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제2롯데월드 공청회 외압설 파문 이한호 전 공군총장

“충돌확률 1000조분의 1 주장은 국민 사기극, 신격호 회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야”

  • 이정훈│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03-09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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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롯데월드 공청회 외압설 파문 이한호 전 공군총장

    ‘신격호 회장은 돈을 버는 것보다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길로 가라’는 요구를 한 이한호 전공군총장.

    노병은 식당에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가장 좋은 음식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자 거의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밥맛이 없다고 했다.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했다. 이유는 제2롯데월드 때문. 그는 2월3일 제2롯데월드 문제를 놓고 열린 국회 공청회 발표자로 1차 선정됐다가 나가지 않았었다.

    노병의 이름은 이한호(李漢鎬·62). 제28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예비역 대장이다.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데도, 제2롯데월드에 대한 기자의 판단이 확고한데도, 그는 새삼 기자에게 제2롯데월드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기자의 이야기가 한 순배 돌아가자 그도 입을 열었다.

    “나는 공군에 있는 후배들과 맞서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후배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 자리(공군 참모총장)에 있었으면, 아마 나도 ‘서울공항의 동편활주로를 3도 틀면 제2롯데월드를 지을 수 있다’고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므로 국회 공청회에 나가지 않은 것입니다. 군은 상명하복(上命下服)하는 조직이기에 위에서 결정하면 각자의 생각은 접고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상부가 결정한 일인데 그것이 잘못됐다고 해서 누군가가 언론이나 국회와 시민단체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을 찾아가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초고층 빌딩을 지어야 한다’고 호소할 수 있고, 국회 국방위원들을 만나서는 ‘잠실에 50여 층의 주상복합 건물을 지으면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555m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신격호 회장을 만나고 싶다”

    기자는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작금의 제2롯데월드 사태는 인질극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공군본부의 진심은 ‘제2롯데월드는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군본부는 현 정부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동편활주로를 3도 틀면 지을 수 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역은 현 정부로부터 자유롭기에 바른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언(直言)을 쏘려고 하니, 이미 팔이 비틀린 처지의 후배들이 앞에 나서서 ‘제2롯데월드를 지어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어, 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 전 총장께서는 공군작전사령관을 지내셨지요. 작전을 하다 보면 부하들이 희생되는 사태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희생을 무릅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범인에게 잡힌 인질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에 굴복하는 것은 군인의 길이 아니지 않나요?”

    노병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신 회장은 반공주의자이고 한국과 일본에서 큰 기업을 일군 큰 인물입니다. 그런 신 회장이 대인의 풍모를 보여줄 수 없을까요. 국가 안보와 안전을 위해 반대 목소리가 높은 잠실에는 공군도 인정하는 203m까지의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제2롯데월드는 공군 작전에 지장이 없고 서울의 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낙후한 지역에 짓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까.

    이제 신 회장께서는 돈을 버는 것보다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길로 가셔야 합니다. 신 회장께서 다른 곳에 제2롯데월드를 짓겠다고 하시면 정말 많은 사람이 박수를 칠 것입니다. 그 길이 공군을 살리고, 롯데를 살리고, 대통령의 체면도 지켜주고, 대한민국도 살리는 길입니다.”

    역시 그는 ‘영원한 공군 총장’이었다. 기자는 그를 상대로 제2롯데월드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 법적인 문제부터 따져보겠습니다. 롯데는 서울 잠실에 555m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저 역시 ‘신동아’ 2008년 11월호 기사에서 같은 판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롯데가 짓겠다는 제2롯데월드는 그 법에서 규정한 비행안전구역 바로 바깥에 위치하기에, 그곳에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은 법 위반이 아닙니다.”

    제2롯데월드 공청회 외압설 파문 이한호 전 공군총장

    ‘그림 1’ 적법하다는 이유로 제2롯데월드 맞은 편에 제3롯데월드를 짓는다면 서울공항은 폐쇄해야한다.

    제3의 롯데월드 지으면 …

    ▼ 그런데도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대하는 법적 근거는 ‘지방자치법’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입니다. ‘지방자치법’을 적용해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이 기자가 지난 호 ‘신동아’에 잘 정리해놓았더군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8조, 9조, 16조, 17조, 18조, 22조, 26조 등 여러 조항에서 부처 간에 의견이 다를 때는 협의해서 조정하라고 돼 있습니다.

    법적인 문제를 거론한 김에 내 의견을 하나 더 피력하리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을 어기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롯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롯데는 ‘그림 1’에서처럼 제2롯데월드 맞은편에 제3롯데월드라는 초고층 건물을 또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공항은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를 맞는다면 폐쇄하는 것이 옳습니다. 제2, 제3의 롯데월드는 합법적으로 지어진 것인데, 결과적으로 서울공항이 폐쇄되기에,‘지방자치법’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안보와 안전에 관해서는 부처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해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 서울공항을 폐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울공항은 무슨 일을 합니까.

    “평시에는 영상정보기(금강정찰기)와 전자정보기(백두정찰기)부대, 수송기부대, 육군 특수전을 지원하는 부대, 근접항공작전 가운데 공중통제작전을 하는 부대(KA▼ 1)가 작전하고, VVIP로 표현되는 국내외 최정상이 탄 항공기가 입출국 하는 일을 합니다. 전시에는 긴급히 전투물자를 옮기는 양륙(揚陸) 공항 기능과 피격당했거나 연료가 떨어져 황급히 귀환해야 하는 공군기를 맞는 예비기지, 그리고 전황에 따라서는 전술기를 전개해 전투작전을 수행하는 기지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 미군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전시에 주한 미국인을 철수시키는 기능 같은 것 말입니다.

    “어느 나라든 사태가 긴박해지면 위험 지역에 있는 자국민을 우선으로 빼냅니다. 한반도의 위기가 심각해지면 미국은 항공기를 투입해 자국민을 철수시키는데, 서울공항은 이 일을 하는 기지로 지정돼 있습니다. 미 7공군이 있는 오산기지나 한미 양국이 새로 짓고 있는 평택기지도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서울이니, 유사시 미국인 철수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서울공항이겠지요.”

    사람은 실수하고, 기계는 고장난다

    ▼ 제2롯데월드 건설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편활주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부터 살펴보지요. 현재 상태에서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동편활주로(부활주로)에서 시계(視界)비행 이착륙이 불가능해집니다.”

    ▼ 시계(視界)비행이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VFR(Visual Flight Rules)로, 조종사가 눈으로 보고 비행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가 IFR(Instrument Flight Rules)인 계기(計器)비행입니다. 계기비행은 악(惡)기상으로 인해 지형지물이나 활주로를 볼 수 없을 때, 조종사가 항공기에 장치된 여러 계기를 보거나, 지상에 있는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이착륙 비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계비행은 날씨가 좋은 날 하는 비행 아닌가요. 그런 날은 제2롯데월드가 잘 보일 텐데 왜 시계비행으로 이착륙하지 못합니까.

    “시계비행을 할 때도 안전을 위해서 장애물과 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거리를 규정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동편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는 이 거리 안에 들어가버립니다. 그래서 쾌청한 날에도 동편활주를 이용한 시계비행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그 문제는 동편활주로를 3도 틀어주면 풀리게 되는가요.

    “시계비행을 하는 항공기가 장애물과 최소한으로 이격해야 하는 거리가 1852m인데, 3도 틀어주면 이 조건을 간신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계산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이 계산은 정해진 절차대로 동편활주로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정해진 고도에 도달해 제2롯데월드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선회 이탈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제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이 거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1월15일 뉴욕에서 이륙한 여객기는 두 개 엔진이 모두 꺼져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했습니다. 두 개 엔진이 모두 꺼지면 정해진 고도에 오를 수 없습니다. 한 개만 꺼져 버려도 힘이 약하므로 이 항공기는 한참을 더 비행해야 선회 이탈할 수 있는 고도에 도달하는데, 이는 1852m 범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차하면 제2롯데월드를 들이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3도를 틀면 정상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비정상 상황에서는 충돌 위험이 존재합니다(그림 2참조).”

    ▼ 그런데 동편활주로의 연장선은 청와대 상공에 설정한 P-73 비행금지구역에 인접해 있어 평소에는 잘 쓰지 않습니다. 서울공항에서 많이 쓰는 활주로는 서편활주로입니다.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하려면 서편활주로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제2롯데월드가 지장을 준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좀 복잡한 설명을 해야겠네요.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서편활주로도 계기비행 접근 중에서 비정밀 접근 절차에 해당하는 VOR/DME 절차와 ASR 절차를 수행하는 데 제한받게 됩니다. 이 절차를 이해하려면 정밀접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정밀접근은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장비를 이용해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2롯데월드 공청회 외압설 파문 이한호 전 공군총장

    ‘그림2’ 두개 엔진을 가진 항공기가 이륙중 한개 엔진이 꺼지면 힘이 약해 더 먼거리를 날아야 이탈할 수 있다. 이러한 항공기가 ①방향으로 간다면 장애물과의 최소 이격거리를 침범한 것이되고 ②의 길로 간다면 제2롯데월드와 충돌할 수도 있다.

    공항에는 착륙하려고 접근하는 항공기를 포착해 비행장으로 유도하는 공항감시 레이더 ASR(Airport Surveillance Radar)이 있습니다. 관제사는 공항감시레이더로 착륙하려는 항공기를 포착해 조종사에게 구두로 활주로 방향을 불러줍니다. 그리하여 이 항공기가 활주로 연장선 상에 도달하면 이후부터는 정밀접근 레이더(PAR·Precision Approach Radar)로 착륙을 유도합니다.

    정밀접근 레이더는 활주로 정 중앙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 공항감시 레이더보다 훨씬 정밀하게 탐지합니다. 정밀접근 레이더가 잡은 것을 보고 관제사는 조종사에게 방향과 고도를 불러줘 안전하게 착륙하게 합니다.

    공항 착륙방법에는 관제사가 ASR과 PAR을 이용해 유도하는 것 외에 조종사가 공항에서 쏘는 전파를 항공기에 탑재된 장비로 포착해 착륙하는 것도 있습니다. 착륙하려는 항공기에 전파를 쏴주는 장비가 VOR/DME와 ILS입니다. VOR/DME는 원거리에 있는 항공기에 전파를 쏴 비행장까지의 거리와 방위각을 알려주는 것이고, ILS(Instrument Landing System·계기착륙 시스템)는 활주로를 향해 막 내려오는 항공기를 위해 보다 정밀한 전파를 쏴주는 장비입니다. VOR/DME는 공항감시 레이더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ILS는 정밀접근 레이더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비는 고장 날 수 있습니다. PAR이나 ILS가 고장나면 ASR이나 VOR/DME만으로 항공기를 착륙시켜야 합니다. 전시가 되면 공군기지는 가장 먼저 공격을 받기에 PAR이나 ILS가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ASR과 VOR/ DME를 이용한 비정밀착륙 훈련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미 연방항공청(FAA)이 이런 착륙을 할 경우 설정해놓은 보호구역 안에 제2롯데월드가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서울공항의 서편활주로는 비상시에 대비한 ASR과 VOR/DME를 이용한 착륙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억지로 정부 요구 맞춰주는 공군

    ▼ 그런데 공군은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더라고요.

    “PAR이 고장 나거나 파괴되는 경우에 대비해 PAR을 한 대 더 설치하고, VOR/

    DME의 위치는 활주로 앞쪽으로 옮겨 보호구역의 각도를 변경함으로써 제2롯데월드가 보호구역 안에서 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서편활주로의 비정밀접근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닌가요.

    “롯데 측은 이 조치만 취하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는 미국 연방항공청의 보호구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탁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 현실성이 없습니다. 이것은 동편활주로를 3도 틀어서 계기비행을 할 수 있는 최소조건을 맞춘 것과 이치상으로는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엔진이 꺼졌다든지 피격됐다든지 하는 비상시에 이뤄지는 비행이 규정대로 된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습니까.

    롯데는 선진국 사례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을 살펴볼까요. ‘그림 3’은 우리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과 ICAO에서 규정한 비행안전구역을 비교한 것인데 ICAO의 안전구역 범위가 우리보다 훨씬 넓습니다. 이 기구 규정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비행안전 6구역에 들어갑니다.

    ‘그림 4’는 우리 법과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비행안전구역을 비교한 것입니다. FAA기준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7구역에 위치합니다. ‘그림 5’는 우리 법과 일본 항공법의 비행안전구역을 비교한 것입니다. 일본 항공법도 7구역까지 설정해놓았는데, 이 법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6구역에 들어갑니다.

    ICAO와 FAA, 일본의 항공법은 비과학적이라 이렇게 해놓았을까요. 제2롯데월드 건설에 찬성하는 세력이 과학을 거론하려면 ICAO와 FAA, 일본이 왜 비행안전구역을 우리보다 엄격히 설정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 ‘그림 4’를 보니까 미국 연방항공청의 비행안전구역은 우리와 똑같은데 우리에게 없는 7구역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네요. 한국은 미국의 규범과 규정을 그대로 모방했을 터인데, 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서는 7구역을 설정하지 않았습니까.

    “1945년 7월28일 미 공군의 B▼ 25 폭격기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79층에 충돌해 14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으니 미 공군은 7구역을 설정했겠지요. 1970년 한국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의 전신인 ‘군용항공기지법’을 만들었는데, 이때는 아무도 한국에서 초고층 건물이 지어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7구역을 설정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ICAO의 6구역과 FAA의 7구역은 꼭 설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설정을 하는 것도 좋다고 추천한 비행안전구역입니다. 롯데는 이 단서를 근거로 ICAO의 6구역과 FAA의 7구역은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하더군요. 다른 것을 계산할 때는 FAA 기준에 따라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왜 비행안전구역의 7구역은 무시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물이 없던 기지에 장애물을 만들겠다면 안전규정은 더욱 강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엔진이 꺼지거나 기계가 고장 나는 것에 의한 사고말고도 사람의 실수에 의한 사고도 일어날 수 있겠지요.

    “허드슨 강의 여객기 비상착륙은 조류가 엔진으로 말려들어와 일어났다고 합니다. 항공기는 조종사의 비행착각에 의해서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항공기는 여러 가지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서울공항은 유사시 전투기까지 전개될 수 있는 곳이라 장애물은 가급적 설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2롯데월드 공청회 외압설 파문 이한호 전 공군총장

    한국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이 규정한 비행안전 구역과 국제민간 항공기구(ICAO), 미국 연방항공청(FAA), 일본 항공법이 규정한 비행안전구역 비교. 한국의 비행안전구역이 제일 좁다.

    롯데가 무슨 책임을 지겠는가

    ▼ 롯데 관계자는 ‘월간조선’(2008년 8월호) 인터뷰에서 “제2롯데월드가 정말로 비행기와 충돌할 위험 속에 지어지는 것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은 롯데가 전적으로 지겠다”고했습니다. 롯데가 모든 책임을 진다고 했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2월3일 국회 공청회에 나온 롯데 관계자는 사고가 일어나면 원인을 파악해서 롯데가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빠져나가는 답변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항공기가 날아가서 박은 것이지 초고층 빌딩이 달려와 항공기를 박겠습니까.

    사고는 났다 하면 모두 공군 책임이 됩니다. 엔진이 꺼져 충돌하면 정비사 책임이고, 비행착각으로 사고가 나면 조종사 책임, 관제를 잘못했으면 관제사 책임이 됩니다. 돌변기상으로 사고가 난 경우라면 하느님이 책임을 져야겠군요. 어찌되었든 롯데는 사고 책임을 질 일이 없습니다. 사고 부담과 책임은 국민과 정부의 몫이 됩니다.”

    ▼ 롯데 측은 미국 연방항공청의 충돌위험모델 시뮬레이션 결과 제2롯데월드와 항공기가 충돌할 확률은 1000조분의 1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야기는 반대자들의 논리를 막는 롯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롯데는 ‘1000조분의 1이라는 확률을 왜 믿지 않느냐’며 반대자들을 비과학적이라고몰아붙였습니다. 이 주장이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1년에 전세계 공항에서 일어나는 이착륙을 1억번이라고 칩니다. 그렇다면 1000조분의 1이라는 확률은, 이러한 이착륙을 1000만년 했을 때 한 번 일어난다는 얘깁니다. 전세계 공항에서 1년 동안 일어나는 이착륙이 1억번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항공기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건물과 충돌하는 사고가 1000만년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을까요?

    롯데 측에서는 항법과 관제장비가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주장하지만 허드슨 강 여객기 불시착처럼 최근에도 우리는 숱한 항공기 사고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몰고 100km 거리를 간다면 얼마나 걸리겠는가’라는 질문에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정말 단순한 사람입니다. 운전은 도로 사정과 날씨,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큰 영향을 받습니다. 실제 운전 시간은 40분이 걸릴 수도 있고 2시간, 아니 20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1000조분의 1이라는 확률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거한 상태에서 아주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게 과학입니까? 단순한 산수입니다, 산수. 이런 산수로 현혹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짓입니다.”

    ▼ 롯데 측은 대만이 쑹산(松山)공항 옆에 101층 건물을 지은 것을 사례로 들어 제2롯데월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쑹산공항은 여객기가 얌전하게 뜨고 내리는 민간공항이고 서울공항은 위험한 전시에 공군기가 거칠게 이착륙해야 하는 공군기지입니다. 제2롯데월드는 서울공항의 이착륙 활주로 방향에 있고, 101빌딩은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활주로의 남쪽에 있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101빌딩은 쑹산공항에 이착륙하는 항공기에는 장애를 주지 않고 장주비행에 들어간 항공기에만 장애를 주는데, 이런 경우라면 선회비행 루트를 조정해 대처하는 편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착륙 비행은 활주로 정중앙을 따라 정밀비행을 하는 것이라, 비행루트를 조정할 수 없습니다.”

    민원과 전쟁 벌이는 공군

    ▼ 공청회가 있기 전 반대 측 발표자로 확정돼 있던 한 예비역 장군과도 통화했는데, 그분께서도 “좌파들에게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를 줄 수 없다”며 불안해하시다 결국 공청회에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공군기지에서 일어나는 소음피해를 보상하라고 제기한 소송이 140여 건이고, 금액은 2694억원, 소송 참여자는 무려 57만8000여 명이나 됩니다. 비행안전구역 내 고도제한을 완화해달라는 민원도 빗발치고 있습니다. 제2롯데월드 건설이 승인되면 더욱 많은 민원이 쏟아질 것입니다. 영공방위를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공군이 민원 방위에 진력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공청회에 나가 후배를 질타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북한과 좌파들만 환호할 것 아닙니까. 국론이 분열되면 경제도 잘되지 않습니다. 이제 신격호 회장께서는 대기업 총수답게 대승적인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우리 공군이 영공방위라는 고유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전 총장과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날 저녁, 잘 알고 지내던 공군 간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이 전 총장과 인터뷰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군본부의 견해를 대변해야 하는 처지인 그는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싶다. 밤잠을 자지 못 하겠다”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틀 후 미국 뉴욕에서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아무리 안전을 추구해도 사고는 일어난다 롯데가 주장하는 법적 조건 구비는 안전을 보장하려는 최소 조건이지 안전을 보장한 최대 조건이 아님을 이 사고는 보여준다. 그런데도 1000조분의 1이라는 충돌확률을 믿어야 하는가. 제2롯데월드 때문에 불면하는 공군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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