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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④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배우로 불리고 싶은 사나이 홍승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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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 고려대 법대 졸업, 제30회 사법시험 합격,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졸업,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 현재 법무법인 신우 변호사. 홍승기의 이력서 앞면이다.
  • 종이를 뒤집으면 완전히 새로운 이력이 시작된다. 한국배우협회 정회원, 연극 ‘따라지의 향연’ ‘춤추는 벌레’ ‘아트’,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 ‘취화선’ ‘축제’ ‘섹스 볼란티어’ 출연….
  • 냉정한 변호사이면서 동시에 가슴 뜨거운 배우인 그는 “언젠가 꼭 ‘대부’의 말론 브랜도 같은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하는 괴짜다.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변호사 겸 배우 홍승기(50)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유명한 변호사이되 보잘것없는 배우로 보였다.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운 영화 제목을 보고 기대가 컸지만 알고 보니 그가 맡은 배역은 대부분 대사 한두 마디짜리 단역이었다. “출연작을 다시 봤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 나왔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자 “어느 장면에서 누구 뒤에 나왔는데…”설명하려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 딸도 잘 못 찾더라고요. 남들 눈에 보이겠어요?”

그래도 그는 분명 배우다. 한국배우협회 정회원이고,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제법 비중 있는 역할도 맡았다 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구할 수가 없다. 개성 있는 걸인(乞人) 연기를 보여줬다는 ‘비디오를 보는 남자’(2002)는 서울에서 단관 개봉한 뒤 사라졌고, 2007년 생애 첫 단독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섹스 볼란티어(Sex Volunteer)’는 지금껏 개봉관도 못 잡았다. 후자는 자신도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딱 한 번밖에 못 봤다.

“작품은 아주 좋아요. 그런데 제가 주연이니 극장에 걸릴 리가 있나요.”

그는 농담처럼 “영화가 인터넷에 무단유출이라도 돼 사람들이 좀 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게 무명배우의 슬픔이에요. 생업을 뒤로하고 1년을 공들여 찍었는데….”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대중 영화 감독이라는 자들은 자신을 믿지 않고, 애써 찍은 영화는 개봉이 안 되고, 연기를 향한 꿈은 포기할 수 없는데 좋은 배역은 안 들어오고…. 이날 이야기를 굳이 정리한다면 ‘간절히 배우이고 싶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어느 변호사의 씁쓸한 인생’ 정도가 됐을 거다. 그런데 헤어지고 며칠 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송 기자, 지금 인터넷에 뉴스 뜬 거 봤어요?”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따라 그가 수화기 너머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섹스 볼란티어’ 있잖아. 그게 오늘 상파울루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어요. 감독이 신나가지고 전화를 했네. 얼른 뉴스 찾아봐요. 이게 웬일이야. 하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변호사 출신 카메오’쯤으로나 여겨지던 그에게, 그래서 못내 상처받던 그에게 이번 수상은 국제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쾌거’였다. “이제 오랜 무명 생활을 끝내고 세계적인 배우가 되시라”고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가 수화기가 깨질 듯 크게 웃었다.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일단 얼른 영화가 개봉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내가 연기한 걸 봐야지. 그래야 ‘진짜 배우’라는 걸 믿고 좋은 배역을 줄 거 아니요.”

‘홍변’ 대신 ‘홍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그다운 바람이었다.

40년 연기 인생

‘진짜 배우’가 되는 건 그에게 필생의 꿈이다. 변호사 겸 배우라고 얼치기 취급을 받을 때마다 논란을 잠재울 ‘한방’을 꿈꿨다. 영화판에서 ‘딴 동네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싫어 1996년 영화 ‘축제’를 촬영한 뒤 영화배우협회에 회원등록을 했고, 이듬해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에서 문화 예술 관련 법을 공부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딴 뒤엔 귀국하자마자 충무로 배우협회에 찾아가 밀린 회비부터 냈다. 공부 마쳤으니 이제 다시 배우 일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 취미로 배우생활 한다는 얘기가 정말 듣기 싫은가 봅니다.

“그럼요. 연기인생 40년인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무대에 섰어요.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이미 배우였죠.”

▼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겁니까.

“대구 계성초등학교 다닐 때 MBC 전신인 영남TV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출연자를 뽑으러 왔어요. 여러 명이 같이 갔는데, 다른 애들은 다 잘리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사투리를 거의 안 썼거든요. 운이 좋았죠. 그때 지역방송 연출하던 분들은 대부분 다 연극 연출가도 같이 해서, 그 양반들이 대학극이나 성인극에서 아역 필요할 때마다 저를 불렀어요. ‘따라지의 향연’ 뻬뻬니에로 역으로 처음 무대에 섰고, ‘춤추는 벌레’ ‘배비장전’ 같은 작품도 했지요.”

▼ TV에 나오고, 연극에도 자주 출연했으니 제법 유명했겠습니다.

“대구에서 내 연배치고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죠. 에이트픽쳐스 송병준 대표가 동갑인데, 그때부터 나를 알았다고 하대요. 인생의 황금기였어요. 수업 끝나면 늘 방송국에 갔고, 일주일에 하루씩 방송한다고 조퇴하고. 중학교 올라가면서 어린이 방송은 그만뒀지만, 본격적으로 연극 하느라 학교를 며칠씩 빠지기 일쑤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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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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