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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9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된 여인들

뮬란 vs 박씨부인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된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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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성 은폐, 그녀들의 투쟁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된 여인들

‘박씨부인전’을 각색한 마당놀이 ‘박씨전’

파뮬란은 좋은 혼처에 당당히 내놓기 어려운 말괄량이 근성 때문에 부모님의 골칫거리가 되고, 결코 에로틱한 대상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박씨부인의 외모에 남편 이시백은 기가 질린다. 파뮬란도, 박씨부인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여성성을 은폐하기로 한다. 파뮬란은 아버지 대신 군인이 되고, 박씨부인은 신통력을 발휘해 제갈량 뺨치는 지모와 홍길동 맞짱 뜨는 도술로 전쟁 영웅이 된다.

황제께서 군사를 부른다오

명부에 아버지의 이름도 끼어 있소.

아버지에게는 장남이 없고,



뮬란은 오라비가 없구나.

나는 시장에서 말과 안장을 사서,

그들 따라 아버님 대신 싸움터에 나가겠소.

- ‘목란사’ 중에서

아버지를 끔찍이 위하는 효심말고는 별다른 특기가 없던 파뮬란에 비해 박씨부인의 재주는 ‘그녀가 아직 추녀였을 때’도 신출귀몰한 것이었다. 하룻밤 만에 시아버지의 조복(朝服)을 만들어 모두를 놀라게 하고, 명마(名馬)를 알아보고 싼값에 사서 비싸게 파는 재테크 기술도 출중했으며, 백옥연적으로 남편 이시백을 과거에 장원급제시키는가 하면 피화당(避禍堂)을 짓고 나무를 심어 앞으로 다가올 변란에 철저히 대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박씨의 재능은 오직 시아버지만이 알아줄 뿐 남편과 시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집안사람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남편 이시백은 박씨가 드디어 허물을 벗고 절세미녀로 거듭나자 이제 와서 부인이 좋아 죽겠다며 뒤늦은 상사병을 앓는다. 서시나 양귀비도 저리 가라 할 만한, 경국지색의 미모로 탈바꿈한 박씨부인을 대하는 모든 사람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박씨부인의 추한 외모를 묘사하는 대목만큼이나 그녀의 되찾은 미모를 묘사하는 대목도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 박씨부인의 캐릭터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미모에 울고 웃는 세태를 통쾌하게 풍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과 중국 옛이야기 ‘목란사’ 사이에는 사실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통해 변화한 여성상, 근대 이전과 이후의 여성 롤 모델의 변화, 서양과 동양의 여성상의 차이도 추론해낼 수 있지 않을까. 중국 전설의 판본 중에서는 뮬란이 여성임을 알게 된 중국 황제가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고 하는 내용이 담긴 판본(‘목란전(木蘭傳)’)도 있다. 이 판본에서 뮬란은 황제의 요구를 ‘신하는 임금의 첩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자결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원작 ‘목란사’가 ‘영웅신화’의 비장미보다는 남장조차 불사해야 했던 파뮬란의 비극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인어공주조차 살려내 왕자와 기어이 결혼시키는 해피엔딩 제조공장 디즈니는 뮬란이 자신이 선택한 사랑인 리샹과 행복한 결말을 이루는 것을 암시하며 이야기를 끝낸다. 또한 애니메이션 ‘뮬란’의 초반부에 보이는, 중매를 통한 뮬란의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는 원작 ‘목란사’에는 없다. 전통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에 저항하는 파뮬란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인 셈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강조되는 ‘여성의 자아정체성’ 문제는 사실 원작 ‘목란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옛이야기 속 파뮬란은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낭만적 사랑, 혼란 속에서도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자아정체성, 자기만의 개성으로 성취하는 자아실현 같은 근대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디즈니가 아닌 중국에서 만든 영화 ‘뮬란’은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도 ‘국가를 위해’ 그와 헤어지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준다. ‘내 사랑’과 ‘나의 꿈’을 내 손으로 반드시 찾는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식 서구적 개인주의는 중국 영화 ‘뮬란’에서 좀처럼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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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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