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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두 거목 황영기 강정원

공격적 영업 주도한 승부사 VS 리스크 관리 중시한 정통 뱅커

  • 류정일│헤럴드경제 시장경제부 기자 ryus@heraldm.com│

금융권 두 거목 황영기 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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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시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으면서 4반세기 평행선을 달려온 황 회장과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각각 검투사와 황소에 비유되면서 상반된 경영 스타일을 보인 황 회장과 강 행장. 국내 금융계 성층권 인사들 가운데 이들처럼 대조적인 경영 스타일과 행보를 보인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 두 거목  황영기         강정원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왼쪽). 강정원 국민은행장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국내 굴지의 삼성그룹에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외국계 은행에서 주요 경력을 쌓아 다른 듯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금융권에서 두각을 나타낸 출발점은 비슷했다.

이들은 우선 ‘범(汎)이헌재 사단’으로 일컬어진다. 과거 이헌재 펀드 출범 과정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던 황 회장은 ‘헌재 리’도 인정하는 인물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고교(경기고) 후배인 강 행장은 과거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서울은행장에 발탁됐다. 조금만 시곗바늘을 되돌려보면 두 사람은 1980년대 중반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함께 근무하며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금융권에서는 30대에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근무했던 시절부터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걸을 준비 과정을 마쳤다고 보고 있다.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황 회장은 파리바은행을 거쳐 1982년 8월 뱅커스 트러스트 서울지점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씨티은행 본사에 입사한 강 행장은 1983년 12월 뱅커스 트러스트에 합류한다. 1989년 4월 황 회장이 친정인 삼성그룹으로 복귀할 때까지 두 사람은 6년 가까운 세월을 뱅커스 트러스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지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나란히 30대의 대부분을 보낸 뱅커스 트러스트는 어떤 회사였을까. 미 샌디에이고대학 법대 프랭크 파트노이 교수는 1980년대 중후반 살로먼 브라더스, CS 퍼스트 보스턴과 함께 뱅커스 트러스트를 시장의 기만과 부패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평가했다. 파트노이 교수는 2003년 저서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에서 1987년 찰리 샌포드 회장이 취임한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는 호기심 많고 도전적이며 창의력이 풍부한 젊은이들에게 수십만달러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은행 자본을 투기적인 거래에 베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썼다.

세계 각국 통화를 대상으로 위험천만한 파생상품 거래를 하면서 뱅커스 트러스트는 천문학적인 투자이익을 냈고 곧장 다른 투자은행들이 따라 하면서 뱅커스 트러스트의 위험한 베팅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포장돼 전세계로 감염돼나갔다. 그러나 1988년 결산에서 수년간 천문학적 금액의 파생상품 거래에서 발생한, 그러나 당시 회계 시스템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80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뱅커스 트러스트는 수년간 큰 곤욕을 치러야 했고 10여 년 뒤 도이체방크에 매각됐다.

황은 영업현장, 강은 리스크 관리

30대 후반이던 두 사람은 뱅커스 트러스트 시절부터 스타일이 사뭇 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 회장이 영업현장을 누볐다면 강 행장은 주로 리스크 관리와 경영에 관여했다. 한 금융계 인사는 “1980년대 후반 실화에 근거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브로커인 주인공이 결국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됐지만 사실 영업현장을 뛰는 금융인 중 영화의 비극적 결말보다는 영화 중반 엄청난 인센티브와 호화로운 생활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1990년대 초반까지 연이은 미국발 금융부정 사건을 외신으로 접하면서 국내 금융계에서도 영업맨과 관리인력 사이에서는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두 사람의 보다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증언은 없지만 미국 본사 사정이 여의치 않자 ‘확장’보다는 ‘수성’전략을 택했고 이에 따라 관리통인 강 행장의 입지가 굳어지면서 황 회장이 뱅커스 트러스트를 먼저 떠났다는 설도 있다. 이후 황 회장은 삼성 회장 비서실 국제금융담당 이사,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무, 삼성증권 사장 등을 거쳤고 강 행장은 뱅커스 트러스트 컴퍼니 서울지점 대표와 도이체방크 서울지점 대표, 서울은행장 등을 거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금융권에서는 당시 형성된 각자의 경영 스타일-성장 중심인 황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방식 대 안전성 위주인 강 행장의 신중한 경영 방식-이 이후 은행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2004년 드디어 국내 1,2위 은행의 수장으로 다시 만난다.

2004년 금융권에는 2가지 빅 이벤트가 있었다. 통합 우리은행(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 은행) 2기를 이끌 회장과 행장 선임건과 김정태 행장 이후 국민은행을 이끌 수장의 모색이었다. 그해 4월에는 황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금융권 중심에 화려하게 급부상했고, 11월에는 강 행장이 국내 최대인 국민은행장으로 등장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실 은행이 정리되고 몇 개 남지 않은 은행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모 은행장의 표현을 고스란히 빌려 ‘가문의 영광’임에 틀림없었지만 두 사람의 출발선상에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기류가 흘렀고 이는 다시 한번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을 구분 짓는 계기로 작용했다.

은행장으로 등장한 두 사람

2004년 3월초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황 회장을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으로 호출했다. 기업은행장에 오른 고 강권석 행장과 함께였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삼성 출신인 황 회장의 우리금융행(行)에 난색을 표했지만 이 부총리가 ‘황영기 카드’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그 결과 사실상 내정이 확정된 직후였다. 이 부총리는 황 회장에게 공적자금 100% 회수와 주가 관리를 당부하면서 “야무지게 경영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민영화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이에 황 회장은 “지배구조가 안정될 때까지 회장과 행장이 분리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회장과 행장을 겸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했고 이 부총리는 “공부를 좀 했구먼.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괜찮군”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현직 부총리의 신임을 바탕으로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은행장을 겸임하게 된 황 회장은 내정이 발표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사뿐 아니라 보험사도 매물로 많이 나와 있다. 어떤 회사를 인수할지 검토할 계획”이라며 취임도 하기 전에 자신의 구상을 밝힐 정도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반면 그해 11월 어느 날 신임 국민은행장으로서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을 인사차 방문한 강 행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윤 위원장의 첫마디는 “축하합니다”가 아닌 “국민은행이 큰일입니다”였던 것이다. 접견실에 앉은 강 신임 행장에게 윤 위원장은 금감원 종합경영실태평가 결과라며 두툼한 서류 뭉치를 보여줬다. 자산건전성, 수익성, 자본적정성 및 경영관리 부문에서 취약점이 드러난 상태였다. 국민은행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당시 국민은행은 자산이 200조원에 달했지만 급격한 자산증가 속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며 “감독당국에서는 ‘이러다 망한다’는 위기감이 매우 컸다”고 회고했다.

감독당국 수장과의 첫 만남에서 덕담 대신 경고를 받은 강 행장은 큰 부담을 안고 임기를 시작했으며 당연히 경영의 초점을 안정성에 맞췄다. 그 결과 2004년 9월말 3.26%로 은행권 최고였던 국민은행의 연체율은 올해 3월말 1.05%로 은행권 최저 수준으로 안정됐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13.16%로 국내 최고 수준으로 개선됐다.

강 행장은 2000년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은행 행장으로 재직할 당시 은행경영 및 조직쇄신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2000년 6월 서울은행장에 취임한 그는 일선업무와 후선업무 경계를 없앴고 마케팅 강화, 견제 시스템 정착 등 조직을 대대적으로 혁신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못 됐고 강 행장은 이후 3년간 경쟁 은행들이 중기대출, 주택담보대출, 해외진출, M&A 등으로 외연을 키우는 동안 바짝 엎드린 채 몸 추스르기에 전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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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헤럴드경제 시장경제부 기자 ryu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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