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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최은희

“창의, 열정, 낭만 넘치던 명동시대를 부활시키고 싶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배우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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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였던 명동국립극장이 오랜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고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1970년대 중반 금융회사에 매각되면서 극장의 모습을 잃은 지 30여 년 만이다. 국립극장이 있던 시절 명동은 예술인들의 창의와 열정이 넘치는 낭만의 거리였다. 우리 예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명동시대’를 함께한 배우 최은희씨를 만났다.
배우 최은희
난요즘 좀 들뜬 사람 같아. 날아다니는 기분이에요. 가끔은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걱정도 돼요.”

최은희(79)씨는 명동예술극장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세기 전 주연 배우로 서서 울고 웃던 자리다. 그 공간에 다시 와 있는 것이 감개무량한 듯, 활짝 웃는데도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5월29일, 명동예술극장 개관을 딱 한 주 앞둔 날 마무리 준비가 한창인 극장에서 최씨를 만났다. 이 극장의 전신은 1934년 일제가 영화 상영 및 연극 공연을 위해 지은 명치좌(明治座). 광복 후에도 시공관(市公館), 국립극장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역사는 이어졌다. 오페라 ‘춘희’(1948년), 셰익스피어극 ‘햄릿’(1949년)이 이 무대를 통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됐고, 수준 높은 연극 영화 프로그램이 연중 계속됐다. 최씨는 그 시절, 무대에서 가장 빛나던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1943년 극단 ‘아랑’에 연습생으로 입단하며 데뷔한 그는 명치좌부터 국립극장까지, 이 극장의 모든 시기를 함께했다. ‘맹진사댁 경사’ ‘춘향전’ ‘오셀로’ ‘세일즈맨의 죽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으로 무대에 섰고, 1955년 신상옥 감독과 함께 작업한 첫 영화 ‘꿈’도 이곳에서 개봉했다. 유치진 이해랑 김동원 장민호 백성희 김진규 최무룡 허장강 도금봉 황정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 그와 함께 극장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 시절 명동은 우리 문화의 중심지였어요. 거리 곳곳에 예술가들이 넘쳐났고, 열정과 낭만이 가득했지요. 배우와 시인, 연출가와 화가가 무시로 어울렸고요. 이 자리에 앉으니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정말 꿈을 꾸는 것 같네요.”

예술인의 터전

최씨가 그 시절을 꿈처럼 기억하는 건, 1973년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옮겨가면서 화려한 날들도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극장 건물은 한 금융회사에 넘어갔고, 창의가 넘치던 생산의 공간들도 급속히 상업시설로 변모했다. 이 극장에서 공연된 마지막 작품 ‘한네의 승천’ 팸플릿에는 “명동의 명물(名物) 석조 건물이 40년 만에 요절하다니… 안녕! 안녕! 안녕!”이란 고별사가 남아 있다.

소비 중심지가 된 명동에 예술가들도 더 이상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명동을 사랑했던 소설가 고 이봉구씨는 ‘명동시대’의 종말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오랜 세월을 명동의 조촐한 대폿집 목로 앞에서 언제 보아도 불그레 주기에 젖어 있는 얼굴을 하고 홀로 독작을 즐기며 살아왔다. … 그 조촐한 대폿집도 없어져버리고 따스하고 흐뭇한 정감과 낭만도 사라지고 대신 삭막하고 어지럽기만 한 오늘의 명동 … 어디로 가나, 참으로 망연했다.

배우 최은희

최은희씨는 명동예술극장 개관 축하 작품 ‘맹진사댁 경사’에 마을 할머니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최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극장이 문을 닫은 뒤 이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파 웬만하면 명동에 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극장이 다시 문을 열게 된 건 과거의 명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주축이 돼 ‘명동 옛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인 덕분이다. 1994년부터 시작한 이 운동의 성과로 2004년 문화부가 건물을 사들이면서 복원이 시작됐다. 극장 외벽에 덧칠한 페인트를 4개월에 걸쳐 조심스레 벗겨내고, 객석 출입구 로비의 내벽도 되살렸다. 바로크 양식의 극장 안에 들어서면 75년 역사를 간직한 옛 벽이 그 모습 그대로 투명 패널 너머에 자리 잡고 있다. 최씨는 오랜 공사를 마치고 극장이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은 날 “들떠서 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 극장 그 무대에 다시 한 번 서는 게 늘 꿈이었어요. 다시 극장이 열리면 혹시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어요. 개관축하작에 출연해달라기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첫마디로 ‘네’ 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맹진사댁 경사’라는 작품에 여자 배역이 넷밖에 없는 거예요. 젊은 처녀 역 둘 하고, 어머니 역 둘. 젊을 때는 내가 늘 주인공을 했는데, 이제 와 그걸 할 수는 없기에 그냥 특별출연 형식으로 작은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요.”

연극과 영화로 수차례 제작된 ‘맹진사댁 경사’에서 ‘입분이’ 역을 도맡았던 최씨는 이번 공연에 마을 노인 역으로 찬조 출연한다. 제작진이 그를 위해 단 세 마디뿐이지만 대사도 만들어줬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단역인데도 그는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만큼 떨린다”고 했다.

그와 함께 극장 안을 둘러봤다. 매표소가 있던 자리는 로비가 됐고, 객석은 2~4층으로 물러앉았다. 무대가 잘 보이도록 말발굽형으로 조성된 객석은 모두 552석. 명치좌(1178석)나 국립극장(820석)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최씨는 “무대 보기 편하게 잘되었네” 하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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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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