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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⑪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비범한 존재로 거듭나는 사람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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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어려움이 닥칠 때면 이렇게 자문합니다. ‘이 어려움은 내게 뭘 가르쳐주려고 내 앞에 온 걸까?’” -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3월11일 MBC ‘무릎팍 도사’ 가수 백지영 편을 보았다. 그녀는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데뷔했을 때와 얼굴이 많이 다른 이유는 성형수술 덕분”이라고 고백해 ‘솔직한 성품’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이날 인터뷰는 그야말로 ‘솔직 버전’의 백미였다.

그녀는 8년 전 비디오 사건으로 시련을 겪었던 일을 비켜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받아쳤다. 당시 일 때문에 오랫동안 ‘쇼크 상태’에 빠졌었다는 것, 모든 이의 눈을 피해 한 호텔 9층에 머물고 있을 때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기라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는 고백도 했다. 당시 힘이 되었던 남자 친구 이름까지 공개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방송 이후 게시판에는 “어려운 일을 겪고도 씩씩하고 밝은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진짜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응원 글이 이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누가 무슨 일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겪을 때 어떻게 이겨나갔는가’ 하는 ‘위기 그 후’의 이야기에 목말라하고 있다.

‘백지영 현상’을 보며 기자는 뜻밖에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렸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에서 지금은 미국인의 정신적 평안을 이끄는 ‘영적 구루(guru·스승)’로 추앙받는 오프라를 성공으로 이끈 키워드 역시 ‘고백’ 아니었는가.

그녀는 불우하게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흑인 미혼모였다. 오프라는 자신의 탄생이 “(생모와 생부가) 나무 아래에서 했던 단 한 번 실수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당시 부모는 결혼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단 한 번 실수’ 이후 고향을 떠난 생부는 나중에 출생증명서와 함께 아기 옷을 받아들고서야 자신의 딸이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였다.

‘엄마’라는 인생 대신

오프라는 외조부모, 생모와 함께 미시시피 농장에서 자랐다. 늘 배고픔에 시달렸을 정도로 가난했다. 오프라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생모는 일자리를 찾아 타향(밀워키)으로 떠나야 했다. 오프라는 외할머니를 엄마라 생각하며 자랐다. 몇 년 뒤 오프라는 생모가 살고 있는 밀워키로 떠났다. 그곳에는 이미 배 다른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생모는 파출부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집안은 가난했고 분위기는 늘 우울했다.

오프라는 정(情)을 느끼지 못하는 생모를 떠나 아버지가 있는 단란한 가정을 그리워했다. 꿈이 이뤄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생활이 어려워 오프라를 도저히 키울 수 없다는 생모의 연락을 받은 생부가 오프라를 맡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도 생부와 계모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 오프라는 모처럼 가족의 정을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몇 년 뒤 오프라는 생모가 ‘살기가 괜찮아졌으니 밀워키로 다시 오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생부가 사는 내슈빌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다.

오프라가 ‘비행 청소년’으로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이었다. 아버지와의 단란한 생활에서 다시 생모와 불편한 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열네 살 오프라는 생모 집에서 돈을 훔쳐 가출하고 청소년들과 성관계를 갖는 등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청소년감호소에 수용된다. 우리로 치면 소년원에 간 셈이다. 다행히 감호소가 만원이었던 덕에 오프라는 집에서 특별훈육대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비행청소년으로 분류되었고 본인의 뜻에 따라 생부가 있는 내슈빌로 돌아간다.

이미 오프라는 임신 상태였다. 사이즈가 큰 옷만 입고 다녀 배가 불러와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해 임신 7개월이 넘어서야 아버지에게 들킨다. 유산하기에도 너무 늦은 때였다. 결국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2주 만에 죽었다. 아이의 죽음은 오프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지만 대를 이어 가난한 흑인 미혼모로 살아야 할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프라는 이 시절을 회고하면서 “무언가를 잃은 게 아니라 더 큰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엄마’라는 인생 대신 “새 인생을 시작하자”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오프라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갖고 태어났다. 못생기고 뚱뚱한 검둥이 소녀였지만 말문이 터진 세 살 때부터 교회 연단에 올라가 말하기를 좋아했다고 하니 말재주는 타고난 것 같아 보인다. 고등학생이 되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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