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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②

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위스키稅 부과로 ‘위스키반란’…대통령으로서 직접 군 지휘해 제압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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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 혹은 군 지휘관으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그는 위스키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위스키에 세금을 부과하자 1794년 이른바 ‘위스키반란’이 발생했다.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현직 대통령으로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진군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면서 위스키와의 악연은 끝난다. 그가 세운 증류소는 고증을 거쳐 2007년 복원돼 위스키와 워싱턴의 인연을 알려주고 있다.
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그가 여섯 살 무렵의 일이었다. 또래의 여느 소년들처럼 개구쟁이였던 그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정원의 어린 벚나무를 작은 손도끼로 쳐서 껍질을 벗겨내고 말았다. 결국 이 때문에 그 벚나무는 죽고 만다. 얼마 후 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노발대발했고,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려고 했다.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워싱턴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손도끼로 그렇게 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어린 소년을 팔로 안으면서, ‘너의 지금 행동은 황금 잎을 가진 천 그루의 나무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이다’라고 오히려 크게 칭찬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관한 이 유명한 일화는 이솝우화만큼이나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도덕성을 한마디로 상징하는 이 일화가, 사실은 책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한 전기 작가가 꾸민 이야기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건의 주범(?)은 윔스(Mason Locke Weems, 1759~1825)라는 목사이자 서적 판매원이었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목회 일을 했다. 그러나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서적 외판원 일을 하면서 설교를 병행했다. 그러던 중 워싱턴이 사망한 이듬해인 1800년, 상업적인 가능성에 착안하고 워싱턴에 관한 전기(The life · Memorable Actions of George Washington)를 집필해 처음 책을 냈다. 앞서 말한 벚나무 일화는 바로 이 책의 5판(1806년)에 이르러 다른 몇몇 일화와 함께 윔스에 의해 임의로 첨가된 것이었다. 한 설(說)에 따르면, 모범적인 삶으로 별다른 일탈의 에피소드가 없는 워싱턴의 전기를 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벚나무 일화에 관련된 논쟁과 관계없이 워싱턴이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워싱턴의 ‘벚나무 사건’은 작가의 상상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버지니아 주의 한 마을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워싱턴이 11세 되던 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이복형 로렌스가 가장 구실을 하며 워싱턴의 기둥이 되어준다. 이런 로렌스마저 1752년 오랜 투병 끝에 결핵으로 사망하자 그 이듬해 워싱턴은 로렌스의 뒤를 이어 소령 계급으로 버지니아 민병대의 부대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다가 1754년 프랑스와의 영토 분쟁으로 야기된 프렌치인디언전쟁(1754~1763, 영국과 프랑스가 북아메리카에서 벌인 싸움으로, 프랑스가 인디언부족과 동맹해 영국 식민지를 공격했다)에 참전하게 된다. 참전 중 전투지휘 능력을 인정받은 워싱턴은 대령으로 진급하며 영국군과 민병대를 제외하고는 미국 땅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정식 군부대의 지휘관을 맡는다. 워싱턴은 참전 4년 만인 1758년 12월 군에서 퇴임했다. 이때 영국군과 한편이 되어 싸우면서 얻은 귀중한 경험은 훗날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 전투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190㎝에 가까운 그의 장대한 골격과 함께 카리스마 있는 군사 지도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프렌치인디언전쟁 참전 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1759년 부유한 미망인 마사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그는 막대한 자산가가 돼 버지니아 주 최고 갑부 중 한 명으로 떠오른다. 이후 워싱턴은 고향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진 사회적 명망가로서 안온한 삶을 즐긴다.

그러던 중 미국 독립전쟁(1775~1787)이 시작된다. 워싱턴은 식민지군 사령관으로 취임했고, 영국과의 오랜 전쟁 끝에 결국 승리를 거둬 미국의 독립을 쟁취한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2년 후인 1789년, 새롭게 제정된 미연방 헌법에 의해 워싱턴은 투표로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1797년 두 번에 걸친 임기가 끝났을 때 3선(選) 대통령 추대 움직임이 있었지만 민주주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이후 그는 사저가 있는 고향 땅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갔고, 2년 뒤인 1799년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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