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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국 IT기술 전도사’ 이현숙 유엔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교육원장

“두려움 없이 도전하라! 한 번도 좌절하지 않은 것처럼”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한국 IT기술 전도사’ 이현숙 유엔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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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씩씩한 시골 소녀가 세계에 정보통신기술을 전파하는 국제기구의 리더가 됐다.
  • 서투른 영어로 콧대 높은 미국 대학생을 사로잡고, 성실한 땀으로 세계인을 내 편으로 만든 ‘도전 전문가’의 파란만장한 대장정.
‘한국 IT기술 전도사’ 이현숙 유엔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교육원장
지천명(知天命)을 넘은 여인은 마치 소녀처럼 웃었다. 정감 어린 말투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자신을 반대하던 사람도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매력의 소유자. ‘열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되묻게 하는 사람. 바로 이현숙(51) 유엔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교육원(APCICT) 원장이다.

이 원장은 세계적인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미국 명문 조지아공대 교수(경영정보학)를 거쳐 유엔 아프리카 정보통신교육원 탄생의 산파 구실을 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유엔사무국 소속 기구인 apcict 초대원장으로 2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APCICT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62개국 간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6년 만들어졌다. 정부와 인천시가 출연한 기구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각국 공무원들에게 정보통신 교육을 실시한다. APCICT는 정보통신기술 강국인 한국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전파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칼바람이 불던 12월10일 이현숙 원장을 인천 송도신도시 유엔 APCICT 사무실에서 만났다.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이 따뜻하다. 그는 땅콩과 콩을 갈아 직접 만든 두유를 권했다. 꾸밈없이 담백한 그 맛이 추위를 금세 누그러뜨렸다.

기자가 이 원장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단 APCICT의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을 오가며 도전을 거듭한 그의 인생스토리가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성공을 위한 계산이나 꼼수를 싫어한다. APCICT를 4년 넘게 이끌었건만,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언론에 나오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채근에 그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5시간 동안 들려준 삶의 여정에는 통쾌한 역전과 뜨거운 감동이 있다. 화려한 장면 전환은 기본. 내용은 드라마틱했다. 아쉽다면 지나치게 모범적이라는 점일까.

“바르고 씩씩하게”

이현숙 원장은 1960년생이다. 경북 경산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서점을 경영하던 부친 덕분에 집안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집 대청마루에 걸린 ‘바르고 씩씩하게 살자’는 가훈은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자랐지만, 그는 한 번도 여자라고 움츠러든 적이 없었다. 그의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아버지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TV를 구입한 곳이 저희 집이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TV 대담 프로그램을 보다가 저를 부르시더니 ‘저 여성이 몇 개 국어를 하네. 너도 더 큰 세상에 나가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언젠가는 ‘앞으로 화상 통화가 가능한 시대가 온다’는 얘기를 들려주셨죠. 1970년대에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신기했어요. 앞을 내다보는 분이셨죠.”

학창시절에는 반장을 도맡았다. 웅변대회, 영어 말하기대회, 과학 경진대회까지 모든 대회에 대표로 출전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효성여고 1학년 때는 요리 실습대회까지 나갔다. 당시 그는 요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생초짜’였다.

“요리 대회에서 이론과 실기를 모두 봤는데, 이론에서는 높은 성적을 거뒀죠. 문제는 5첩 반상을 만드는 과제였어요. 여상 3학년 언니들이 어찌나 노련하게 상을 차리던지. 저는 행주를 깔끔하게 빨아 널어두는 등 단정한 일 매무새로 심사위원의 점수를 땄어요. ‘어떤 일을 하던 디테일하게 최선을 다하자’가 제 모토예요.”

첫 시련은 열아홉 살에 찾아왔다. 그가 전기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사업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1979년 후기로 영남대에 입학했다. 인문사회계열로 들어가 심리학을 전공했다. 낭만과 자유가 없던 엄혹한 시절,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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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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