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

“도로교통법 고쳐 자전거를 대도심 교통수단으로 넣겠다”

  • 정현상│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9-06-08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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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
    요즘 정부 정책에 ‘녹색’이란 말이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 ‘녹색치안’이니 ‘녹색외교’니 하는 말은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무늬만 녹색’을 경계하자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떤 이들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한일 국가대표 평가전 일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4월초였던 당시 한국 측 관계자가 서울 잠실경기장의 누런 잔디를 감추기 위해 녹색 페인트를 칠한 것이 드러나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더 효율적인 다른 성장전략은 과연 없는지 의구심을 가진 이들도 있다. 과연 국제정세, 자원, 기후변화, 무역규제, 시장상황 등을 하나하나 제대로 따져서 만들어가는 녹색성장 정책인가. 또 겉으로는 ‘녹색’의 옷을 입고 있지만 환경보전은 뒷전이고 산업적 측면만 너무 강조하는 건 아닌가. 방향은 맞아도 실천수단은 아직 제대로 마련된 게 없는 것 아닌가.

    녹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8·15축사를 통해 녹색성장 정책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세계가 환경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녹색성장(green growth)을 통해 다음 세대가 10년, 20년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저탄소형 경제를 목표로 에너지효율 향상, 그린에너지산업 육성, 기후변화 대응, 주력산업의 녹색변환 등의 정책을 숨 가쁘게 입안해가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녹색 일자리 창출, 주력 산업의 녹색변환 등 현안이 줄지어 있지만 정부는 최근 녹색성장의 새 아이콘으로 자전거를 뽑아들었다. 자전거가 매연을 유발하지 않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며,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우리 사회에 자전거 열풍도 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정례 라디오연설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자전거는 녹색성장의 동반자”라며 “자전거를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복원시키는 일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4월25일부터 5월3일까지 이어진 대한민국 자전거축전도 정부의 그런 의지를 보여준 행사였다.

    녹색성장을 총괄 조정하는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67) 위원장도 5월11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전거를 대도심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녹색성장 정책의 요체다”라고까지 표현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출신의 김 위원장에게서 녹색성장 철학과 위원회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그는“녹색성장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고, 문명사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지나친 ‘녹색’ 피로감 경계해야

    ▼ 녹색성장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초기 화면에 매일 새로운 뉴스가 올라오는데, 그 주제가 다채롭습니다. 며칠 전에는 ‘녹색치안’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녹색이란 말이 안 들어가는 데가 없더군요. 이건 지나친 전시행정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녹색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무척 높습니다. 우리 위원회가 그런 관심에 대해 제대로 호응하기 위해 어떻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아니겠어요? 금속피로라는 말도 있잖아요. 단단한 정도로 봐서는 견딜 만한 충격인데도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무너지는 현상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어피로현상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산에다 푸른 페인트칠 했다고 녹색이냐’는 비판 같은 게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녹색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가 국민에게 다가가서 설명하고 그 실체를 더 정확히 알릴 것입니다. ”

    ▼ 평소 “녹색성장은 문명사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의미를 부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화석연료에서 온 것입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경제를 낙관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화석연료는 가격이 급등락하고, 가채연도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환경에 부담을 주는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따라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방식을 180도 바꿔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면 경제와 환경이 공존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1980년대 마틴 예니케(Martin Janicke) 같은 이가 생태근대화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산업근대화에서 생태근대화로 가는 여러 가지 실천이나 가능성을 보면 이것이 바로 문명사적 전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

    2월16일 청와대에서 녹색성장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민간 위원장은 김형국(맨오른쪽) 서울대 명예교수, 정부 측 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문명사적 전환

    ▼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인 필연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명박 대통령도 ‘녹색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라고 표현했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에는 이 대통령이 여성부가 주관하는 회의에서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문명이 넘어간 것은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높은 수준의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라며 문명사적 필연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피크오일(Peak Oil·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러 생산량이 줄어드는 시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만, 제가 대학 다니던 40년 전에도 가채연도가 40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석유회사에서 가채연도를 40년이라고 합니다. 석탄액화를 통해 석유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돼 있는데, 만약 그런 에너지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석탄은 인류가 500년 정도 쓸 부존량이 있다고 합니다. 화석연료가 부족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경제의 공존 가능성에 착안한 문명읽기 혹은 위기읽기입니다. 지금 닥쳐온 큰 위기는 지구온난화이고, 그 주범은 화석연료라는 거지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 그런데 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에서는 이것을 과연 그렇게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천천히 걷는 만보(漫步)적 관찰로 현재의 위기, 즉 기후변화 같은 것을 읽기는 참 어렵습니다. 징후를 제대로 읽어내기가 어려우니까 사람들이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라는 말은 듣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제가 어느 자리에서 대기오염에 대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해요. 그러니까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폄훼한 거지요. 그래도 저는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일로 느끼고 신바람을 내면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녹색성장의 핵심은 역시 생산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녹색성장의 주역은 어떤 면에서는 기업입니다. 예컨대 자동차 기업이 수출하려고 하면 연비 규제나 CO2 배출 문제를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즉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 녹색성장은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업 측면만 너무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예컨대 그린벨트 완화나 저유황유 의무사용 규제완화 등 환경규제완화를 통해 환경에 부담을 주면서 기업의 성장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딜레마입니다. 박경리 선생이 비유했듯 우리는 항상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그렇습니다. 환경과 경제 사이의 균형을 찾는 문제는 앞으로 집권자들이 계속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무엇을 찾듯이 규제를 푸는 동시에 또 한편에선 규제를 해야 합니다. 예컨대 친환경제품 아니면 생산을 못하게 한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환경산업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유럽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열림과 닫힘 사이의 중간을 찾는 일이 계속 필요하고, 또 그것이 세상 사회의 이치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녹색성장은 나라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진화하는(evolving)’ 개념입니다. 뭔가 틀이 꽉 짜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절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계속 기복이 있을 겁니다.”

    ▼ 5월초 미래포럼에서 “녹색성장의 선도 모형이 국내에 없고 시급히 해야 할 가치가 다양해졌다는 점이 녹색성장의 걸림돌이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부분을 좀 더 부연해주시겠습니까.

    “산업근대화 시대에는 과거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선행모형이 있었습니다. bellwether(선두자)라는 말을 씁니다. ‘bell’은 종이고 ‘wether’는 숫양인데, 양 모가지에 종을 달아놓으면 다른 무리가 그놈을 따라간다는 데서 선두자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예컨대 우리의 자동차 산업은 일본을 따라 한 것입니다. 산업근대화 시대에는 우리 같은 후발국은 목적 실현만 하면 됐습니다. 경제성장, 조선업, 자동차업 같은 목적이 이미 주어져 있고 이것을 실현만 하면 되는 사회였습니다. 또 지금은 경제뿐 아니라 좋은 환경과 평등한 사회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적이 다양해져서 목적 실현에 앞서 목적 탐색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생태근대화의 시대에는 비록 우리가 출발은 늦었지만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하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교통신호 체계도 바꿔야

    ▼ 최근 정부가 자전거에 대해 의미 부여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5년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을 보면 네덜란드가 27%, 일본이 14%인 반면 우리는 1.2%에 그치고 있습니다. 저는 레저용이 아니라 도시생활형 자전거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서울 도심에 자전거를 중요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산업 근대화의 결과로 개인들은 자가용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길을 넓히고, 터널을 뚫지만 그렇게만 해선 도심의 교통 혼잡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심 혼잡의 극단적 예는 방콕이나 자카르타입니다. 출퇴근하는 데 왕복 6시간씩 걸린답니다. 얼마 전 ‘타임’지를 보니 태국 교통경찰은 소지품으로 항상 탯줄 끊는 가위를 갖고 다니는데, 한 경찰은 차 안에 있는 산모의 탯줄을 한 달에 두 번이나 잘랐답니다. 우리의 혼잡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대도시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도로교통법이나 교통신호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자동차 속도제한을 30km로 하고 항상 자전거를 우선시하는 법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도심교통수단으로 자전거가 5% 도입되면 교통 혼잡도가 4~11%까지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도시경제의 효율성이 더 생기고, 대기오염 배출이 줄어드는 저탄소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를 대도심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녹색성장 정책의 요체입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

    김형국 위원장은 “자전거는 녹색성장의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자전거의 도로 통행권을 보장하고, 자전거 전용차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나 안전표시 등 교통안전시설도 도입하고, 자전거 전용 보험상품도 개발해서 판매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미 밝혔듯이 2018년까지 총 3114km에 이르는 전국 자전거도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 10월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르면 올해 말 시범구간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 우리나라엔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 보급률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요즘엔 하이브리드 자전거도 개발돼 있습니다. 평지에선 사람의 힘으로 가고, 언덕에선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말입니다.”

    ▼ 사람들은 자동차의 편리함에 너무 길들어 있는데 그런 혁신적인 방식이 과연 가능할까요.

    “혹시 상주시를 가봤는지요. 그곳 인구가 12만명인데, 자전거가 11만대 보급돼 있습니다. 물론 대도심의 교통체계를 바꾼다면 저항이 굉장히 클 것입니다. 그러나 요일별로 도심에 진입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정한다든지, 도심 안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한다든지 하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보면 못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자전거 이용이 대세인데 왜 그것을 못 하겠습니까.”

    ▼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시행된다 해도 시민들은 우선 편리해야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사람들은 편리성뿐 아니라 건강이나 친환경 같은 가치들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창원이나 상주 같은 데서 자전거 이용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서울의 경우 지역 중심으로 자전거가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도심에 나온 사람들이 시청에서 롯데백화점으로 갈 때, 혹은 삼청동이나 창덕궁 구경 갈 때 자전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자전거 주차장 설치 의무화

    자전거 사업의 실무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에서는 기존 도시나 신도시를 자전거 이용에 적합하게 개발하고 자전거 주차장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현재 도심지의 자전거도로 정비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며, 현재 9066km인 자전거도로를 2012년까지 1만4919km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출퇴근자가 많은 서울과 일산, 분당 등을 자전거도로로 연결할 복안도 갖고 있다. 정류장이나 역 등에 자전거주차시설을 크게 늘리거나 버스나 기차에 자전거 거치대와 전용칸을 만드는 등 대중교통과 연계된 시설도 많이 만들 계획이다.

    ▼ 전남 순천에 자전거 생산단지를 조성키로 하는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생산시설은 대부분 중국으로 옮겨졌고, 연간 200만대의 수요 가운데 국내산은 2만대밖에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정부의 계획처럼 5년 내 세계 3위 생산국으로 도약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정부가 큰 관심을 두기 시작하니까 관련 기술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순천 율촌공업단지에 가봤는데, 첨단소재인 마그네슘으로 가볍고 강한 자전거 보디를 만드는 업체가 있더군요. 보통 자전거는 무게가 13.5㎏ 정도 나갑니다. 그런데 티타늄 소재 등을 쓰는 고급자전거는 10㎏ 이하입니다. 무게 1㎏을 내리는 데 값이 500만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그 업체는 수입산의 5분의 1 가격으로 질 높은 자전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 위원장님도 자전거를 자주 타시는지요.

    “가끔 자전거를 탑니다. 얼마 전에는 넘어져서 정강이 부분을 다쳤어요. 제가 마산에서 태어났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날 아픈 선친을 뵈러 자전거 타고 마산에서 창원까지 왕복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도심이나 청와대 주변에도 자전거길을 만들어놓으면 좋겠어요.”

    ▼ 녹색성장 사회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에너지일 텐데, 위원회가 목표로 하고 있는 10대 추진방향 가운데 탈석유사회의 핵심 에너지원은 무엇이 될 것 같습니까.

    “새로운 에너지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지금 쓰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에너지를 적게 쓰게 하느냐는 것도 저희가 고민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기술개발을 통해 전기 사용량을 최대 6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무실에도 달려 있는 LED(발광다이오드) 등은 백열등에 비해 에너지를 90% 가까이 덜 씁니다. 아주 놀라운 기술입니다.

    그 다음이 대체에너지입니다. 우리의 대체에너지 기술은 상당히 뒤처져 있습니다. EU(유럽연합)에서는 2012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2%를 대체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독일은 14%로 잡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4%입니다. 물론 국내의 태웅이라는 회사가 풍력발전시스템 가운데 회전축인 로터(rotor)의 전세계 물량 중 60%를 공급하기도 하고, LG가 GM의 전기배터리 자동차에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기술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 혹시 탈석유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원을 원자력으로 보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원자력의 위험성은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원자력은 차선책은 된다고 봅니다. 일상생활에서 CO2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은 자동차입니다. 그래서 그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것에는 누구나 동감합니다. 그런데 전기자동차 충전에 필요한 전기를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만든다면 도로아미타불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CO2 배출이 거의 없고 경제적인 원자력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자동차 제철 반도체 선박 등 주력산업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녹색전환’에 대해 정부가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또 가장 큰 장벽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이것은 참 대단히 민감한 문제인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이 아니지만 세계 10위권의 온실가스 배출국이기 때문에 조만간 대상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6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기본법에도 기업에 대한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Cap and Trade)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총량 안에서 탄소배출권을 사고팔아야 한다는 뜻인데, 에너지 과소비 업체들은 여기에 대한 대비가 아주 절박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탈락할 것입니다. 현재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업체가 바로 에너지 생산업체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업체가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업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요.”

    ‘녹색성장, 기업의 생사 걸린 문제’

    녹색성장위원회는 현재 5개년계획을 마련 중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과제를 위해 신성장동력 확충, 삶의 질과 환경개선, 국가위상 강화 등 3대 전략방향을 중심으로 녹색기술·산업의 개발, 녹색국토·교통의 조성, 생활의 녹색혁명 등 10대 정책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계획은 7월 외부 의견을 거쳐 녹색성장위 의결로 확정된다.

    ▼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녹색성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치수(治水)는 역사 이래로 통치권자들의 최대 관심이었습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지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량 확보, 수질개선, 강 생태복원 등의 의의가 있습니다. 겨울이면 강바닥이 드러나는 강들이 일정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洑)를 설치하거나, 홍수 때 완충 역할을 하는 하상부지를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이 마스터플랜에 담길 겁니다. 강둑을 따라 자전거길을 만들거나 문화공간을 설치하면 강을 따라 문화도 흐르게 됩니다. 물론 전문직 자리는 아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일자리 창출이라는 큰 과제도 실현할 수 있고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면서 강이 지나가는 소외된 지역의 논밭 경지정리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속가능성장을 위한 경제, 환경, 사회라는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요소입니다. 이렇게 물을 확보하면 섬이 많은 전남 지역에 물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바다와 만나는 한강 하구는 북한 땅입니다. 서울은 한강을 통해 바다와 이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바다에서 배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인운하(한강운하)를 통해 바다로 접근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겁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서울도 항구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던지는 함의가 상당히 큽니다. 사람들의 소득이 오르면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도 있고, 그만큼 서울의 경쟁력도 높아질 겁니다.”

    한강운하 예찬론을 펴는 그의 사무실 벽보판 한켠에는 ‘누구를 위한 한강운하인가’라고 쓰인 붉은색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그 전단지는 종로경찰서 형사가 가져왔는데, 그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듣겠다는 생각에 그것을 벽보판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활쏘기 삼매경

    김형국 위원장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마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미국 UCLA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UC버클리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대학원장 등을 지냈고 2008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올해 2월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취미는 국궁(國弓), 즉 전통 활쏘기다. 2003년부터 활쏘기에 맛들여 ‘활을 쏘다’라는 책도 펴냈다. 김 위원장은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동안에는, 몇 초 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고, 오직 순간적인 명상효과만 있다. 얼마나 상쾌해지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올해 4회째 맞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KBS 교향악단 자문위원을 맡는 등 클래식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서양화가 장욱진의 전기 ‘장욱진-모더니스트 민화장’이란 책도 펴냈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워진 것은 수도이전 반대운동이 벌어지던 2004년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에게 전직 헌법재판관을 소개해주고, 수도이전에 대한 위헌판결을 받아내는 데 일조했다. 김 위원장이 모 신문사 비상임논설위원으로 지내며 환경관련 칼럼을 집필할 때 이 대통령이 그의 칼럼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성장이라는, 워낙 중요한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저녁 때는 굉장히 피곤합니다. 그러나 자고 나서 아침에 출근할 때는 ‘오늘이 이세상에서 마지막 날이다’라는 각오로 집을 나섭니다. 이것이 또 한 점의 용기를 얻는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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