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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기자의 Innovative CEO 열전 ②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닮았지만 다른 괴짜 공학도 ‘세상의 모든 정보’를 나누다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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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유토피아’를 꿈꾸던 두 청년의 만남은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대 제국을 창조했다.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한 검색 엔진부터 모바일 세상을 아우르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구글TV까지. 구글은 쉴 새 없이 신제품을 쏟아내며 그 영토를 확장하는 중이다. 기존 미디어 시장을 뒤흔든 구글의 물결에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혁신 DNA가 녹아 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왼쪽)와 세르게이 브린이 미국 구글 본사에서 회사 로고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9월27일 ‘구글’ 홈페이지에는 유명 팝아티스트 웨인 티보의 가상 케이크 그림이 올라왔다. 구글의 열두 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로고다. 특정 기념일에 맞춰 색다른 로고를 선보이는 구글의 전통은 세계 인터넷 사이트가 모방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정말 무섭게 성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2명이 만든 구글은 12년이 흐른 지금, 전세계 검색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구글을 단순히 ‘검색엔진’으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전세계 모든 정보를 긁어모으는 힘’으로 광고, 신문, 방송(유튜브 인수), 도서(2000만권 무료 검색), 번역, 부동산, 지도 서비스 등에 걸쳐 사업 영역을 전 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바일 제국 건설에 나섰다. 초고속 인터넷, 구글TV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 출시 소식이 쏟아진다.

이렇듯 구글의 ‘끝없는 혁신’의 중심에는 바로 동갑내기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37)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37)가 있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두 창립자의 캐릭터는 그대로 회사 전체에 녹아들었다. ‘사용자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공짜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한다’는 구글의 이상은 두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외모마저 닮은 두 천재 창업자의 결합은 구글 신화의 신호탄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1973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그의 부모는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의 가족은 1979년 유대인 학대와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 브린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수학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던 어머니의 영향 덕분에 브린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 신동’으로 통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우상이었다. 19세에 이미 메릴랜드대 학부 과정을 마친 그는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지원했다. “성공의 요인 중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자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브린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수학신동’과 ‘천재공학도’

“과학과 학문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수없이 실행해왔던 아름다운 수학적인 것들, 그게 제가 자라면서 얻은 겁니다.”

브린의 단짝, 래리 페이지 역시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 그는 197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컴퓨터공학자로, 특히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던 아버지가 페이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사다준 ‘엑시디 소서러(Exidy Sorcerer)’ 컴퓨터를 갖고 놀았다. 아버지가 매일 가져오는 테크놀로지 잡지와 전기공학 리포트를 보며 공학도의 꿈을 키웠다.

페이지의 영웅은 ‘돈과 명예를 얻지 못한 에디슨’이라 불리는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였다. 놀라운 발명을 했음에도 궁핍하게 죽어간 테슬라를 보며, 페이지는 과학적 변화를 일으키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기술이 아무리 세계 최고라고 해도, 그저 발명하는 것만으로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테슬라가 조금이라도 사업이나 사람 다루는 데 재주가 있었다면, 훨씬 큰일을 해냈을 겁니다.”

페이지는 미시간대에서 컴퓨터공학 엔지니어 모임인 ‘에타카파누’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미시간대 교수진은 그를 “언제나 남보다 앞선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지만 종교적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점. 브린의 ‘괴짜스러운’ 결혼식 풍경을 보자. 그는 2007년 바하마섬에서 ‘23andMe’의 공동설립자인 앤 워지츠키와 결혼식을 올렸다. 식을 진행하는 랍비도 없이, 두 사람은 전통 유대교 예식 차양인 추파 아래서 수영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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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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