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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인문학 강좌 세상을 바꾸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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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그가 소외된 이들에게 인문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난 자체는 경제적인 문제일지 몰라도 그것을 겪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이 폭력과 온갖 적대적인 사회 조건에 포위된 채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타자와 소통하고 삶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자존감을 확보해야 한다. 인문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 강의가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 문화적 허영으로 흐르게 되지는 않을까. 그는 강의 내내 학생들과 함께 ‘문답’하는 방식을 통해 이런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수업을 듣는 분들은 삶의 연륜이 남다릅니다. 굉장히 깊고 철학적인 주제도 우리 삶의 문제로 바꿔놓지요. 살아온 역정을 어렵사리 한 쪽 정도 써 와서 부끄럽게 읽어 내려가는 순박함, 시 몇 줄 써 놓고 즐거워하는 천진함, ‘교수님, 철학 주제를 가지고 우리 이야기를 하고 그걸 교수님과 함께 정리하니까 결국 우리가 살아온 삶이 철학이네요’라고 하는 당당함을 보며 인문학 수업의 힘과 희망을 느꼈어요.”

그는 노숙인 강의를 거쳐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임대아파트 주민, 관악구 난곡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를 계속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경희대 총장도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그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 덕분에 2007년 경희대에는 문과대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실천인문학추진위원회’가 생겼고, 서울 및 수도권 3개 지역(노원, 관악, 수원)에서 ‘경희대 시민 인문학 강좌’를 열 수 있었다.

“경희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인문학자가 강의를 맡아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가르쳤지요.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에만 전념해온 학자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이것이 연구와 교육 활동을 제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오히려 인문학의 연구 주제를 다양화하고 교육 활동을 풍성하게 해주지요. 가령 인문학과 민주주의, 인문학과 문화, 인문학과 시민사회의 윤리의식 등에 관한 연구 주제가 자연스럽게 개발될 수 있거든요.”



지속가능한 실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가 사회 전반에 인문학적인 가치를 부활시키는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도 교수로서 의미 있는 부분이었다. 우 교수와 더불어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 박남희씨는 인문대학 강사들이 공동 저술한 책 ‘행복한 인문학’에서 “(이 수업을 통해) 구제받은 것은 수강생들이 아니라 인문학 자체”라고 고백했다. 성프란시스대와 관악인문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한 최준영씨도 “인문학 강좌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인문학 그 자체인 셈이고 (우리 인문학자들은) 노숙인을 비롯한 시민인문학 수강생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고 했다. 우 교수 역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대학은 인문학자들이 교수, 연구원이 아닌 또 다른 자리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펼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경희대의 첫해 프로그램이 끝난 뒤 이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에 지원을 요청했고, 2008년 강의 주체를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로 확대 개편할 수 있었다. 우 교수는 이 센터의 상임위원을 맡아 커리큘럼 구성과 강의 등을 총괄 진행하고 있다.

경희대 시민인문학 강좌는 2008년 서울 및 수도권 15개 지역에서 열렸고, 올해는 서울 및 수도권 15개 지역과 더불어 서울지방교정청 산하 교도소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전에도 교도소 내에 인문학 강의가 마련된 적은 있지만, 대학이 참여하는 정규 과정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반기에 열린 1학기 과정과 9~12월에 열리는 2학기 과정을 모두 들은 재소자들에게는 경희대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준다.

우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당의 교육방식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고, 1970~80년대 야학과 노동자 대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인문학 강의가 빨리 제자리를 잡는 것 같다. 경희대뿐 아니라 수도권 여러 대학과 전북대, 울산대, 제주대 등에서도 소외계층과 일반 시민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 이제 우리의 인문대학은 초기에 벤치마킹했던 클레멘트 코스와 다른 우리만의 형태로 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수강 대상이 노숙인, 빈민 등을 넘어서 일반 주민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우 교수는 “자신의 자녀가 임대아파트 주민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며 다른 학교로 배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작은 평수주택은 한구석에 몰아 짓고 담장을 치는 사회, 일용직 근로자의 쉼터가 들어서면 우범지역이 된다고 쉼터 건축을 반대하는 사회에서 인문학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 아닌가 ”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경멸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앞 다투어 물질적 가치와 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은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널리 알려지면서 요새는 강남구 수서임대아파트 단지, 경동시장 상인회 등 다양한 곳에서 자기 지역에도 강의를 개설해달라고 요구해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점점 의미를 갖게 되는구나 생각하면 보람이 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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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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