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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지리산의 부부 파수꾼, 나무꾼과 햇살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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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앞만 보며 달려가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칼럼니스트 김서령씨가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들의 인생과 철학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인터뷰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지리산에서 자급자족하며 네 아이를 키우는 ‘인텔리 부부’ 나무꾼과 햇살이다.<편집자 주>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지리산에서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하며 네 아이를 키우는 나무꾼과 햇살 부부. 왼쪽부터 햇살, 첫째 현승(맑음), 막내 찬유, 셋째 연두, 나무꾼 그리고 둘째 노을.

지리산에 나무꾼과 햇살이 산다고 했다. 나무해서 불 때고 직접 농사지은 것만 먹으면서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하는 부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넷이나 낳아 기르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아빠인 나무꾼이 소문난 수재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얘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은 서울에서 아주 멀지는 않았다. 세 시간 반을 달려가니 눈앞에 천왕봉이 우뚝 서 있었다. 발 아래로는 집채 같은 바위가 굴러다니고 그 사이로 도랑물이 돌돌 흘렀다. 대숲과 감나무와 늙은 호두나무 위로 몸이 날랜 물까치들이 좌르륵 날아다녔다. 우린 자연 앞에 절로 탄성을 토하는 피를 가지고 있다. 눈앞을 가로막는 철근 콘크리트 빌딩 대신 천왕봉과 고목과 바윗돌을 보자 내게서도 한숨 같은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속에 숨어 자급자족하는 젊은 부부의 삶을 예찬하려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그들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고 도시적 삶과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겠다는 쪽이랄까. 그 또한 한두 차례 피상적인 관찰로 가능할 일은 아니다.

내 의도의 최소한은 ‘다른 삶’을 선택한 이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구든 독자적이고 유일무이한 삶을 살지 않으랴마는 방금 말한 ‘다른 삶’이란 우리 시대 거대 시스템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삶이다. 시스템이 절로 굴러가는 컨베이어 벨트라면 다른 삶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거기서 내려서서 새 길을 개척한 쪽이다. 남이 다 가는 길을 마다하자면 뜻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 뜻에 주목하고 싶었다.

햇살네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탁에선 천왕봉이 마주 보였고 눈을 아래로 깔면 겨울인데도 뜰에 자라는 푸른 푸성귀가 내다보였다. 대단한 메뉴일 건 아무것도 없다. 감자와 양파 넣은 된장국, 무생채, 배춧잎을 큼직하게 썰어 부친 배추전, 깻잎절임, 그리고 망초나물! 밥은 쌀에 밀과 보리, 콩을 고루 섞은 것이었다. 이 메뉴는 지난해 이 집 농사의 내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밥상에 오른 내용물은 모조리 이집 부부가 직접 기르거나 뜯어온 것들뿐이다. 푸드 마일리지 100m 미만, 글자그대로 자급자족이다.

식생활에 돈 들이지 않고 사는 것, 이것이 나무꾼 햇살 부부의 시골살이 수칙 제 1조였다. ‘시골 가서 농사짓지 않고 살기’를 실천하거나 매실진액, 녹차, 된장을 만들면서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많은 이를 봐왔다. 그들에 비하면 나무꾼 햇살 부부의 삶은 보다 근본주의에 가깝다.

밥상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된장! 햇살은 서른네 살밖에 안 된 주부다. 첫아이 맑음이 아홉 살이니 지리산에 내려와 나무꾼과 살림을 합한 지 열 해째가 된다. 그 후로 된장을 직접 담근다. 심지어 서울 사는 친정어머니, 부산 사는 시어머니께 된장을 보내드리기까지 한다. 제 별칭 햇살처럼 표정이 환하고 집 앞 감나무 가지에 잔뜩 내려와 앉은 물까치처럼 몸이 재고 연신 즐겁게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엄마이고 선생님이고 농부다.

된장을 담그자면 콩이 필요하다. 콩 농사는 물론 나무꾼이 직접 지었다. 된장국에 들어간 감자, 양파도 물론 직접 키운 것이다. 무생채 한 무도 농사를 지었을 테고, 배추전을 부친 배추, 깻잎김치를 담근 들깨도 직접 심고 거뒀다는 얘기다. 아니 무생채에는 고춧가루와 마늘과 참기름도 들어가니 고추, 마늘, 깨 농사도 고루 지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쌀이다. 고추와 무, 배추는 아마추어라도 밭이랑에 대충 뿌려 거둔다 해도 벼농사는 본격 농사꾼이 아니면 손대기 어려웠을 텐데 나무꾼은 처음부터 쌀과 밀, 보리 같은 주곡을 중심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그릇을 정갈하게 비우는 아이들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두 살배기 막내 찬유.

이 집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한 톨 한 잎이 모조리 봄부터 가을까지 정성의 결실이다. 사 먹는 곡식과 채소인들 정성이 들지 않았으랴만 어디서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르는 음식과 직접 씨 뿌려 싹 나기를 기다렸다 풀 뽑고 거름 줘서 거둔 음식은 가치가 천양지차다.

이 집 밥상을 관찰하면 그건 절로 깨달게 된다. 첫아이 맑음(9)과 둘째 노을(7), 셋째 연두(4)와 막내 찬유(2)! 네 아이가 밥 먹는 양을 보면 도시 아이들 밥상에선 느끼지 못하는 진지함이 있다. 각자 그릇에 엄마가 밥을 퍼주면 넷 다 아주 열중해서 밥을 먹는다. 투정도 없고 소란도 없다. 가끔 ‘맛있어요!’라는 감탄만 나온다.

맑음과 노을과 연두의 밥 먹은 그릇을 보고 나는 천왕봉을 처음 볼 때보다 더 크게 신음한다. 아아. 이것이로구나! 나무꾼이 굳이 농사를 직접 짓는 까닭이 여기 있구나! 단 한 톨의 밥알도 그릇에 묻어 있지 않았다. 강제된 교육에 의해서는 이럴 수가 없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이 체득됐을 때만이 이런 장면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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