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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바리톤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고지식한 테너, 청순한 소프라노, 사고뭉치 바리톤, 위험한 여인 메조소프라노

  • 구미화│신동아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바리톤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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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베르디의 비극 ‘리골레토’에서 곱사등이 리골레토 역을 맡은 김동규(가운데).

“중학생 때부터 오페라를 좋아했어요. 듣기 싫어도 음악이 계속 들려왔으니까요. 어머니 제자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어야 했고. 집에 오페라 관련 책과 자료들이 시대별로 집대성되어 있어서 책을 사본 적이 없어요. 환경이 분명 다르긴 했어요. 부모님이 사업을 하는 친구 집에 가보면, 음악 관련 책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전 공짜로 얻은 게 많아요.”

부모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긴 했지만, 동양인으로서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됐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무대에서의 손짓 발짓, 심지어 몇 걸음 걸어야 하는지까지 연출자로부터 지시를 받고 그것을 외워서 무대에 올랐지만, 유럽에선 모든 게 연기를 하는 성악가의 판단에 맡겨졌다.

“서양에서 한국 사람이 먹고살려면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리허설을 하는 데 굉장히 어색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이 나를 우습게보지 않을까 싶고. 외국인이 춘향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설픈 흉내로 비치기 싫었어요. 오페라는 노래만으로 안 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손짓 발짓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그래서 생활 자체를 이탈리아식으로 바꿨어요. 한국 사람을 만나도 이탈리아 제스처를 했어요. 무대에서 거리낌 없이 서양극을 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결국 동료들로부터 이탈리아인이 아니면서 가장 이탈리아인답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푸치니의 ‘라 보엠’

김동규는 1991년부터 10년간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오페라 40작품을 외워 부르고, 어떤 오페라도 사흘 정도 시간을 주면 바로 공연할 수 있도록 피나는 연습을 했다. 1년에 10작품 정도 출연했다. 한 해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공연하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가 30∼40편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1년에 10작품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렇게 오페라를 피와 땀으로 체화한 덕분에 지금은 어느 오페라든 쉽고 편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대의 찬 손’ 얘기를 해봅시다. 손이 왜 찰까요? 배경은 정말 단순해요. 보헤미안 젊은이들이 하숙집 위 아래층에 살면서 땔나무 살 돈이 없어서 외투와 숄을 걸치고, 촛불 하나 켜놓고 살던 시절이에요. 극작가인 남자주인공은 소설을 써놓고 마음에 안 드니까 원고를 통째로 난로에 던져버려요. 따뜻하게 불이나 쬐자는 거죠. 춥고 가난한 젊은이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리아가 바로 ‘그대의 찬 손’이에요. 그대의 찬 손, 내가 녹여줄게요. 하지만 나는 불을 때줄 능력은 못돼요. 사랑과 따뜻한 마음으로 녹여주겠습니다, 이런 거예요. 강원도 산골의 처녀총각 얘기에 접목시킬 수도 있는 쉽고 간단한 스토리죠.”

‘라 보엠’은 가난한 청춘들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다. 1830년경 크리스마스 이브, 파리의 낡은 아파트에는 작가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가 난로에 희곡 원고를 던져 넣고 온기를 쬐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 친구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해지자 집주인이 나타나 밀린 집세를 내라며 흥을 깬다.

바리톤 김동규의 오페라 이야기
집주인이 가고 난 뒤 친구들도 모두 단골 카페로 향하고 신문사에 보낼 원고를 써야 하는 로돌포만 남는다. 그때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제 초에 불을 좀 옮겨주시겠어요?” 촛대를 들고 서 있는 창백하고 아리따운 여인, 바로 여주인공 미미다. 파리한 미미는 힘이 없는 듯 촛대와 집 열쇠를 떨어뜨리고, 간신히 기운을 차려 불붙은 초를 들고 나가려는 순간 떨어뜨린 열쇠를 생각해낸다. “열쇠 좀 찾아주시겠어요?” 그 순간 미미의 촛불이 휙 꺼져버린다. 로돌포는 자신의 촛불에 훅 입김을 불어버린다. “제 것도 꺼져버렸네요.” 캄캄한 방바닥을 더듬으며 열쇠를 찾는 두 남녀. 예상대로 둘의 손이 부딪친다. 미미가 놀라고, 로돌포도 놀라는 척하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오, 그대의 손은 작고 차갑군요!”로 시작되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노래한다.

김동규는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 오페라극장 등에서 남자 주인공 로돌프의 친구인 마르첼로 역으로 ‘라 보엠’ 무대에 여러 차례 올랐다. 그해 소프라노 홍혜경은 대서양 건너 메트로폴리탄에서 미미로 열연했다.

“그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자기가 우는 게 아니에요. 아디나가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시골 총각 네모리노가 마침내 사랑이 확인됐다며 순수하게 노래하는 거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잖아요. 상대방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홀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아주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잘 끄집어내 시적으로 잘 표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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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신동아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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