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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⑨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내 작업 공간은 염력(念力)과 영감으로 이뤄지는 4차원 세계”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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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국현은 무엇을 찍었느냐보다 어떻게 찍었느냐가, 빛나는 작품보다는 그를 만들어낸 과정이 더 관심을 끄는 인물이다. ‘소나무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이 사진작가는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더디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저를 만날라믄 일단 명심할 끼 있는데, 내 작업은 상상 밖의 세계에서 이뤄집니다. 그걸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쓸라카면 힘들끼에요.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으문 내한테 물어봐야지 혼자 판단할라믄 안 하는 기 나아요.”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었을 때 장국현(67)씨는 이렇게 말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귓전을 때렸다. ‘상상 밖의 세계’를 말하는 목소리는 그에 대한 상상의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1년에 절반은 산속에서 지내는 사람입니다. 한번 사진 찍으러 들어가면 한 달도 살고, 두 달도 살지요. 그동안 거의 굶다시피 하면서 사진만 찍어서 막 내려왔을 때 보면 눈빛만 형형한 게 산짐승 같기도 합니다. 사진작가 하면 떠오르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요.”

장씨의 지인은 그를 ‘기행적인 도인’이라고 불렀다. ‘장국현’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언젠가 한 번쯤은 그의 사진을 봤을 듯싶다. 청명한 하늘 가운데 멈춰 선 순백색 구름, 그 아래 펼쳐진 웅장한 산줄기와 눈부시게 빛나는 쪽빛 호수. 백두산 천지(天池)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려지는 이 영상의 기원은 대개 장씨의 사진이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인 1989년부터 매년 한두 달씩 백두산에 머물며 천지 사진을 찍어왔다. 책이나 TV에서 천인단애(千?斷崖) 끝에 아슬아슬하게 뻗어 있는 소나무 사진을 봤다면, 그 역시 장씨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심산유곡(深山幽谷) 이름 없는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장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연 사진가 중 한 명이다. 국회의사당 통일부 산림청 서울지방경찰청 등 수많은 관공서 벽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그럼에도 장씨의 이름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왠지 퉁명스레 느껴지는 투박하고 뻣뻣한 성정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생각했다.

투박한 사진가

누구나 사랑할 만한 사진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방식으로 찍는 작가, ‘산짐승 같은’ 예술가. 그는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무성한 수염을 단정하게 다듬고 중절모를 쓴 채 경북 청도역 앞에 나와 있었다. 그곳서부터 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집까지 기자를 안내하기 위해서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지나자 막 꽃을 피운 매화와 지난 가을의 결실이 아직 그대로 달려 있는 모과나무, 근사한 수형의 노송(老松) 서너 그루가 둘레를 감싼 새하얀 집이 나타났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서 감나무 밭을 내려다볼 수 있게 지어진 그의 자택이다. 처마 끝엔 풍경을 매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투명한 소리가 울렸다. 햇빛이 막힐 것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 들어서자 정면으로 설악산 울산바위 밑 금강송 군락을 찍은 사진이 눈길을 잡았다. 벽면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바위와 소나무의 기상이 불끈하다.

▼ 직접 촬영한 작품이겠지요.

“2007년 겨울에 한 깁니다. 원래는 설경 찍으러 산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눈이 안 오는 깁니다. 뉴스에서는 날마다 ‘내일은 온다’ ‘대설주의보 내린다’ 카고, 당최 눈은 볼 수가 없어요. 왔다갔다 등산만 하다가 문득 울산바위 쪽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요. 그 아래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에 그냥 막 오르고 싶은 기라. 일행 도움 받아 힘겹게 올라보니 그 밑에 저 소나무 숲이 있었어요.”

울산바위의 정기를 받고 자란 금강송 숲은 맑고 깨끗했다. ‘아, 이 소나무를 보게 하려고 그렇게 오래 눈이 오지 않았구나’ 무릎을 쳤다. 이 사진은 그해 2월,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가 얻은 것이다.

“이기 내 작업하는 스타일입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기라. 좋은 나무 찾으면 몇 번이고 찾아가서 그 옆에 텐트 치고 일주일 열흘씩 사진 찍고 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믄 진짜 기막힌 사진이 딱 나오지요. 내 말 이해하겠습니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그 말 그대로라. 부처님 말씀 중에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게 있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비워지면 묘한 작용이 드러난다 카는 거지요. 이때 묘한 작용이라는 게 예술가한테는 영감(靈感)인기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4차원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잡스러운 생각을 비우고,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一念)으로 마음을 모으면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이깁니다. 그걸 따라가기만 하믄 사진이 나와요. 예수님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 했잖아요. 똑같은 얘깁니다. 잡념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다 된다 이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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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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