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듀오정보 대표 김혜정

‘행복한 두근거림’을 파는 CEO

  • 글·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사진·지호영 기자, (주)듀오정보 제공

    입력2009-12-10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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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에 결혼의 가치 되살리고 싶다”
    ㈜듀오정보 대표 김혜정
    ㈜듀오정보를 ‘중매회사’로 여기는 이가 많다. 1995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2만명에 달하는 남녀가 이곳을 통해 결혼했으니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들은 듀오에서 배우자를 만날 뿐 아니라, 연애기술을 배우고, 결혼 준비에 필요한 도움을 얻으며, 웨딩 분야 취업 교육을 받기도 한다. ‘짝짓기’ 회사로 출발한 듀오정보를 결혼 관련 종합 기업으로 변화시킨 주인공은 김혜정(45) 대표다.

    서울대 독문과 82학번인 김 대표는 대우자동차 여성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1세대 샐러리우먼. 홍보실에서 4년여 근무하다 재미교포와 결혼하면서 미국 현지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삶이 달라진 건 그곳에서 회계 업무를 맡으면서부터다. 뒤늦게 ‘숫자의 재미’에 빠져든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러트거스 뉴저지 주립대에 입학해 MBA를 받았고, 이듬해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도 땄다. 현지 회계법인에서 1년쯤 근무하던 중 듀오정보 설립자로부터 CEO 제안을 받았다.

    “대우자동차 시절 함께 근무한 동료였어요. 퇴사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면서 회계 전문가를 물색하다 저를 떠올린 거죠. 결혼정보업의 특성상 여성이 CEO를 맡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는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 CEO를 맡은 뒤엔 2002년 웨딩컨설팅 업체 듀오웨드, 2006년 취업교육기관 듀오아카데미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웨딩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업무 분야인 ‘커플 매칭’ 분야에서도 입지를 굳건히 했다. 현재 듀오정보 회원 수는 2만2000여 명. CEO 취임 당시 170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280명 선으로 증가했고, 매출액도 2001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18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김 대표가 최근 서울대 경력개발센터가 선정한 ‘여성 리더’ 13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힌 것은 이러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은 덕분일 것이다.

    김 대표는 “나 자신이 수십 번 맞선을 본 끝에 결혼했기 때문에 우리 결혼문화가 뭔가 불편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게 뭘까를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체질을 바꿔나간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CEO로서 그의 첫 도전은 직접 커플매니저를 맡은 것. 현장의 요구를 파악하고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출산 휴가를 가는 직원이 있어 관리하던 회원의 일부를 넘겨받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2003년 듀오에 국내 최초의 ‘프로필 매칭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입자가 개인의 프로필과 160여 개에 달하는 이상형 항목을 DB에 등록하면 컴퓨터가 이를 분석해 가장 조건이 잘 맞는 배우자와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노력 없이는 결혼도 없다”

    ㈜듀오정보 대표 김혜정
    “당시 결혼정보회사들은 ‘1년에 O회’같이 만남의 횟수를 내세우며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보니 고객들의 관심사는 ‘몇 명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이상형에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더라고요. 우리는 고객들에게 매달 컴퓨터가 추천하는 상대의 프로필을 3명씩 보내기로 했지요. 나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프로필은 덤으로 제공하고요. 그 자료를 검토한 뒤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회원 본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바꾸자 만남의 기회는 평균 2배 이상 늘어나고, 회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지요.”

    전문직 종사자들을 ‘노블레스 클럽’으로 묶은 뒤 매달 한 번씩 이들만을 위한 파티를 연 것도 주효했다. 자연스러운 사교 모임 방식의 만남을 선호하는 이들의 요구가 충족되자 회원 수가 크게 늘었다. 김 대표는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들은 회원 수가 많은 업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많은 회원이 또 다른 회원을 불러오고, 그들이 기존에 활동하는 회원에게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되어 만족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우리의 힘”이라고 했다.

    결혼을 보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점도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김 대표는 “예전엔 연애나 결혼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이젠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혼활(婚活)’ 열풍은 이런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한다.

    ‘결혼활동’의 줄임말인 ‘혼활’은 지난해 일본 시사용어집에 소개된 신조어.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을 위해 취업 준비 못지않은 열성을 쏟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 대표는 “일본 젊은이들은 결혼을 위해 스터디그룹을 조직하고, 관련 컨설팅 학원도 다닌다. 삶에서결혼이 직업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듀오가 개설한 ‘혼활강의’, 연애에서 성공하는 화법, 남녀 사이 스킨십 갈등 해결법, 재테크 실전 강좌 등에도 예상 인원의 7배가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듀오정보 대표 김혜정

    듀오정보 김혜정 대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결혼산업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있어요. 많은 여성이 과거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에 뛰어들어 폭넓게 활동하면서 남녀관계에 변화가 생겼지요. 문제는 배우자의 성역할에 대한 기대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잘난 여성이라도 결혼할 때는 자신보다 좀 더 나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해요. 그런 수준의 남자가 과거보다 줄어든 만큼, 능력 있는 여성의 결혼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지요.”

    반대 관점에서 보면 남성 역시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낮아졌다. 결혼을 안 할지언정 눈을 낮추지는 않는 여성층이 두꺼워지면서 결혼 적령기의 여성 수가 줄어든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런 환경에서 결혼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아예 결혼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적극적으로 혼활에 나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한다”며 “최근 우리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위기에 빠진 것은 상당수 젊은이가 전자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만큼은 아들과 함께 보내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힘을 얻는 그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가정은 나의 자양분이고, 모든 힘과 용기의 근거”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결혼업계 선도업체의 CEO로서 좀 더 많은 이에게 결혼의 가치와 행복을 알리고 사랑이 주는 ‘행복한 두근거림’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느낀다고 했다. 듀오정보가 창립 15주년을 맞는 내년부터는 이런 철학을 경영 전반에 반영할 생각이다.

    “이제 우리 회사는 제3기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가 결혼정보회사로서 입지를 다지는 시기였다면, 저의 취임부터 올해까지는 사업다각화를 통한 성장기였지요.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 결혼과 가정의 가치를 알리고 바람직한 결혼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봐요. 이미 서울 강남구, 경기도 등과 함께 새로운 결혼문화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지요. 이런 노력을 통해 젊은이들이 결혼의 기쁨, 행복을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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