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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펴낸 시인 최영미

  • 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사진 / 문형일 기자

‘내가 사랑하는 시’펴낸 시인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펴낸 시인 최영미
그는 ‘내가 사랑하는 시’(해냄)를 엮으면서 오래된 공책, 시화집, 일기장을 뒤적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란다, 글자를 먹어치우면서 명시를 노트에 베낀 건.

“소녀 때 읽은 문장이 30년 넘게 살아남아 있어요. 일요일마다 집 근처 사직도서관에 갔는데 시화집과 노트를 가방에 챙겨 갔어요. 맘에 쏙 드는 구절을 노트에 베꼈는데, 나중엔 빌려볼 책이 없더군요.”

검정 교복의 ‘문학 소녀’가 사춘기 때 삼킨 문장은 쉰을 코앞에 둔 오늘의 그를 빼닮았다. 책으로 엮어낸 시들은 군더더기 없고 정갈하면서도 사랑, 열정, 정의처럼 ‘우리를 살게 하는 말’로 가득하다.

시인 최영미(48)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주문 373’부터 월북시인 김기림의 ‘길’까지 55편의 동서고금 명시에 해석을 달았다. “영어로 쓰인 시의 대부분은 새로 번역했다”면서 그는 웃었다.

최영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로 문단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인으로서 이름값을 높였다. 지금은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홀로 산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책의 서문에 적었다. 좋아하는 시를 모았다기보다는 ‘아. 이렇게 시가 다채롭구나’라고 느낄 만한 시를 골랐다.

“시는 인생을 절묘하게 압축해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응축된 삶의 진리를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김기림이 쓴 ‘길’에 ‘어떤 찬사도 모자라는 아름다운 문장’ ‘조그만치의 군더더기도 용납하지 않는 자기 절제’라는 감탄을 덧붙였다. 김기림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시인의 어머니와 첫사랑이 오버랩되면서 콧잔등마저 시큰해진다는 ‘길’의 마지막 대목을 읽어보자.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내가 사랑하는 시’에 수록된 시 중엔 아리면서도 아름다운 연애시가 적지 않다. 시인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여자는 도로시 파커의 ‘불행한 우연의 일치’를, 남자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그대가 늙었을 때’를 음미해보라고 한다.





저는 그의 것이에요, 라고 맹세하며

당신의 몸이 떨리고 한숨이 나올 때

그리고 그 역시 당신을 향한 그의

무한한, 영원한 열정을 맹세한다면-

아가씨 이걸 알아둬

당신들 중의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불행한 우연의 일치’라는 제목과 ‘아가씨, 이걸 알아둬’란 구절이 이 시의 주제란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가 ‘진실의 충고’를 새겨들을 리 만무하다. 예이츠는 ‘그대가 늙었을 때’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타오르는 장작더미 옆에서 몸을 구부려

약간 슬프게, 중얼거리시기를, 사랑이 어떻게 도망갔는지

그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이러저리 거닐며

그의 얼굴을 별무리 속에 감추리라

‘내가 사랑하는 시’는 ‘주간동아’에 1년간 연재돼 호평받은 코너 ‘시인 최영미가 사랑한 시’를 통해 소개한 시와 연재를 마친 후 작품을 추가해 엮은 책이다. 해설 행간에 담긴 시인의 감정과 개인사를 훔쳐보는 건 이 책의 덤이다.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신동아 2009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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