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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18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김규만 한의사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살다가 물고기 밥으로 사라지고 싶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김규만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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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함에 눈뜨다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김규만 한의사

제주국제철인대회 완주 기념 메달을 보여주는 김규만 원장.

▼ 처음 한 스포츠가 요트였어요?

“네. 스물일곱 살에 대학 요트부에 들어갔어요.”

어린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이발소 그림, 잔잔한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돛단배의 환상을 좇아서였다. 지리멸렬한 삶이 못마땅할 때면, 그는 종종 돛단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나는 꿈을 꿨다. 대학에 요트부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그 추억이 떠올랐다.

“직접 세일링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내가 너무 잘 하는 거예요.”



윈드서핑에도 재능이 있었다. 하루 만에 독학으로 타는 법을 익혔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건,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여세를 모아 산악회에도 가입했다. 세상에, 산행도 몸에 맞았다. 그는 체격이 왜소했을 뿐, 힘은 좋았다. 겁도 없었다. 한창 세상이 재미있어질 무렵, 친구가 학교에 타고 온 MTB가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오르막에서 페달을 밟을 때 느껴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오르가슴’, 내리막에서 바람을 가르며 질주할 때 느껴지는 짜릿한 ‘내리가슴’. 이건 그냥 자전거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새로운 자극과 모험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건 뭐든 배웠다. 행글라이딩 동아리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고, 눈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운틴 스키도 탔다. 고산 등반에도 뛰어들었다.

1991년 대학 졸업 후 한의원에 월급의사로 갓 취직했을 무렵, 산악회 선후배들이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동계 원정팀을 꾸렸다. 언제 또 올지 모를 기회라는 생각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후회는 안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함으로써 그는 처음으로 제 능력을 발견하고, 한계를 만나고, 극복할 용기를 얻었다. 몸을 괴롭힐수록 마음은 평화로워진다는 걸 알았다.

“에베레스트에선 8000m 위까지 잘 올라갔는데 정상을 못 밟았어요. 제가 정상 공격팀이었으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봤죠. 가서 알았는데, 제가 고소 적응 능력이 워낙 좋더라고요. 고산 등반 경험이 많은 사람들보다 짐도 잘 들고, 이동 속도도 더 빨랐어요. 여기서 두세 달만 지내면 셰르파하고 똑같아지겠구나 싶었죠.”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나 정도 폐활량이면 고산지대에서 MTB도 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건 수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히말라야 산맥의 고대 왕국 라다크를 MTB로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홀로 북인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발 3000~4000m 언덕 앞에서 좌절하기 전까지는.

고소 마니아

“등산이랑 MTB 라이딩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해발 5000m 지대는 산소량이 지상의 50%밖에 안 돼요. 숨이 턱턱 막히니 속도는 느려지고, 계획한 일정에 맞추려면 달이 뜬 뒤에도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고…. 내가 뭐 하자고 이 짓을 시작했나 싶어 혼자서 이를 갈았어요.”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해발 5600m 타그랑라 고개를 넘을 때는 환각 상태에까지 빠졌다. 하루 100㎞씩 약 1000㎞의 길을 달리는 동안 얼굴은 시커멓게 변하고, 코밑과 입술이 다 터졌으며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 그래도 참 좋더라, 이런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죠?

“고통이 극에 달하면 희열이 돼요. 한번 그걸 느끼면 못 잊지요. 한의사가 알고 보면 참 답답한 직업입니다. 야간 진료, 주말 진료 다 하다 보면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데서 벗어나지를 못하거든요. 뻔한 일상에서 재미있게 일탈할 방법이 있어야 돼요. 나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거, 정말 정신이 번쩍 나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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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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