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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9

美 첫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정치는 엄마 역할의 확장”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美 첫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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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업주부로 5남매를 키우다 마흔을 훌쩍 넘겨 정계에 입문, 미국 선출직 중 최고위직인 하원의장에 오른 낸시 펠로시.
  • 공화당의 대반격으로 3년 만에 물러났으나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서 그가 미국 정치사에 새긴 흔적은 남다르다.
  • ‘진보적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선입관과는 딴판으로, 그에게 가장 든든한 지지기반은 가정이었고 남성은 적이 아니라 우군이었다.
지난 11월2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민주당 소속의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70)가 물러났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미국 정치사에서 첫 여성 하원의장이 된 지 4년 만이다.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운명도 연예인의 운명처럼 부침이 심하다. 화려하게 주목받던 펠로시의 퇴장을 뒤로하고 새 하원의장이 된 공화당 원내대표 존 베이너(60)가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니 말이다. 미국 하원의장은 선출직으로선 최고위직이며, 정·부통령 유고시 미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서열 3위의 막강한 자리다.

4년 전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깼다’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펠로시가 이번에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어 새삼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존 베이너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언론매체들은 ‘베이너가 오하이오 주 벽촌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웨이터 일을 하며 플라스틱 제품 회사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근로계층’의 대표적 인물인 데 비해 펠로시는 명품 의상과 보톡스 시술로 요약되는 캘리포니아 부유층의 상징적 인물이었다’며 조롱에 가까운 비교를 했다. 그러면서 ‘부잣집 마나님이 미국의 근로계층·소수계가 주요 지지기반인 민주당 하원을 지휘하던 시절이 지나고, 벽촌·근로자 출신이 부자와 친(親)기업적 성향의 공화당 하원을 장악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펠로시는 선택받은 특권층의 삶을 살았다. 시장(市長)을 12년이나 지낸 하원의원 출신의 정치인 아버지와 엘리트 어머니, 그리고 부동산 재벌로 알려진 사업가 남편을 두고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순탄한 삶을 살았다. 남편 폴 펠로시는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지역에 부동산을 갖고 있으며, 나파밸리(캘리포니아에 있는 고급 포도주 생산지역)에 500만~2500만달러 상당의 와이너리 및 리조트 호텔, 이탈리안 레스토랑 체인, 골프장 등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UFL(미식축구 리그)의 ‘캘리포니아 레드우즈’팀 구단주를 맡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펠로시는 아버지나 남편의 도움으로 정치가가 된 것이 아니다. 물론 거물 정치인 집안에서 자란 유전자적 소양과 부모, 남편이 떠받쳐주는 상류층 네트워크가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이긴 해도 그가 정치에 뛰어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과정은 본질적으로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그의 진정성을 동료의원들도 잘 알기에 그에게 민주당의 수장 자리를 맡겼다고 할 수 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그것도 평상시도 아닌 연방의회 상·하원의 주도권을 모두 잃어버린 비상상황에서 당을 구할 지도자로 펠로시 의원을 하원의장으로 뽑은 이유는 그가 자타가 인정하는 ‘조직의 귀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자금을 모으는 데 특출한 솜씨가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987년 그가 처음 의회에 진출한 것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것도 자금력 덕분이었다. 2002년 11월 중간선거 때는 다른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만달러가 넘는 거금을 선뜻 당에 내놓기도 했다. 1995년부터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맡은 게파트 의원은 “펠로시는 순전히 자기 힘으로, 그리고 자기 지도력 덕분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자가 주목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펠로시의 성취보다는, 그가 결혼해 5남매를 두고 전업주부로 지내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이다. 펠로시의 꿈에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은 없었다. 다만 살림을 하면서도 신문을 정독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면서 사회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이런 열정이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전업주부의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며 지내고 있을지 모를 여성들에게 그의 도전적인 삶은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준다. 펠로시는 2007년 하원의장 취임선서에서 “개인적인 승리라기보다 모든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느꼈다”고 말해 여성 멘토로서 많은 생각을 해왔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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