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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

역사를 만든 개개인의 삶 조명한다

  • 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사진 / 박해윤 기자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

송철원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

부친의 기록물을 보고 있는 송철원 이사장.

“돈안 되는 일에 매달리고 있으니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지요. 내 팔자라고 생각합니다. 젊어서 학생운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들어서도 나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 싶었지요.”

송철원(67) 현대사기록연구원 이사장은 지난해 9월 30일 종로구 운니동에 사단법인 현대사기록연구원을 열었다. 국내 첫 현대사 기록연구 분야 사단법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생으로 1960년 4·19혁명 이후 학생운동을 주도한 그는 역사를 만든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다. 본인 스스로 서울대 문리대 내 학원 프락치(사찰요원) 사건을 폭로한 뒤 중앙정보부로부터 보복 린치를 당해 1964년 6·3 한일회담반대운동의 기폭제가 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그래선지 역사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했던 수많은 사람이 과소평가되게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역사를 만드는 건 특별한 소수가 아닌 일반인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다원화 시대에는 이러한 기록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했다. ‘다양한 시선을 존중해야 다양한 의사가 반영되는 사회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송 이사장은 누구보다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살았다. 부친인 송상근씨는 아들이 6·3항쟁에 앞서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가한 후부터 각종 자료를 모았다고 했다. 운동권 주요 멤버들 간에 오고간 서신은 물론 재판과정 일지 등이 정리된, 높이 4m의 자료만 봐도 독재치하를 견뎌낸 개인이 온전히 느껴질 정도다.

“처음부터 구술사 방법으로 기록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친처럼 개인 기록물을 모아온 사람들이 없으니 기억에 의존한 연구를 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현대사기록연구원은 구술사 연구 방법을 택했다. ‘사건을 선정하고, 관련자 생존 여부를 조사하고, 증언 채록 대상인 인물을 선정하고, 인물의 증언을 녹화하고, 정리한 뒤 기록하는 절차’를 따랐다. 이 연구원은 개인의 어투를 살리기 위해 녹취를 그대로 풀 뿐 아니라 검수 절차는 물론 색인 작업을 철저히 해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색인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렇다.

“구술사 연구물 전산 데이터베이스화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연구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대부분 연구물은 연구가 끝나면 창고에 방치됩니다. 구술사 연구를 하는 많은 사람이 같은 주제를 중복해 연구하거나, 한 인물을 반복해 연구하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연구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색인작업을 잘해야 합니다.”(임미리 상임이사)

그동안 이 연구소는 ‘6 · 3항쟁 구술기록 수집연구’(책임연구자 김주관 인문학연구원, 국가기록원 지원) ‘1960~70년대 경제 고위관료에게 듣는 한국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책임연구자 이정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지원) ‘1970, 80년대 언론인들이 본 언론현실과 언론인들의 활동-언론자유와 언론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책임연구자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지원) 연구를 진행했다. 앞으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으로 ‘세대로 본 역동의 한국정당정치사 :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증언’(책임연구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연구할 예정이다.

신동아 2009년 5월 호

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사진 /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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