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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⑥

대한민국 최고 술꾼 허시명

“달착지근하고 쌉싸래하고 시곰새곰한 술맛에 빠진 인생”

  • 송화선│동아일보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대한민국 최고 술꾼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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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한산 소곡주

2000년 2월, 한산 소곡주를 맛보기 위해 충남 공주로 첫 여행을 떠나며 그날 그 술자리를 떠올렸다. 술이라는 게 그렇게 맛있고 즐겁고 행복한 거라면, 호구지책일지언정 이 취재도 행복할 게 분명했다.

▼ 소곡주는 맛있던가요.

“최고였죠. 그 뒤로 10년간 술을 마셔왔지만, 지금도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술 가운데 하나예요. 그걸 처음 만난 건 행운이었죠. 제 첫사랑이라고 말해요.”

그는 소곡주를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색깔에 첫맛은 달콤쌉싸래하고 술을 넘기면 혀가 알알하다”고 표현한다. 옛 사람들은 이 술을 ‘앉은뱅이술’이라고 불렀다. 마신 사람은 취했다고 생각지 않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허씨는 “그게 좋은 술의 조건”이라고 했다.



“약주를 마시면 손끝발끝부터 취해요. 머리는 명정해지죠. 옛 선비들이 술을 마신 뒤에 시를 읊은 건 그 덕분입니다. 나쁜 술은 머리부터 취하는 술이지요. 손발에 힘이 남아있는데 골치가 쑤시니 깨부수고 때리고 사고를 치게 되는 거예요.”

소곡주는 명주(名酒)였다. 몸은 노곤하고 취기가 도는데 머리는 맑아졌다. 술기운에 한산면 건지산성에 올랐다. 백제가 망한 뒤 유민들이 울분을 삼키며 모여 살았다는 그곳의 누각에 오르자 한산벌이 내려다보였다. 멀리 금강 줄기도 눈에 들어왔다. 자리 펴고 앉아 다시 소곡주를 마시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다.

“붉고 통통한 볼에 눈이 맑은 여자 같은 술이여!”

그날 밤 술 취해 잠들기 전, 그가 소곡주에 대해 끼적인 감상이다. 그는 정말로 감탄했다. 새로운 경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 술맛에 경치까지 더해져 더욱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원래 맛이라는 게 공간과 더불어 기억되는 겁니다. 저는 최고의 술은 경치 좋은 곳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해요. 빼어난 술과 그것을 빚어낸 풍광, 옛 이야기까지 함께 마시면 얼마나 감동적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세계에 발을 들인 거지요.”

그렇게 몇 차례 술 여행을 다닌 뒤부터 그는 자신에게 ‘술 기행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행지에 가면 어디서든 “이 지역에서 술 가장 잘 빚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술이 그의 삶 속으로 쑥 들어왔다.

칼처럼 날카롭고 댓잎처럼 향기로운

술을 잘 하지도 못하는 그가 술의 세계에 빠진 이유에 대해 그는 “폭음을 하지 않기에 오히려 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알면 알수록 술의 세계는 무림의 세계와 흡사했다. 도처에 지존이 있었다. 전남 진도 산골 마을의 이름 없는 닭볶음탕집에서 만난 산버찌술 이야기는 소설의 한 대목 같다. 그 식당에 기막힌 술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지만, 주인은 좀체 내주려 하지 않았다. ‘좋은 술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우리 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간곡히 설명하자 부엌 뒤편 술독에서 딱 한 잔을 떠줬다.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40도 맑은 술이 쨍하고 목구멍을 두드렸다. 쌉싸래하지만 떫지 않은, 이제껏 느끼지 못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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