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기의 철녀들 ⑮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스크린 밖에서는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었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1/4
  • 금발머리에 육감적인 입술과 반쯤 감긴 눈,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단연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통풍구에서 스커트를 휘날리던 이 섹시한 여배우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끝에 서른여섯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화려한 인기와 비극적인 종말은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에 ‘스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엘 부어스틴은 책 ‘이미지와 환상’에서 “옛날에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현대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옛날의 유명인사들에게는 ‘업적’이라는 실체가 있었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는 유명인사가 허구적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명성과 위대함을 구분할 능력조차 잃어버려 ‘유명한 사람이 곧 큰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유명인 숭배와 영웅 숭배를 혼동하는 것이다. 과거 영웅들은 ‘신념’에 따른 자기만족이 우선이었지만 ‘스타’라고 불리는 현대의 유명인사들은 타인들이 지배하는 시장(市場) 만족이 우선이다. 자기만족과 타인 만족 즉,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괴리 속에서 가장 큰 심적 고통을 겪는 이는 당사자다.

요즘 스타의 자살 같은 비극적 종말 뒤편엔 생전에 그가 겪었던 심적 고통이 드러나는 때가 많아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최근 타계한 마이클 잭슨의 경우를 보더라도 ‘팝의 역사를 새로 쓴 황제’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고독한 사생활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음을 알 수 있다. 약물로 손상된 그의 몸을 찍은 사진들을 보노라면 강한 연민이 솟구친다.

문득 배우 마릴린 먼로가 생각난다. 그녀야말로 화려한 삶 뒤편에서 누구보다 외로워하며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괴리를 체험한 당대 최고의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는 책 ‘세상을 유혹한 여자 마릴린 먼로’ 서문에서 “우리는 먼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자신하지만 사실은 편견에 가득 차 있다”고 잘라 말한다. 유씨의 말대로 먼로는 당대 유명한 연기코치들로부터 연기술을 배우고 타고난 감성과 지적 열정으로 자기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러면서 “배우(俳優)는 기계가 아니라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하여 유씨는 먼로를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라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 속에서 결국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 정도로 순수하게 자신과 직면한 사람, 연기를 통해 자기혁신을 꾀한 자아실현의 의지를 갖춘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 고독을 친구 삼아 철저히 자기준비를 했던 프로, 대중이 만들어준 스타의 공익적 기능을 간파한 동시에 장식품이 되길 거부한 지성”으로까지 끌어올린다.

실제로 먼로는 자서전 ‘마이 스토리’에서 실체와 환상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끊임없이 겪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섹스 심벌, 백치미라는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인조 영웅’을 만들어내는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그녀의 토로는 철학자를 능가한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나를 멋대로 지어낸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환상이 깨지면 내 탓으로 돌린다. 내가 자기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스크린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받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나눌 한 남자를 찾지 못해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세 번의 이혼에 따른 정신적 상처와 (유전적) 우울증으로 약물에 의지하며 살았다. “스크린 밖에서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할리우드의 주류적 삶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여배우의 영혼에 5센트의 가치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할리우드에서도 이방인이었다”고도 말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마릴린 먼로는 사생아나 마찬가지였다.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필름 편집자로 일했던 생모는 먼로를 뱃속에 가진 상태에서 이혼했다. 먼로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만 했다. 1926년 6월1일생인 먼로의 본명은 노마 진(Norma Jean). 세월이 흘러 스타가 된 후 자신의 생부가 생모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천신만고 끝에 연락을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는 싸늘한 대답을 듣는다.

그나마 생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딸이 태어나자마자 12일 만에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낸 생모는 가끔 딸을 보러 가긴 했지만 정이라곤 없었다. 엄마가 너무 무서워 엄마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옷장 속에 숨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가 평생 사랑에 목숨 걸며 ‘애정 결핍’에 시달렸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모는 노마 진이 일곱 살 되던 해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그녀를 데려온다. 하지만 단란한 생활을 꿈꾸던 노마 진의 꿈은 이내 부서진다. 생모가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해버린 것이다. 어린 노마 진은 다시 고아원과 입양생활을 반복한다. 먼로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세상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 없었던 어린 소녀의 도피처는 다름 아닌 ‘공상’이었다. 너무 외로워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때마다 그녀는 온갖 달콤한 상상 속으로 도망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세상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성적 판타지도 있었다. 나체로 교회에 가 ‘신과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몸이 아름답게 변하자 공상은 현실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남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 태어나 처음으로 존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섹시한 외모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 현실세계로 접속하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였지만 욕망과 이기심 덩어리인 인간들과의 거리 조절을 어렵게 만드는 독(毒)이기도 했다.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된‘라이프’지에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입양되어 살 때 가족들은 나를 극장으로 쫓아 보냈다. 늘 혼자였던 꼬마는 영화에 푹 빠졌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머뭇거리기만 하던 나는 열한 살이 되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발견했다. 8㎞가 넘는 등·하교 길을 왕복하는 동안 차에 탄 남자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지나가는 일꾼들이 손을 흔들었다. 세상이 갑자기 나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때로 가족들은 내가 너무 크게 웃고 명랑하게 군다며 걱정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친근하게 대하면서도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요구해 나를 두렵게 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환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1/4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목록 닫기

마릴린 먼로 20세기를 뒤흔든 섹스 심벌

댓글 창 닫기

2018/0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