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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첫 중국인 난민 우전룽

“중국 민주화는 한국 통일의 지름길”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첫 중국인 난민 우전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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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집 단무지 냄새가 나는 가리봉동, 그곳에 중국동포교회가 있다. 번듯한 간판이 있어 큰 교회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지하 작은 공간이다. 그곳에 중국민주화인사라는 사람이 앉아 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얼굴의 그이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4시간(1월29일) 동안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다음날 그만큼 묻고 또 묻는데도 그 소 같은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첫 중국인 난민 우전룽

사진 장승윤기자

언뜻 봐도 얼굴이 부어 있는 우전룽(武振榮·60)씨. 그는 한 끼만 먹는 날이 많다. 서울 가리봉동 단칸방에 동료와 같이 살며 매일같이 라면을 먹는다. 운 좋은 날엔 교회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그는 온종일 방에 앉아 인터넷을 연결하곤 자판을 두드린다. 그간 자신이 지은 책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중국 공안에게 적발될까 염려해 땅에 묻어놨기 때문인지 그가 지은 책에선 묵은 흙냄새가 난다. 일본에서 중국민주화운동하는 친구가 보내준 노트북은 더없이 요긴한 존재다. 덕분에 자다가도 문장 이 떠오르면 쉬이 적어놓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글을 쓸 때마다 그런 (중국민주화 관련) 사이트(boxun. com 등)를 차단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고맙다.

생활방편으로 건설 현장을 전전했지만 연로한 그에게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밥 먹자고 타향살이하는 게 아닌 그에게는 저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간 지은 책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이곳까지 오지 않았던가. 인터넷으로 올린 글에 대해 여기저기서 원고료라며 보내오는 돈이 많진 않지만 식량 살 만큼은 된다.

지난해 11월14일, 중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난민지위판결(대법원)을 받은 다섯 사람 중 하나인 우전룽은 들떠 있다(국내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외국인은 2100명이지만, 실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95명이고, 그중 중국인은 이들 5명뿐이다. 이들은 중국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다).

“법무부에서 파기한 걸 대법원에서 인정해줬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좋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법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약 난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서 안 받아주는데, 그럼 본국으로 송환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법무부가 발급한 여행증으로) 자유로이 외국도 갈 수 있게 됐으니, 정말이지 이제부터 민주화의 빛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동안에는 해외에서 나를 민주화인사로 초청해도 외국에 갈 수 없어 화상으로만 교류했는데 이젠 어느 곳이든 가서 중국 민주화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위협받는 난민

그가 빛을 보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2002년 11월12일 한국에 입국한 그는 4년 만에 법무부로부터 ‘난민 불허 판정’(2008년 1월)을 받았다. 출입국관리소에서 3개월마다 난민 신청을 하며 체류를 이어왔던 그는 더는 버틸 근거가 없게 됐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7일 이내 항소하지 않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말을 들어서다.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에 대한 중국의 처벌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기 때문에 겁이 났다.

실제로 이들보다 먼저 중국 공산당에 공개편지를 쓴 산시(陝西)성의 조씨는 5년형을 받아 수감돼 있고, 중국민주운동해외연석회의 회원인 양씨는 2002년 귀국해 중국동북공인운동을 이끌던 중 중국 공산당에 체포돼 역시 5년 실형을 살았다. ‘국가법을 무시하고 불법 창당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해외 적대분자와 불법자들과 연락해 공연히 당을 조직하고 계획하면서 국가정권을 전복하는 활동을 해 국가정권전복죄를 행했으므로 유기형 4년과 2년간의 정치권 박탈을 선고한다’는 판결을 받은 여씨(2001년 3월)도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조급해진 그는 난민고등판무관 한국지부로 달려가 변호사협회를 소개받고, 수소문 끝에 한국 변호사와 연결됐다. 그렇게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쳤고,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법무부 견해는 “뚜렷한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국으로 송환돼도 문제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민주운동해외연석회의가 한 달에 2만원씩 회비를 모은 것도 석연치 않다고 보았다. 간간이 만나는 법무부 직원들은 그에게“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위해서도 난민 지위를 주긴 곤란하다”며 외교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미 자살하려고 유서까지 써놓은 처지라 우전룽은 겁이 나지 않았다. 3개월마다 난민 신청을 연장하러 가는 게 도리어 귀찮아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운한 건 있었다.

법무부가 ‘28년간 쏟은 땀의 산물’인 자신의 저술활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평범했던 일상.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기자가 정리한 우전룽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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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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