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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7

‘로마인 이야기’ 15년 투혼의 女帝 시오노 나나미

“승부 걸지 않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로마인 이야기’ 15년 투혼의 女帝 시오노 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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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으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았다.
  • ‘또 하나의…’는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제국 탄생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새로이 정리한 책. 시오노가 평생을 로마사에 몰두하며 파고든 주제가 다름 아닌 ‘정치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추천은 흥미롭다.
  • 시오노의 저작을 중심으로 그가 탐구한 인간학을 들여다본다.
‘로마인 이야기’ 15년 투혼의 女帝 시오노 나나미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63년에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일본의 귀족 출신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교육기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 살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를 공부했다. 그가 공식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적(籍)을 두지 않고 혼자 고전 공부에 몰두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빠진 적이 있는 그는 “학생 때의 사회주의 운동은 한 번쯤 치러야 할 홍역이지만, 인간의 본성인 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좌파사상에는 매력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한때 꿈은 외교관. 고등학교 때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1년가량 공부하면서 서양 문화에 매료됐으나 미국에서 돌아와 읽은 ‘일리아드’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영어 대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독학하면서 지중해 세계에 빠져든 것.

대학 졸업 후 ‘아사히신문’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낙방한 뒤 딱히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않고 있다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5년 동안 이탈리아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다가 몇 년 후 다시 건너가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해 피렌체에 정착했다. 집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데뷔작은 1968년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한 ‘르네상스의 여인들’이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 첫 장편이자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남편과는 일찌감치 헤어지고 그 후 줄곧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일관, 집중, 집요, 지속

그에게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쓰게 한 가스야 잇키 전 ‘중앙공론’ 편집장은 시오노의 초년병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30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오노씨를 만나 사흘 동안 그로부터 로마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상당히 건방졌다. 불끈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르네상스에 흥미가 있다면 ‘여자’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떠냐 했더니, 왜 하필 여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반 년 뒤 정말로 책을 써 왔다. … 많은 작가와 사귀었지만, 시오노가 가장 성장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많이 컸다. 집중과 지속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어찌 보면 꼭 수도하는 수녀 같다. 기독교를 경유하는 역사에 도전하고, 20세기 인간의 환상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일을 마지막까지 뒷받침하고 싶다.”(‘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중)

그의 말대로 시오노의 작업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과 집중력이다. 조직에 매인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라도 묶여 자기절제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철저히 혼자다. 웬만한 인내력이 없이는 힘든 작업을 지속할 수 없다. 시오노는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을 쓰기 위해 서재로 건너갈 때는 마치 출근하는 사람처럼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그였기에 장장 15년에 걸쳐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써냈으리라. 그 사이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70세가 됐다. 그동안 여름휴가 한 번 안 갔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 완간 인터뷰에서 “혹 나쁜 병이라도 발견되면 일을 중단해야 하고, 일단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 병원에도 한 번 가지 않았다”고 고백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집요함은 번역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번역을 모두 자기 돈으로 진행했다. 특정 국가가 아닌 인간 일반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고의 번역자와 감수자를 택하느라 도쿄에 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썼다는 것이다.

그가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동기는 ‘지력, 체력, 경제력,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보다 열세에 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1000년 넘게 경영한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바로 그 ‘의문하는 힘’이야말로 시오노에게 세상과 사람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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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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