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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문익환 목사 북한에서 안기부 프락치로 몰려 화병으로 죽었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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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추산하는 근거가 있나요.

“수년 전 탈북자 상대로 샘플 조사를 했더니 12%가 열린북한방송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 탈북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바깥소식에 관심이 많았겠죠.

“북한 인구 2000만명(북한 인구는 2300만명으로 추산된다)의 12%면 240만명입니다. 탈북자가 특수하다는 점을 고려해 반으로 줄이더라도 120만명이 들었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 북한에 단파라디오가 많은가 봅니다.



“중국 게 북한에 돌아다니죠. 그 사람들도 외부 소식이 궁금하니까. 한국처럼 영토가 좁으면 단파가 필요 없어요. AM FM으로 커버하니까. 중국은 땅덩어리가 커서 단파방송이 많습니다.”

열린북한방송은 아침 6~7시, 밤 10~11시 북한으로 단파를 송출한다. “북한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실형을 산 전력도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고(故) 문익환 목사와 함께 일했다.

▼ 1986년이면 수재가 물리학과에 모일 땐데 학력고사 등수 기억해요.

“숫자가 특이해서 안 잊어버려요. 전국 100등.”

▼ 주사파이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에요. 그렇게 아는 분이 많은데, 잘못 알려졌죠. 운동권이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로 나뉘었는데, NL은 주사NL 비주사NL로 갈렸어요. 서울대엔 저처럼 비주사NL이 많았고요. ‘수령님 만세’ 같은 거 안 외쳤어요.”

▼ 대학 다닐 적엔 북한에서 한국으로 송출하는 단파방송을 들었겠네요.

“방송을 직접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방송 내용을 필사해서 뿌린 걸 읽었죠. 운동권 70~80%가 봤을 겁니다. NL은 거의 다 봤으니까.”

▼ 격세지감이 듭니다.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니….

“넓게 보면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거죠. 작게 보면 남북 간 정보 소통 운동이고요. 세계가 어떻게 돌고, 한국이 어떤지 북한 주민이 아는 건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축입니다.”

▼ 교도소는 왜 갔다 왔나요.

“1989년 임수경 다음에 1991년 박성희, 성용승이 방북했습니다. 그 친구들 방북과 관련해서 잡혀갔어요.”

▼ 실제로 관련 있었나요.

“관련이 없지 않았죠. 북한 인사와 팩스를 주고받았으니.”

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했다.

▼ 북한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박성희, 성용승 방북이 첫 번째 계기죠. 두 친구는 임수경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서 통일운동을 계속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그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비민주적이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겁니다. 북한이 문익환 목사한테 한 행동도 계기로 작용했고요. 문 목사의 통일노선은 북한과 달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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