 달 뒤 찾아간 그의 센가와 공방, 기자의 눈에는 지금의 공방도 컴컴한 오두막 같아 보였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부터 작업등으로 사용하는 백열등, 벽에 정연하게 붙어있는 갖가지 공구들까지 족히 수십년은 넘음직했다. 10평(33㎡)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공방이 세계적인 명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하니 ‘미스터리 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에 걸려 있는 은은한 광채를 내는 여러 대의 바이올린과 벽에 걸린 세계적인 명연주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그의 세월을 엿보게 했다.

그의 바이올린 이야기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바이올린 제작을 결심한 195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시절 저에게 가장 큰 역경을 안겨준 건 국적 차별이었습니다. 당시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바이올린을 깎게 된 동기요? 그저 먹고살려고 시작한 겁니다.”

막혀버린 영어교사의 꿈

청년 진창현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은 인생의 고비마다 걸림돌이었다. 메이지(明治)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교사가 되려 할 때,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려고 스승을 찾아다닐 때, 국적은 번번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본은 한국청년의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폐쇄 공간이었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남보다 영어실력이 뛰어난 데도 교사가 될 수 없는가? 그렇게 많은 장인 중에 나를 제자로 받아줄 이는 어찌 한 명도 없는가?”

하지만 그를 옥죄던 차별의 공간은 진창현을 강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술을 전수해줄 일본인 스승을 구하지 못해 외톨이가 되자, 그는 비로소 어떤 구애도 없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무한히 펼칠 수 있게 됐다. 어떤 이가 건설현장에 내버려진 폐자재들을 바이올린 재료로 쓰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진창현은 그렇게 무모하게 바이올린 제작인생을 시작했다.

“그때는 하루에 3시간밖에 안 잤어요. 만드는 족족 오두막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올렸죠. 160대쯤 되니 앉을 자리조차 없는 겁니다. 먹을거리도 다 떨어지고 해서 바이올린을 팔기로 했어요.”

진창현은 그중에서 고르고 또 골랐다. 나가노의 산골 오두막에서 하산할 때만 해도 마음이 설레었다.‘내 바이올린의 첫 주인은 누가 될까?’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온종일 거리를 누비고 다녔지만 그의 바이올린을 사겠다는 악기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맡기고 갈 테니 팔리면 값을 치르라 애원해도 마찬가지였다.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한 악기상이 “모양이 이상해도 소리만 좋으면 사는 괴짜 고객이 있다”며 주소를 건네주었다.

그 길로 물어물어 찾아가 만난 괴짜는 중년의 일본인 신사였다. 그는 바이올린을 살펴보더니 ‘허허’웃으면서 대당 3000엔씩에 9대를 모두 사는 것이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진창현 바이올린을 사준 일본인 신사는 당시 일본에서 3대 바이올린 연주거장으로 불리던 시노자키(篠崎弘嗣)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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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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