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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팜파탈 미실

150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살인미소

  • 이영철│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희대의 팜파탈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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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안방 드라마의 화제는 단연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이다. 타고난 외모와 교태로 1500년 전 신국 신라를 주무른 것으로 알려진 미실은 뜻밖에도 실존 여부가 불명확한 인물. 웃으면서 칼을 찌르는‘살인미소’ 여인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본다.
희대의 팜파탈 미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역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탈랜트 고현정.

요즘 방영되는 역사 드라마 ‘선덕여왕’이 먼저 시작한‘자명고’와 ‘천추태후’를 따돌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 주몽,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대조영 등 강한 남성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마초 드라마가 대세를 이뤘지만 최근 TV 드라마는 강한 여성성을 부각시키며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른 가부장사회의 쇠락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여기에 ‘선덕여왕’도 가세했다

7월7일 방영된 14회분에서 ‘선덕여왕’은 마(摩)의 시청률로 불리는 30% 벽을 돌파했다. 사실 이처럼 가파른 고공행진은 주인공인 선덕여왕(585?~647, 재위 632~647)이 아닌 희대의 ‘팜파탈’(femme fatale·요부)인 미실(美室·547?~621?) 덕분이다. 드라마에선 아직 덕만(선덕여왕의 본명)이 어린 상황이고, 이 틈을 타서 농염한 여인으로 등장한 미실의 치명적이고 고혹적인 자태와 카리스마에 시청자들이 빨려들고 있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만 전하는 인물

그런데 미실은 누구인가.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와 일사(逸事)인 ‘삼국유사’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성덕왕 때 진골 출신 역사가 김대문(金大問)이 쓴 ‘화랑세기(花郞世記)’ 필사본에 전하는 신라 최고의 경국지색으로 신라 왕실의 혼인 인맥인 인통(姻統) 중 하나인 대원신통(大元神統)을 대표하는 색공지신(色供之臣)이다. 여왕도, 왕후도 아닌 미실이 타고난 미도(媚道·방중술)와 미소(媚笑·아양을 떨며 웃는 웃음)로 신국(神國) 신라를 주물렀다는 게 오늘날 우리에게는 쉽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더구나 ‘선덕여왕’에서 사극(史劇)에 처음 도전해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의 변신은 시청자에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감동을 준다. ‘여명의 눈동자’(1991)에서 안명지 역, ‘모래시계’(1995)에서 윤혜린 역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고현정은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국정을 농단하고 화랑의 막후 실력자로서 웃으면서 칼을 찌르는 소리장도(笑裏藏刀)로 살인미소(殺人媚笑)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화랑은 누구이고 한창 진위논쟁 중인 ‘화랑세기’는 어떤 역사서이며, 미실은 어떤 인물인가. ‘삼국사기’ 설총 열전을 펼치면 끄트머리에 김대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히 소개돼 있다.

“김대문은 본래 신라 귀문(貴門)의 자제로서 성덕왕 3년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다. 전기 약간을 지었는데, 그의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김대문이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지금의 경기도 광주)의 지방장관인 도독(사실은 총관)이 되었다고 하니 그가 살았던 시기는 신문왕대(재위 681~692)~성덕왕대(재위 702~737)로 통일 후 전제왕권 확립기로 보인다. 김대문은 위 4권 외에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의 신라 고유 왕호와 불교 수용 사실을 수록한 ‘계림잡전(鷄林雜傳)’을 저술했다.

김대문은 국가가 주도한 관찬 사서가 아닌 개인의 독자적인 의지에 따른 역사 서술을 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가로 볼 수 있다.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설총, 강수, 최치원 등 유학자의 열전은 있지만 김대문의 경우 독자적 열전이 없다. ‘바보 온달’과 여성인 ‘효녀 지은’도 삼국사기에 열전을 갖고 있는데 진골 경주 김씨인 김대문이 열전에 누락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당시 대다수 유학자가 성당문화(盛唐文化)에 심취해 있을 때 유독 김대문은 군계일학으로 신라의 한문학을 주체적으로 펼쳐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그의 캐릭터가 12세기 금(金) 압박기에 유교보수사관의 시각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결격사유가 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여하튼 ‘고승전’은 고승의 전기를 다루었고, ‘화랑세기’는 신라사의 빛인 화랑들을 기록했으며 ‘악본’은 음악(예악)을 다루었다. ‘한산기’는 한산주의 인문지리를 기술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화랑세기’(681~687년 저술)는 그 전후의 인물도 다수가 포함됐을 것이나 신라 진흥왕대로부터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대까지의 화랑들을 소개했으리라 추측된다.

‘화랑은 요즘의 F4’

‘삼국사기’ 진흥왕 본기 37년(576) 기사를 보면 화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봄에 비로소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처음에 임금이나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을 결함으로 여겨 친구들끼리 여럿이 모여 놀도록 하고 그들의 행동을 살펴본 후 천거하여 쓰기로 했다. 이리하여 드디어 예쁜 여자 둘을 골랐는데 하나는 남모(南毛)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준정(俊貞)이라 불렀다. 두 여자가 미모를 다투어 서로 질투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그를 끌어내어 강물에 던져 죽였으므로 준정은 사형을 당하고 무리에 가담한 사람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얼굴이 예쁘게 생긴 남자를 택해 곱게 단장을 시키고 이름을 화랑(花郞)이라 불러서 받들었다.…(중략)…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말하기를 ‘어진 재상과 충신이 여기로부터 나고 좋은 장수와 날랜 군사가 이로부터 생긴다(賢佐忠臣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라고 하였다.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 이르기를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하였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실상인즉 유불선(儒佛仙) 3교를 포함하여 인간을 교화하는 것이다.…(중략)…당나라 영고징의 ‘신라국기’에 이르기를 ‘귀인 자제 중에 고운 자를 택해 분을 발라 화장을 시키고 이름을 화랑이라 불러 나라 사람들이 모두 떠받들어 섬겼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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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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