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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⑨

이스라엘 전 총리 골다 메이어

개인史가 곧 건국史가 된 여자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이스라엘 전 총리 골다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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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철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궂은일이 밀려오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하며 발을 뺀다. 이스라엘 건국의 일등공신 골다 메이어는, 아내이자 어머니였기에 더욱 절실하게 건국을 염원했다.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생활은 그녀에게 ‘안 해도 그만’이거나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전 총리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 골다 메이어.

연이은 테러와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이스라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가자사태와 관련해 반전(反戰)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태는 ‘반전’이라는 잣대로만 보기에는 다소 복잡한 국제정세가 깔려 있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오랜 영토분쟁과 종교분쟁의 결과이며 이스라엘의 건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체성의 문제까지 얽혀 있다.

패망과 방랑, 학살 등 오랜 세월에 걸친 비극을 겪으면서 이스라엘인이 깨달은 진리는 하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스라엘을 경멸하거나 우습게 보는 이는 없다. 그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국민과 국가가 우습게 보이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절감했으며, 그런 생각을 생활화, 습관화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 골다 메이어의 삶이 놓여 있다.

골다 메이어는 1898년 5월3일 러시아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전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에게 어느 나라라고 힘들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녀가 살았던 당시 러시아는 너무 비참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러시아 농민 폭도가 유대인들에게 분노를 폭발하면서 조직적으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았다. 키예프는 러시아 내에서도 반유대주의 정서가 가장 팽배한 곳이었다.

골다는 네 살 때 폭도가 “유대인을 죽여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리창을 조각내고 쇠망치로 현관문을 부수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유대인을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의 살인자’라고 소리 지르고 칼과 기다란 막대기를 휘저으며 달려들던 무리였다. 다행히 가족의 목숨은 건졌지만 어린 골다는 자기가 남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효과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신념이 살과 피에 박혔다.

결국 못 견딘 아버지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갔다. 골다도 8세이던 1906년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출발한다. 골다 가족이 정착한 곳은 밀워키였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했고 어머니는 반찬가게를 운영했다. 가난하긴 했지만 생활은 자유로웠고 유대인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도 없어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 골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까지 가게를 보느라 매일 지각했지만, 골다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총명하고 성실해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졸업식장에서는 학생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

골다는 상급학교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는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학교 가지 말고 가게 일이나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언니 쉐이나가 골다보다 더 거칠게 반발했다. 일찍부터 사회의식이 깨어 있던 언니 쉐이나는 미국 생활 자체가 싫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 배우는 것도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어했다. 더구나 부모는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으니 탈출구가 없었다. 마침내 언니는 시카고에 큰 의류공장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 작은 여성의류공장에 재봉사로 취직했다. 그러다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덴버에 있는 폐결핵 환자를 위한 유대인 병원으로 떠난다.

그 사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골다는 부모님께 학비를 의존할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토요일마다 백화점에서 일하며 학비를 모았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노스 사이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온갖 일을 마다않은 고등학교 생활은 한 학기 만에 끝났다.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똑똑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남자들은 현대적인 여성을 싫어한다’는 게 이유였다. 공부하고 싶다고, 결혼하기 싫다고 울며 매달렸지만 부모는 고등학교가 학비만 비싸지 졸업 후 아무런 보장도 없으니 사치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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