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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본 최고의 노인요양병원’ 세운 재일한국인 강인수

“어머니 치마저고리 떠올리며 한국인 긍지 잊지 않아”

  • 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

‘일본 최고의 노인요양병원’ 세운 재일한국인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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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를 찾아온 어머니가 부끄러웠던 소년이 ‘일본인의 마지막’을 돌보는 일본 최고의 실버 병원을 세웠다. 마술쇼를 펼치며 임종을 앞둔 일본인을 즐겁게 하는 그를 보면 ‘가장 큰 복수는 진심을 실어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 최고의 노인요양병원’ 세운 재일한국인 강인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05년 7월 어느 일요일. 강인수(65)는 아침나절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속옷까지 흠뻑 젖은 채로 야치요(八千代)병원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노인을 태운 휠체어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저 실례합니다만 이 병원의 오너(owner)입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당신을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제가 고백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노인과는 진작 알던 사이다. 강인수가 야치요에서 수년째 치료와 요양을 받는 환자를 모를 리 만무했다. 휠체어를 밀던 이는 노인의 장남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를 붙잡았던 것일까.

“어머니를 야치요로 모시기 전에 히로시마 인근 요양원 8곳을 돌아봤는데 야치요의 시설이 가장 좋았습니다. 가족회의로 결정하던 날 저는 반대했습니다. ‘오너가 한국사람이라 불안하다’고 했죠. 다른 형제들이 일단 믿어보고 좋지 않으면 즉시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해서 마지못해 야치요로 오게 됐습니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이군요. 어머니가 여기 생활을 그렇게 편안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태 한 번도 불평하신 적이 없어요. 제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국인을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 아직까지도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사장님을 뵙고 꼭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가족처럼 보살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일본인 환자 가족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순간 강인수의 머릿속에는 야치요를 세울 때 고생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가혹하고 까다로운 일본사회였던가. 그에게 병원 설립은 불가능을 향한 도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다가가면 갈수록 온갖 구실이 따라붙었다. 어렵사리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조건이 생겨났다.

지성이면 감천한다

그가 병원 설립 허가 신청을 내자 당장 일본의사협회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약사단체도 반대했다. 이에 가세해 일부 주민은 ‘한국인의 병원 설립을 돕지 마라’는 전단까지 뿌리고 다녔다. 관청의 불가 방침은 확고했다. 서류를 완비해 찾아가도 뚜렷한 이유 없이 ‘허가 대상이 아니다’라고 앵무새 소리를 할 따름이었다. 다시금 관청에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일본 정부의 보조금은 한푼도 받지 않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지만, 돌아온 답은 또다시 불가였다.

강인수는 1988년 5월 히로시마에 병원 개설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3년이 넘는 기간을 인가 받는 일에만 매달렸다.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허송세월이었다. 그 사이 사업으로 모아놓은 자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내는 군소리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그를 도왔다. 그때 아내는 남편 몰래 처녀 시절부터 애지중지 모아왔던 다기(茶器)를 내다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아내도 같은 재일동포로서 누구보다 그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강인수는 궁지에 몰릴수록 ‘반드시 병원을 세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불가를 고집하는 일본사회의 부조리에 무릎 꿇기 싫었다. 일본에서 가장 훌륭한 노인병원을 세울 자신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길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무기력하게 물러서야 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병원을 세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약한 현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의 모든 이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저는 제 생각에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지치고 일본사회가 넘을 수 없는 ‘철의 장막’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일본도 민주주의 국가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그래서 국회의원도 표로 뽑잖아요. ‘마을주민들이 야치요병원 설립에 찬성표를 준다면?’ 갑자기 희망이 보이는 겁니다.”

강인수는 병원 건립예정지 인근 주민들을 설득하기로 작정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붙들고 자신이 세울 병원의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야치요마을에 가족 이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병원의 이상향을 세우겠습니다. 몸이 아픈 환자와 환자 가족을 병원의 주인공으로 모시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러기를 수십 차례. 동감하는 주민이 늘기 시작했다. 무작정 반대 진영에 섰던 주민들 중에도 강인수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둘 생겨났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던가. 마을주민 1만여 명 가운데 76%가 병원 설립에 지지 서명을 했다. 주민들은 ‘우리 마을에 그런 병원이 세워진다면 환영한다’고 호응했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다시 구청에 주민들의 서명을 첨부한 설립신청서를 제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설립 허가가 나왔다. 그동안 꿈쩍도 않던 완강함은 온데 간데없어졌고, 담당 공무원이 규정에 없는 서비스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해를 푼 주민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야치요 건립에 발 벗고 나섰다. 모두가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형국이던 강인수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처럼 역전됐다. 그것도 적들을 모두 아군으로 돌려놨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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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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