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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배 대역전 우승 이끈 여성 기사 박지은

  • 글 / 서정보 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suhchoi@donga.com

정관장배 대역전 우승 이끈 여성 기사 박지은

박지은 9단은 이세돌 9단과 동갑이니까 올해 27세다. 슬슬 골드미스 반열에 올라서고 있지만 그의 앳된 외모는 10대 소녀처럼 풋풋하다. 그 덕분인지 그는 매년 바둑 팬들의 투표로 뽑는 바둑대상 인기기사상에서 6년간 여성 기사 1위를 고수했다. 이런 박 9단이 또 한번 사고(?)를 쳤다.

박 9단은 2월4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여성 국가대항전인 8회 정관장배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인 리허 2단을 물리쳐 한국 팀에 우승을 안겼다. 그는 2월1일부터 시작한 3라운드에서 중국의 쑹룽후이 5단, 일본의 스즈키 아유미 7단, 중국의 예구이 8단을 차례로 물리쳤다. 정관장배는 한·중·일 3국의 여자 대표기사들이 5명씩 출전해 이긴 사람이 계속 두어나가는 연승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3라운드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팀은 암울했다. 최종 주자 박 9단만 남은 상태에서 중국은 3명, 일본은 1명이 남아있었기 때문.

“개인적으로도 우승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봤죠. 몇 판이 남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한 판 한 판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허 2단은 지난해 정관장배에서 3연승을 거두며 중국 우승을 이끌고 최근 비씨카드배에서도 64강에 오른 신예 강자. 마지막 주자로 낙점된 것도 최근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이다.

“둘 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초반부터 잘 풀려 쉽게 이겼어요.”

박 9단은 2월 발표된 한국기원 프로기사 랭킹에서 76위를 기록했다. 여성 기사 중 64위인 루이 나이웨이 9단, 67위에 오른 조혜연 8단에 비하면 처지는 기록이다. 여성 기사 랭킹 3위인 셈인데 박 9단은 평소 실력보다 결정적일 때 한방씩 터뜨려 화제를 만들어주는 승부사 기질이 뛰어나다.

2008년 1월 중국이 주최한 세계대회인 원양부동산배에서 루이 9단을 2대 1로 꺾고 우승하며 국내 여성 기사로는 처음으로 9단에 올라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신문은 물론이고 바둑 보도에 인색한 방송사들도 박 9단이 귀국하던 날 공항까지 쪼ㅊ아 나와 취재를 한 뒤 뉴스를 내보냈다. 2002년엔 도요타덴소배 본선에서 일본의 명인이었던 요다 노리모토 9단을 꺾기도 했다.

박 9단은 10세 때 동네 바둑교실에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 프로기사들이 6, 7세 때 바둑을 배운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다. 박 9단은 당시 부모에게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이제야 알려줬느냐”고 투정했다고 한다.

기재는 탁월했다. 배운 지 1년 만에 1급이 됐고 이때부터 프로를 지망했다. 14세 때 서울 양천바둑도장으로 옮기고 한국기원 연구생이 됐다. 박영훈, 강동윤 9단이 도장에서 같이 공부하던 멤버다. 1997년 11월, 여자로선 최초로 연구생 1조까지 오른 그는 여류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했다.

당시 그는 전형적인 ‘힘바둑’을 두었다. “공격목표를 보면 앞뒤 안 재고 달려들었다.” 별명도 ‘여자 유창혁’이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던 유창혁 9단처럼 박 9단은 공격적 기풍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모 아니면 도 식의 바둑은 이길 때 통쾌하지만 질 때는 약체한테도 형편없이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기복이 심했다.

지금은 공격 일변도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바둑으로 많이 변했다는 게 동료 기사들의 평가다.

“그래도 끝내기가 많이 약해요. 잘나가다가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박 9단이 라이벌인 조혜연 8단에게 약한 것은 이 같은 ‘뒷심 부족’ 때문이다. 박 9단은 세계대회에선 좋은 성적을 냈다. 흥창배 대리배 등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그것도 루이 9단을 제물로 삼은 경우가 많아 더욱 화제가 됐다. 하지만 국내 기전에선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박 9단의 앞길을 번번이 막아선 기사가 조 8단이다. 박 9단은 2000년 여류명인에서 우승하며 첫 국내 기전 우승을 한 뒤 2008년 여류국수(대 이민진 5단)를 차지할 때까지 7년간이나 국내 여성기전 결승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여성기전 결승의 대부분은 루이 9단과 조 8단의 대결이었다.

“조 8단에겐 뭔지 모를 부담감이 있어요. 그게 라이벌 관계에선 확실히 영향을 미쳐요. 자꾸 ‘지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한두 판 지다보면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보이시하고 무표정한 외모와는 달리 무척 예민한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그는 여성 기사들이 남성 기사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실력 이전에 노력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올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종목에 걸린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한국기원은 여성 기사 국가대표 상비군을 만들었다. 당연히 박 9단이 핵심멤버다. 그는 한국기원 연구생 때처럼 매일 사활문제 500개를 풀고 오전 오후 한 번씩 대국을 가진 뒤 목진석, 원성진 9단 등과 복기를 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공부하면 바둑이 늘어요. 평범한 진리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바둑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른 여성 기사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덤으로 금메달이 따라오면 더욱 좋죠.”

신동아 2010년 3월 호

글 / 서정보 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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