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인덱스 투자 전도사’ 전문 번역가 이건

“폭락장에서도 편히 자면서 부자 될 수 있다”

  • 윤영호│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yyoungho@donga.com│

    입력2009-05-08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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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덱스 투자 전도사’ 전문 번역가 이건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번역가 가운데 이건(48·사진)씨는 특이한 존재다. 단순한 번역자를 뛰어넘어 일반인에게 인덱스펀드를 알리는 전도사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번역가로서는 드물게 팬까지 확보하고 있다. 그는 번역가들의 홈페이지 ‘왓북’(www.whatbook.co.kr)에서 팬과 만나고 있다.

    그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투자 분야의 ‘고수’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때 국내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이때 영국에서 국제채권 딜러 직무훈련을 받았다.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그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양쪽에서 모두 자산을 운용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고객 자산을 운용하면서 손실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는 이를 통해 투자란 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일반인이 투자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쉽게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투자에 뛰어들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또 주위의 능력 있고 선량한 사람이 위험한 투자를 했다가 ‘망가진’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탐욕과 공포에 휘둘려 재산을 날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가정 파탄으로 이어진 사람까지 있었다는 것. 나아가 근무시간에 업무에 집중하지 않고 온통 투자에만 신경 쓰다 결국 공금에까지 손을 대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가 헤어나기 힘든 수렁으로 빠진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일반인이 올바른 투자 방법이나 원리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도 일부 전공자를 제외하면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효율적 시장이론이란

    그는 결코 대박 종목 발굴 비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인도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는 길이 있다고 단언한다. 다만 인내심을 갖고 장기간 투자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인덱스펀드 투자가 그것이다. 그는 “인덱스 투자야말로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면서 착실히 재산을 불려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덱스펀드란 보통 코스피200지수 등 지수를 추종해 그 수익률과 동일한 실적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펀드다. 한마디로 시장 수익률만큼 수익을 올리려는 펀드다. 당연히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라면 코스피200에 포함된 주식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한다. 일반인이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면 적은 돈으로 광범위한 분산 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씨는 “주가지수 상승률을 우습게 보는데, 미국 등 선진국 증시에서는 장기적으로 지수 상승률을 이기는 펀드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인덱스 투자야말로 비용이나 노력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부자가 될 수 있는 확실한 투자 방법이라는 것.

    그가 전문 번역가 김홍식씨와 함께 번역하고 국일미디어가 최근 펴낸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버튼 맬킬 지음)는 인덱스 투자자를 위한 교과서에 해당하는 고전이다. 물론 기술적 분석이나 기본적 분석 등 투자의 다양한 기법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초보 투자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수많은 투자서적 가운데 단연 빛을 발하는 아주 드문 고전이다. 1973년부터 2007년까지 35년에 걸쳐 9번의 개정판이 나왔고, 100만부 넘게 팔린 대단한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미국의 투자 전문지 ‘포브스’도 이 책을 두고 ‘지난 50년 동안 발간된 투자 서적 가운데 정말로 좋은 책은 대여섯 권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런 고전의 반열에 마땅히 들어간다’고 평가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버튼 G 맬킬. 맬킬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어서 내용이 쉽고 술술 읽힌다. 출판사도 이건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9판을 새롭게 번역해 출간했다. 공역자인 김홍식씨는 저자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원저의 연도 표기가 틀린 것을 바로잡는 등 최대한 공을 들였다.

    학계와 금융시장을 두루 꿰고 있는 맬킬은 2007년판에서 최근까지의 금융시장 역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또 1980년대 이후 금융공학의 발달로 생겨난 다양한 파생 상품과 현행 제도를 소상히 다루고 있어 초보자도 선진 금융기법을 일부 접할 수 있다. 여기에 맬킬의 책을 읽고 그대로 투자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맬킬은 줄곧 효율적 시장이론을 지지해왔다. 시장이 너무나 효율적이기 때문에 저가 종목을 발굴해서 ‘계속해서’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맬킬의 주장이다. 맬킬 식으로 표현하자면 눈을 가린 원숭이가 신문 주식 면에 화살을 던져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도 전문가 못지않은 종목을 선정할 수 있다는 것.

    맬킬의 이론대로라면 비용이 아주 싼 인덱스펀드에 투자해서 끈질기게 보유하는 게 최선의 투자 방법이다. 실제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직후 인덱스펀드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존 보글은 1974년 뱅가드그룹을 설립해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내놓았고, 2년 후에는 개인 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는 인덱스펀드를 출시했다.

    인덱스펀드 개발자 보글 존경

    이건씨도 존경하는 존 보글은 ‘월스트리트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투자의 거장.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못지않은 추앙을 받고 있다. 현재 뱅가드그룹은 120개가 넘는 펀드로 1조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 다음가는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올라선 것.

    노벨상 수상자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폴 새뮤얼슨은 이렇게 말한다.

    “보글의 합리적인 지침을 따르면 20년 후에는 수백만명이 이웃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될 것이다. 게다가 온갖 험한 사건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도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이건씨는 보글의 2007년 저서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The Little Book of Common Sense Investing)’도 번역했다. 이씨는 보글이 이 책을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내 판권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수소문해 자신에게 번역을 맡겨달라고 해 뜻을 이뤘다. 이씨는 “국내 투자자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건씨는 최근 국일미디어가 펴낸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도 번역했다. 이 책은 월가의 전설적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가 1989년에 낸 초판을 개정해 2000년에 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의 한 팬이 평소 이씨의 지론과는 다른 책을 번역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단기간에 대박을 터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억지로 참는다고 투기 본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투자자금의 대부분을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되 일부는 직접 투자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때 피터 린치의 책을 읽는다면 위험을 줄여 손실을 축소할 수 있고,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터 린치의 책은 직접 투자에 관한 드물지만 좋은 책이다.”

    그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 투자세계의 이면과 올바른 투자의 길을 일반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일반인이 투자의 정도(正道)를 걸으려면 좋은 책을 찾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런 책을 발견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가 현재까지 번역한 10여 권의 책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거쳐 번역을 맡은 책이다.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고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자칭 고수들의 조언을 듣고 투자에 나섰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상업주의에 물든 이들이 내는 목소리만 범람하는 것은 큰 문제다.”

    그는 “이들의 말을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투자산업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투자자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에 따르면 “이들은 주식거래가 많아질수록, 보수가 높은 펀드를 많이 팔수록, 유료 정보를 많이 팔수록 돈을 번다”고 한다. 이씨는 “투자자의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졸

    ●장기신용은행 주식펀드매니저, 국제채권딜러

    ●삼성증권 사이버마케팅팀장, e-Biz추진팀장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기획마케팅 이사

    ●국민은행 KB아파트시세 개발 및 관리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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