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명사 에세이

안성포도 전래자 앙투안 공베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

  • 김학용│국회의원│

안성포도 전래자 앙투안 공베르

1/2
안성포도 전래자 앙투안 공베르
무더운 여름을 지나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다. 포도송이 탐스럽게 영그는 이맘때면 나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가 있다. 바로 프랑스인 신부 앙투안 공베르(R. Antoie A. Gombert·한국명 孔安國)이다. 그는 비록 푸른 눈의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인보다 더 대한민국을 사랑했으며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남긴 사람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00년 전 안성에 최초로 전한 포도다.

공베르 신부가 한국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0년으로, 그때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투철한 신앙심과 사명감으로 충만한 젊은 사제가 미지의 땅인 조선에서 선교할 것을 결심하고 정착한 곳이 바로 안성이었다. 당시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안성은 물류와 상업의 중심이었기에 천주교를 전파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성에서의 생활은 젊은 선교사가 감내하기 쉽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뿐더러 음식과 관습의 차이도 매우 컸다. 무엇보다 서양 종교와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문제였다. 특히나 안성 땅은 유교적 전통이 매우 강한 고장이었기에 그가 겪었을 외로움과 고난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른바 불청객이던 그에게 한국인이 마음을 연 계기가 바로 포도다. 미사에 쓸 포도주가 필요했던 그는 고국 프랑스에서 직접 한국에서 잘 자랄 만한 포도 품종을 들여와 안성성당 뜰에 심었다. 포도가 열매를 맺자 신기한 외국 과일을 먹으러 먼저 아이들이 성당에 발걸음을 내디뎠고, 병자들이 약과 포도를 얻기 위해 성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도 종자와 농사법을 보급하면서 공베르 신부는 한국인 ‘공안국’으로 거듭났다.

이때 전해진 포도 종자가 감미종포도로 유럽에서 주로 포도주를 제조하는 데 쓰인 머스캣(muscat)이다. 처음 성당 뜰에 심은 스무 그루가 마흔 그루로 늘고 다시 삼덕포도원이라는 농원을 이루어 안성이 명품 포도의 고장으로 발전하는 바탕이 됐다. 현재 안성에는 900여 농가가 600여 ha의 면적에 포도를 재배하며 농원만 600여 곳에 달한다.

그가 남긴 것은 포도만이 아니다. 배움의 기회가 드물던 당시 공교안법학교(公敎安法學校)를 설립해 근대 학문을 전파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힘썼다. 처음 개교할 때 교사를 마련하지 못해 성당을 교실로 해 출발한 이 학교가 바로 현재는 102년 전통의 명문 안법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안법학교는 1912년부터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해 근대 여성교육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서슬 퍼런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의 내일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2
김학용│국회의원│
목록 닫기

안성포도 전래자 앙투안 공베르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